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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2   푸주의 아킬레우스 - 「설계자들」, 김언수

푸주의 아킬레우스 - 「설계자들」, 김언수



암살자 來生. 아무 감정 없이 설계자에게서 온 설계대로 표적을 제거한다. 그 표적이 자기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주고 그의 개가 자기를 좋아한다 해도. 하지만 래생은 또한, 표적을 죽인 뒤 그의 개도 죽일 정도의 연민은 갖고 있다. 래생은 도서관 소속. 도서관장 너구리 영감은 한때 이 푸주에서 이름을 날렸으나 민주화 후 점점 힘을 잃고 과거 자신이 키웠던 한자에게 밀리고 있다. 어느 날 래생의 집에서 폭탄이 발견되고, 래생은 그 추적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그저 그들만의 얘기라고 생각했다. 그들만의 세상, 그들만의 언어, 그들만의 job. 하지만 푸주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결국 돈으로 무엇이든 살 수 있는 푸주가 내가 사는 세상과 다를 바 없다는 걸 깨달았다. ‘복수도, 환희도, 파멸도, 갱생과 부활도 살 수 있’는 푸주(194쪽). 래생이 그 곳에서 떠날 기회를 놓아버린 것도 어쩌면 어딜 가도 이 자본주의 사회는 결국 푸주임을 알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걸 알면서도, 또 ‘세상은 그저 빙글빙글 돌아가는 빈 의자일 뿐’(298쪽)이라는 걸, ‘자리가 비면 누군가 잽싸게 그 자리에 앉’(298쪽)는 의자라는 걸 알면서도 가장 꼭대기에 있는 의자를 없애기 위한 설계를 한 미토를 돕는 래생. 그가 이 무모한 암살을 시작한 건, 그가 도서관 구석에서 스스로 글을 깨우치고 ‘뺨을 맞으면서, 부끄럽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 것이라는 저주와 협박 속에서’(40쪽)도 책을 읽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파리스의 화살에 맞은 아킬레우스가 절대로 살아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아킬레우스가 되고자 했던 래생. 비록 마지막 총알은 결국 그의 뒤꿈치를 맞추겠지만 그의 총알이 꼭대기의 의자를 흔들었음을 난 믿는다.

by 달을향한사다리 | 2012/06/12 15:44 | Yujin's Book Story | 트랙백 | 핑백(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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