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프로디테(이사벨 아옌데, 정창 역. 영림카디널. 2017. 431쪽)
: 부제('감각의 향연')에 걸맞게 우리의 감각을 깨우는 음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확히 말하면, 최음의 음식들. 대단히 특이하거나 구하기 힘든 것들은 전혀 아니다. 어쩌면 일상에서 늘 접할 수 있는 음식들을 좀더 에로틱하게 제대로 활용할 수 있게 이끌어준다.
사실 이 책은 30금이다. 실오라기 하나 없이 완전한 누드보다는 레이스 사이로 슬몃 드러나는 한 뼘의 살갗이 더 관능적임을 아는 사람만이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책 뒤의 최음제 레시피는 감사한 덤이다.
2. 결혼식 가는 길(존 버거, 김현우 역. 열화담. 2020. 199쪽)
: 화자는 성당 앞에서 '타마타Tamata(그리스 정교에서 누군가에게 기적이나 도움이 필요할 때, 기도와 함께 교회에 바치는 편액. 6쪽)'를 판다. 철도 신호원으로 일하는 장이 온 몸이 아픈 딸을 위해 타마를 사러 온다. 장의 딸 니농은 잠시 반했던 남자에게서 에이즈에 감염됐고 이를 연인 지노에게 알리고 헤어지려 하지만 지노는 니농과의 결혼을 밀어부친다. 장은 스쿠터를 타고 프랑스 알프스 근처에서, 니농의 엄마 즈데나는 장거리 버스를 타고 프라하에서 딸의 결혼식이 열리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근처까지 오는 여행길에 오른다.
초반에 화자가 개입하는 부분이 몽환적이어서 좀 헤맸다. 장의 부성애, 니농과 지노의 사랑, 장과 즈데나의 사랑과 이별, 즈데나와 버스에서 만난 토마스의 이야기가 꿈결처럼 섞이고 풀어지며 아름답게 펼쳐진다. 이 작가의 장편은 처음인데 단편들보다 훨씬 좋았다.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간단하고 단순한 이야기같겠지만 작가 특유의 순하게 풀어지는 몽환의 느낌에 비극의 처절함이 더해져 가슴 깊은 곳을 건드리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었다. 결국 타마타는, 손에 쥐어지는 물건이 아니라 마음 속의 사랑인 것.
3. 상아의 문으로(구병모. 문학과지성사. 2021. 223쪽)
: '나'는 아침에 세수를 하며 나 자신을 천천히 재구성한다. 얼굴 부근에 물을 적시며 얼굴이 거기에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증상'은 나에게만 생기는 현상이 아니다. 잠을 잊은 이 도시의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꿈도 현실도 아닌 상태. 정신차려 보면 출근해 있고, 정신차려 보면 식사를 막 끝냈다. 나는 계속 생활 속을 부유한다.
작가의 전작들과는 분위기가 좀 다르다 싶었지만, 돌아보면 그렇게 이질적인 것만도 아니다. 전작들이 담고 있던 그 많은 상징들을 생각하면. 이 작품은 상당히 사변적이고, 마치 현대 무용을 보는 것 같다. 아름답지만 해석이 쉽지 않았고 신경을 온통 집중하다보니 나중에는 오히려 기절하듯 잠에 빠질 뻔 했다. 166쪽에 반전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확 정신차리지 못했을 지도. 의심스러웠으나 의심하고 싶지 않았던 진실이 드러났다. 역시 이 작가는 날 실망시키지 않는다.
4. 파워 오브 도그(토머스 새비지, 장성주 역. 민음사. 2021. 389쪽)
: 작가의 이름이 맘에 들어서 선택한 책인데, 나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다. 1924년 몬태나 주의 한 목장. 37세 필과 35세 조지 두 형제가 함께 살고 있다. 영리하고 상대방의 생각을 잘 이해하지만 그 명민함을 사악하게 사용할 줄 아는 필. 우직하고 원칙주의적이지만 사회성이 부족한 조지. 이들은 늘 모든 일을 함께 하고 심지어는 침실도 하나를 나누어 쓴다. 한편 심약한 의사 고든은 아내와 함께 의사가 한 명도 없는 마을에 이주해 와 집을 고치고 진료를 보며 살아간다. 힘든 생활에 알콜 의존도가 높아지긴 하지만 곧 태어난 아들과 아내와 함께 그럭저럭 꾸려나가던 중, 읍내로 소를 몰고 나온 목장 주인에게 모욕을 당하는 일이 생긴다.
처음에는 이 책이 또다른 햄릿 이야기인 줄 알았다. 뒷표지의 책 소개글 때문에, 『에드거 소텔 이야기』가 생각났다. 뒷표지의 스포일러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조금씩 드러나는 필의 비밀과 피터의 행보가 흥미로웠다. 결말은 짐작대로였지만 읽는 내내 한순간도 뻔하다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딱 원하는 결말. 그럴 줄 알았지만 알았어도 통괘했다. 또한 피터에 대한 배척에도 불구하고 그의 성정때문에 불편하지 않아서 좋았다. 그리고 애니 프루의 해설도 좋았다. 특히 마지막 문장이.
5. 에냐도르의 전설(미라 발렌틴, 한윤진 역. 사일런스북. 2020. 542쪽)
: 오래 전 에냐도르에는 네 인간 왕국이 있었다. 그 중 한 왕국의 왕자가 대마법사를 찾아가 대륙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을 묻자 대마법사는 그에게서 의지를 뻇고는 그를 화염을 다스리는 드래곤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각 왕국의 왕자들은 아름다움을 뺏기고 다른 존재를 눈빛으로 제압하는 데몬, 감정을 뺏기고 자신들만의 문스틸로 만든 강철검을 가진 엘프 족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왕자는 대마법사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았고 대마법사는 그의 의지를 높이 사면서 그에게 마법의 힘을 조금 주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인간 종족은 장자를 무조건 엘프에게 바쳐 군 훈련을 받고 화살받이로 희생당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고, 드래곤은 데몬에게 종속당해 그들에게 노예로 부려지게 되었다. 엘프 왕국과 데몬 왕국의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고아인 트리스탄은 자신을 키워준 집의 장자인 카이를 대신해서 징집된다. 카이는 마력을 갖고 있으나 엘프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숨기고 있었고, 마을 사람이 징집관에게 고발하자 카이의 여동생 아그네스가 대신 끌려간다. 카이는 트리스탄과 아그네스를 끌고 간 무리를 뒤늦게 따라가는데...
아무래도 시리즈의 시작이고 이야기의 기본 세계관을 소개하는 부분인지라 진행이 더딜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오히려 시리즈 전체를 놓고 볼 때 1권이 가장 재밌었다. 네 종족의 주요 등장인물들이 만나서 관계가 형성되고 감정이 폭발하면서 앞으로의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6. 세련되게 해결해 드립니다, 백조 세탁소(이재인. 안전가옥. 2021. 362쪽)
: 이 출판사는 교정이 너무 엉망이라 집어들기 꺼려지는데 이 책은 오랫동안 국문학을 읽지 않아서 생긴 번역문 피로감 때문에 집어들었다. 애시당초 기대가 없어서였는지도 모르지만, 즐겁게 읽었다. 세탁소 딸 백은조는 서울에서 어떻게든 자리 잡아보려 동동거리다가 다 접고 고향 여수로 내려온 참이다. 부모님이 갑자기 은퇴를 선언하고 해외 여행을 떠나버려서 세탁소는 오롯이 은조 몫이다. 성공적으로 재개발되서 상대적으로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뽐내는 옛 극동1단지와 재개발 변죽만 울리고 있는 극동2단지 사이에 위치한 백조 세탁소. 은조는 브레이크 타임까지 도입하며 그저 슬슬 시간만 떼우려 하지만 의도치 않게 자꾸만 동네 일들에 휘말린다.
과하게 똑똑하거나 심각하지 않고 그저 관찰력이 좋고 까칠하지만 주위 상인들에게 또 승질대로는 못하는 주인공과 얄밉지만 어찌됐든 결과적으로는 은조 편이 되어주는 동네 터줏대감들의 캐릭터가 친근하고 현실감 있는 점이 좋았다. 이 시리즈가 계속되어도 좋을 것 같다.
7. 에냐도르의 파수꾼(미라 발렌틴, 한윤진 역. 사일런스북. 2020. 551쪽)
: 2권이니만큼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된다. 아그네스와 엘프 왕자 이스타리엘, 엘프의 감옥에 갇혀 있는 마법사 엘리야와 카이, 그리고 카이를 따라다니는 비범한 하얀 염소 그바일로와 카이가 구해줬지만 더럽게 틱틱대는 하녀 그레타, 카이의 여정에서 만나게 된 데몬 툴과 드래곤 스호토크, 그리고 트리스탄과 한 부대에 속한 남장여자 마론과 이스타리엘의 여동생이자 트리스탄에게 신분을 속인 이조라의 관계가 정신없이 얽혀 뻗어나간다.
사랑에 빠진 엘프의 피는 귀하다. 엘프는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대다수의 엘프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사랑에 빠진 것과 다르지 않다. 집착이라는 것도 어긋나긴 했지만 사랑의 한 행태가 아닌가. 근데 이 시리즈의 사랑은 그냥 사랑이 아니다. 막장의 조짐이 70쪽에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한다. 비단 엘프가 사랑에 빠져서 생기는 문제 만도 아니다. 모든 종족이 사랑에 기반한 움직임을 보인다. 슬슬 걱정스러워지기 시작했다.
8. 에냐도르의 화염(미라 발렌틴, 한윤진 역. 사일런스북. 2020. 525쪽)
: 고구마 전개. 마법사 엘리야의 권력에 대한 집착과 독단이 원인이기는 한데, 등장인물들도 정신 못차린다. 차라리 엘리야는 대의명분이라도 있지 - 그 명분도 공감이 안 가긴 하지만 - 나머지 인물들은 모두 사춘기 소년들 같다. 사랑 타령만 해대고, 대의는 돌아보지 않은 채 당장의 자신의 감정과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만 움직인다. 사실 이건 엘리야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이 새끼도 대륙의 평화와 안정은 그냥 명분일 뿐이고 사실은 지 자존심이 제일 중요한 거 아닌가 싶다. 물론 이쯤에서 위기가 닥치리라고는 예상했지만 어이없는 이유로 파수꾼들이 흩어지고, 역시 납득이 안 되는 이유로 모든 인물들이 움직인다. 특히 엘프의 왕이 지질한 새끼 빌런을 감싸고 도는 게 어이없었다. 그냥 작가가 쓰다보니 빌런을 하나쯤은 남겨둬야 해서 억지를 쓰고 있는 것도 같고. 암튼 좀 많이 질렸다.
9. 에냐도르의 유산(미라 발렌틴, 한윤진 역. 사일런스북. 2020. 671쪽)
: 힘겹게 마지막 권까지 왔다. 어떻게든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걸 보고 싶어서. 기,승,전,결이 모두 사랑이었다. 애시당초 모든 문제의 시작이 그 망할 놈의 사랑 때문이었던 것. 이놈의 사랑 타령 지겨워 죽겠다. 아주 단 것만 몇 날 며칠을 과식한 기분. 게다가 캐릭터들은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흐물거리고 - 특히 트리스탄. 왜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 거냐? - 엉뚱한 캐릭터 - 새끼 빌런 호리엘 - 가 급부상하는 것도 이상하다. 얘가 뭐, 불사신이야? 갑자기?
세계관과 설정이 꽤 탄탄하다고 생각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사랑 범벅에 질렸다. 하지만 나와 맞지 않았을 뿐, 말했듯 잘 짜인 설정은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부디 이 책을 읽는 YA들이 사랑은 적절한 상대와 괜찮은 환경에서 제대로 해야 한다는 걸 깨닫기를.
10. 내가 행복한 이유(그렉 이건, 김상훈 역. 허블. 2022. 531쪽)
: SF단편집. 김초엽이 추천했다고 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몇 작품은 내 취향이었지만 아닌 것도 꽤 있었다. 사실 첫 작품 「적절한 사랑」이 매우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어서 계속 읽어나갔던 건데, 첫 작품만한 작품이 뒤에는 없었다는 게 아쉽기는 하다. 꽤나 그로테스크했던 첫 작품은 무엇보다 여성의 신체를 감정적/경제적 명분을 내세워 착취하는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어 인상깊었다. 가장 좋았다. 표제작도 나쁘지는 않았는데, 주인공에 깊이 공감했다. 왜 그렇게 다들 질색하는지, 겪어본다면 주위 인물들을 이해하게 될까? 「바람에 날리는 겨」도 좋았다.
11. 카지노 베이비(김성봉. 한겨레출판. 2022. 311쪽)
: '나'는 한때 큰 광산이 있던 카지노 도시 지음의 전당포 집 손자이다. 나이는 열 살 정도이지만 출생 신고가 되어 있지 않아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 전당포 주인인 '할머니'는 명품 감정까지 자기가 배워서 할 정도로 생활력이 강하지만 '엄마'는 늘 불안증에 시달리고 '삼촌'은 "랜드가 무너진다"며 늘 소리를 질러댄다. 사실 나는 이들이 내 출생 가족이 아님을 알고 있다. 나는 전당포에 맡겨진 아이이다.
화자가 마냥 영악하지 않아서 좋았다. 눈치 빤한 거야 얹혀 사는 아이이니 당연한 거고. 그렇다고 특별하지 않은 건 아니니까.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걸 알고 있다. 그러기 위해 반드시 또래보다 영악해야 하는 건 아니다. 소설은, 어쩌면 클리셰일 수도 있지만 도박촌으로 전락해 버린 옛 탄광 도시에 토박이와 외지인이 섞여 만들어 내는 이야기들이 과거와 현재의 영락을 반영하며 전개된다. 조금은 헐렁하게 흘러가는 듯도 하지만 나쁘진 않았다. 특히 박수무당의 굿판에서의 나의 이야기는 이 작가가 앞으로 조금만 더 깊이를 갖게 되면 어떨까 하는 기대를 갖게 했다. 작가의 이름을 기억해 둬야겠다.
12. 세번째 호텔(로라 벤덴버그, 엄일녀 역. 문학동네, 2021. 328쪽)
: 클레어는 5주 전 교통사고로 죽은 남편을 대신해 쿠바 아바나의 공포영화제에 온다. 택시 기사에게 주소를 잘못 불러주는 바람에 두 군데의 호텔을 거쳐 마침내 예약했던 호텔에 도착했고, 그래서 이 호텔을 세번째 호텔이라고 부른다. 남편이 고대했던 좀비 영화 상영회에 가려 했지만 마치 투명막이라도 생긴 듯 영화관에 들어갈 수가 없고, 클레어는 발길을 돌려 거리를 헤맨다. 그러다 어느 박물관 앞, 익숙한 흰 정장을 입은 남편의 모습을 발견하고, 남편은 스쿠터를 타고 사라져 버린다.
분명 죽었는데 눈 앞에 나타나 '여기서 뭐하는 거냐'며 묻는 남편. 공포스러울 수 있겠지만, 그리고 책 소개에도 공포 소설임을 이야기했지만 공포보다는 혼란 쪽의 비중이 더 크다. 처음에는 남편을 너무나 사랑한 클레어의 애도라고 생각했으나 - 그리고 진짜 유령 혹은 살아 있지만 자신의 죽음을 가장한 것이길 바라기도 했으나 - 읽을 수록 혼란스럽다. 클레어의 사랑도, 남편의 존재도. 사실 정말 중요한 건 클레어의 마음이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13. 다른 여름(김희진. 폭스코너. 2022. 275쪽)
: 장세오는 백화점 명품관을 돌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신을 꾸민다. 마지막으로 맘에 드는 여행 가방까지 구입한 그는 지하철에서 대중들을 향해 자신과 온전히 하루를 함께 있어준다면 그 명품 여행 가방을 선물하겠다고 얘기하지만 그의 의도를 곡해한 사람들의 냉대와 업신여김만 받을 뿐이다. 지친 마음으로 공원에서 쉬고 있던 장세오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남자에게서 2년 만에 도착한 스페인어 편지를 꼭 번역해야만 하는 여자 조소라를 만난다.
자칫 멀멀할 수도 있는 이야기이지만, 장세오의 사정 - 한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피부가 검은 - 과 조소라의 편지가 작품에 색을 입힌다. 작품 안에서 잊을 만 하면 등장하는 작가의 전작들 속 인물들을 반가워하며 읽다가 뜻밖의 결말에 마음이 내려앉았다. 그래도 딱 맞는 결말이었다고 생각한다. 장세오에게도, 작품에도.
14. 메이든스(알렉스 마이클리디스, 남명성 역. 해냄. 2022. 423쪽)
: 런던에서 상담치료사로 일하고 있는 마리아나. 인생의 사랑이던 남편 세바스찬을 1년 전에 휴가지에서 익사 사고로 떠나보내고 상실감을 힘겹게 극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부모님과 언니 부부까지 모두 사별했기에 이제 그녀에게 남은 혈육은 케임브리지에 다니는 조카 조이 뿐이다. 그룹 상담 치료에서 자신에게 집착하는 환자 때문에 고민하던 중, 조이가 두려움에 떠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온다. 친구 타라가 살해되었다고. 마리아나는 조이를 위해 케임브리지로 향한다.
다 의심스럽다. 마리아나에게 집착하는 환자 헨리, 타라와 부적절한 관계였다고 조이가 의심하는 에드워드 포스카 교수, 케임브리지까지 오는 열차 안에서 마리아나에게 접근한 남학생 프레드 그리고 이 사건에 법의학 심리학자로 관여하고 있는 마리아나의 지인 줄리안까지. 사실 마리아나는 처음부터, 총애하는 여학생들만 모아서 사적 모임을 갖는 에드워드 포스카 교수를 지목하고 혼자서 조사를 한다. 추리소설이 다 그렇지만 들쑤시고 다니는 주인공이 너무 불안했다(그래서 차라리 돈받고 일하는 탐정이나 경찰이 주인공인게 훨씬 맘이 편하다). 마리아나는 딱히 조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기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움직인다. 이에 대한 해명이 에필로그에 나오지만 석연치는 않다. 그래도 마지막 챕터에서 작가의 전작 속 주인공과의 만남은 반가웠고, 이 작품이 시리즈로 발전해서 프레드와 마리아나의 관계 변화와 마리아나의 성장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15. 비올레트, 묘지지기(발레리 페랭, 장소미 역. 엘리. 2022. 588쪽)
16. 주홍색 여인에 관한 연구(셰리 토머스, 이경아 역. 디앤씨미디어. 2022. 470쪽)
: 1880년대, 홈스 가의 네 딸 중 셋째 샬럿은 유부남과 한 침대에 있다가 그의 부인에게 발각된다. 사교계에 얼굴을 못 들고 다니게 된 샬럿. 이건 명민한 그녀의 계획이었다. 때가 되면 교육을 받고 혼자 살아갈 수 있게 해주겠다는 아버지의 약속이 묵살되자 독신을 고수하기 위한. 샬럿은 불합리하고 위선적인 집을 뛰쳐나와 혼자 살기 시작한다. 한편 샬럿의 추문에 동반자였던 남자의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죽고, 죽기 직전 저녁에 샬럿의 언니 리비아와 말다툼을 했다는 게 드러난다. 또한 아버지의 옛 약혼녀 또한 죽은 채 발견된다.
비상한 지능과 탁월한 감각을 지닌 샬럿이 아니면 이 시리즈는 탄생하지 못했겠지만 난 리비아에게 더 마음이 쓰였다. '인간 혐오자가 아닌 척 하는 인간 혐오자'(50쪽)인 리비는 나와 닮았다. 이 책은 셜록 홈즈가 여성이라면, 하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샬럿은 누구보다 총명하고 능력 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제약에 갇혀 쓸모없는 인간 취급을 받는다. 리비아 또한 자신의 진가를 발견하지 못하고 나날이 풀이 죽어가고만 있다. 하지만 여러 조력자와 샬럿 자신의 힘으로 상황을 개선하고 자신만의 분야를 개척해나가는 샬럿은 마치 슈퍼히로인 같았다. 이 시리즈를 선택한 과거의 나를 칭찬해 주고 싶다.
17. 벨그라비아의 음모(셰리 토머스, 이경아 역. 디앤씨미디어. 2022. 459쪽)
: 살인 사건인지 자연사인지(혹은 자살인지) 모호했던 지난 번과 달리 이번엔 명백한 살인 사건이다. 비록 트래들스 경사는 이 건을 셜록 홈스에게 의뢰할 생각이 전혀 없지만. 셜록 홈스인 척 하며 갖가지 사건을 의뢰받아 해결해 주고 있던 샬럿은 뜻밖에도 오랜 벗이자 첫키스 상대였던 잉그램 경의 아내 레이디 잉그램의 의뢰를 받게 된다. 왓슨 부인과 그녀의 조카 페넬로페의 도움을 받아 파악한 레이디 잉그램의 의뢰는 결혼 전 사랑했던 연인과 1년에 한 번씩 스쳐지나기로 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불안하니 그의 행방을 알려달라는 것. 샬럿은 그 남자를 조사하던 중 뜻밖의 진실과 마주한다.
본격적인 사건 조사의 시작인데, 전권보다 재미가 덜했다. 일단 트래들스 경사. 좋게 봤는데, 이런 남성우월주의자이자 열등감 덩어리일 줄이야. 샬럿에 대한 존경심이 사그라든 거야 그 잘난 도덕 의식 때문이라 쳐도 - 난 셜록이 여성이라는 점도 한몫 했다고 보지만 - 가업을 경영하고픈 아내의 바람을 위험하고 여성스럽지 못하며 남편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보는 게 어이없었다. 게다가 밴크로프트 경의 미묘한 태도도. 샬럿의 지적 능력은 인정하면서도 그걸 그저 유희거리로 돌리려 하다니. 뭐, 당대에 드물지도 않은 인간상이었겠지. 사실 이야기가 재미가 덜했던 건 꽤 많은 우연이 남용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밴크로프트가 장난감으로 던져 준 10년 전의 암호문이 현재의 살인과 바로 연결되는 건 납득하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이 비호감 캐릭터들이 시리즈의 진행에 따라 어떻게 바뀔지, 샬럿과 리비아는 또 어떻게 성장할 지 계속 지켜보고 싶다.
18. 드래곤 펄(이윤하, 송경아 역. 사계절. 2020. 420쪽)
: 구미호 민은 엄마, 이모들, 사촌들과 함께 진주시 외곽에 살고 있다. 가난한 민의 희망은 얼른 우주군에 입대해서 이 집을 벗어나는 것. 오빠 준은 이미 우주군에 입대했다. 어느 날 조사관이 찾아와 준이 막강한 힘을 가진 드래곤 펄을 찾아 동료들과 탈영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밥상으로 둔갑해서 그 얘기를 듣던 민은 얼결에 조사관을 폭행하고 집을 나온다. 어릴 때부터 우주군 입대가 소원이었던 준이 탈영할 리 없다고 생각한 민은 준을 찾아 돌아가기로 하고 준이 소속된 우주선으로 향한다.
기대를 갖고 읽기 시작했으나 군데군데 드러나는 서양식(?) 시각이 좀 실망스러웠다. 나리네 도박장이 '행운의 붉은 색과 황금색'으로 장식되어 있다든지, 도깨비인 수진 이마에 솟은 뿔과 그녀를 계속 고블린으로 칭한다든지. 처음 민이 집안 형편이나 현재 상황 같은 건 생각도 안 하고 다 뒤엎었을 때부터 집중이 좀 안 되긴 했는데, 이러한 설정의 어긋남에 더해 캐릭터들이 좀 산만하고 개연성이 부족하다. 이 책 읽어보고 괜찮으면 『나인폭스 갬빗』도 읽어볼까 했는데, 이 작가는 나와는 잘 안 맞는 것 같다.
19. 비키니(제임스 패터슨, 맥신 패트로, 나중길 역. RHK. 2010. 443쪽)
: 하와이의 수영복 화보 촬영 현장에서 모델 킴이 사라진다. 언론의 취재 경쟁이 벌어지고, 전직 경찰이자 현직 기자인 벤은 이 건을 취재하기 위해 하와이로 간다. 나름의 조사를 하지만 결국 킴은 시신으로 발견되고, 킴의 부모님까지 희생당한다.
뒷표지에서 살인범이 책을 의뢰한다는 설정이 재밌을 것 같아서 대출했는데, 살인범의 접촉은 한참 뒤이다. 거의 전반부는 위의 살인사건 이야기. 저자가 보여주고 싶었던 건 진짜 사이코패스는 제 손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그 놈이 아니라 그 놈을 사주한 다른 인간들이라는 거 같은데, 그냥 끔찍할 뿐. 게다가 내가 궁금했던 살인범의 집필 의뢰 부분은 그냥 시시하게 넘어가 버리고 만다. 기대보다 별로였던 이야기.
20. 절연(정세랑 외. 문학동네. 2022. 410쪽)
: 동아시아 작가들이 한 가지 주제로 쓴 앤솔러지. 주제는 물론 절연이다. 사실 난 우리 작가 외의 동아시아 작가들에게는 별 관심이 없어서 큰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고, 첫 작품(「無」,무라타 사야카)이 내가 가진 일문학에 대한 선입견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 같아서 계속 읽을 지 망설였지만 사랑하는 정세랑 작가의 작품을 위해 달려보기로 했다(사실 애시당초 정세랑 작가가 아니라면 이 책을 집어들지도 않았을 거다). 그 뒤로도 쭉 지루하다가 티베트 출신의 라샴자 작가의 「구덩이 속에는 설련화가 피어 있다」가 딱 내 취향의 작품이었고, 그 뒤에 대만 출신 렌밍웨이 작가의 「셰리스 아주머니의 애프터눈 티」도 (작품 줄거리 자체와는 별개로) 맘에 들어 기분이 좀 좋아졌다. 그래도 역시 가장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린 건 정세랑 작가의 「절연」.
뒤에 실린 정세랑 작가와 무라타 사야카 작가의 대담에서도 나온 얘기지만 '절연'은 엄청 가볍거나 매우 무겁게 느껴지는 단어이다. 난 가볍게 써본 적은 없다. 사실 일상에서 쉽게 쓰는 단어도 아니고. 역시 정세랑 작가가 이 단어의 무게감을 잘 반영했다. 중국의 하오징팡 작가, 태국의 위왓 럿위왓웡사 작가, 홍콩의 홍라이추 작가의 작품들은 주제에서 미묘하게 틀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물론 해석하기 나름이고, 갖다 붙이면 붙이겠지만. 이게 지역(나라)적, 언어적인 특징인지 아니면 작가 개인의 역량인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이 작가들을 일부러 찾아 읽진 않을 것 같다.
21. 펀치 에스크로(탈 M.클레인, 정세윤 역. 구픽. 2018. 459쪽)
: 이게 재미가 없었던 게 내 상태 때문이었는지 혹은 나와 안 맞는 하드SF에 도전한 탓이었는지, 혹은 작품 별로였던 건지....2147년 인공지능 훈련 전문가 salter인 조엘은 전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순간이동기술 기업 IT의 엔지니어인 아내 실비아와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허니문 여행지인 코스타리카로 여행을 가기로 한다. 춘간 이동 센터에 도착한 조엘의 앞에 왠지 어색해 보이는 여자가 끼어들고, 조엘이 막 순간 이동을 시작하려는 찰나 테러가 발생해서 코스타리카의 순간 이동 센터가 파괴된다. 아내의 상사이자 IT의 간부인 빌이 나타나 조엘을 안심시키며 IT 본사로 데려가려고 하는데, 순간 조엘의 모든 통신이 단절되고(ID가 삭제되는 것과 같음) 조엘은 코스타리카에 이미 또다른 자신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작가는 나름의 탄탄한 이론을 바탕으로 상당히 정교하게 설정을 했다. 이게 주석에 빼곡히 설명되어 있다. 이 책에 흥미를 잃은 데엔 사실 초반에 주석 이해하려고 애쓰다가 지친 탓도 좀 있다. 그리고 조엘의 심리적인 갈등 - 순간 이동 기술의 비밀이라고 하는 것 - 또한 공감이 되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이동하는 줄 알았어? 난 처음부터 순간 이동이란 그런 거일 거라고 상상해 왔고, 책 초반의 모나리자 실종(?) 사건을 언급한 걸로 보아 책 속의 순간 이동 기술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조엘이 충격을 받고 갈등하고 사방팔방을 다 건드리고 다니는 게 심드렁했다. 하지만 만약 이걸 할리웃 영화로 봤더라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돈 주고는 안 봤겠지만.
22. 저주 토끼(정보라. 아작. 2017. 326쪽)
: 이 작가의 최신 작품들을 차례로 읽고 있지만 이 책을 가장 읽어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도서관에서 내게도 차례가 돌아왔다. 첫 작품이자 표제작이 너무 좋아서 기쁜 마음을 가득 안고 읽기 시작했는데, 바로 뒤의 「머리」는 좀 엽기적이었다. 그로테스크한 세 편(「머리」,「몸하다」,「덫」)과 서늘하게 아름다운 세 편(「저주 토끼」, 「차가운 손가락」, 「안녕, 내 사랑」)이 번갈아 나오고 상대적으로 평이하게 느껴졌던 「흉터」를 지나 「즐거운 나의 집」에 이르렀는데, 정말정말 좋았다. 앞의 작품을 읽고 몇 시간 후 이 작품을 읽었는데 초반에는 흔하디 흔한 한국문학 단편 같은 분위기인 줄 알고 실망했다. 하지만 이 작가만의 방식으로 매끈하게 풀어가는 걸 읽으면서 금세 신나졌다. 게다가 작은 반전도. 작품 속 그녀가 부럽기까지 했다. 「즐거운 나의 집」이 가장 좋았지만 마지막의 「재회」도 좋았다. 사실 이 작품만 결이 좀 다르게 쓸쓸하다고 생각했는데 작가의 말을 읽고 깨달았다. 이 작품만 제대로 읽은 거구나. 어쨌든 이 단편집을 읽어서 기뻤다.
23. 카르밀라(조셉 토머스 셰리던 르 파뉴, 최윤영 역. 초록달. 2015. 254쪽)
: 오스트리아 교외의 고성에 사는 로라는 아버지와 가정교사 둘 외에는 교류를 할 만한 친구가 없다. 아버지의 지인인 슈필스도르프 장군이 조카딸을 데리고 오기로 했던 약속이 미뤄지자 실망을 감출 수 없는데, 아버지와 산책을 하던 중 성 근처를 지나던 낯선 마차가 사고로 멈추고 거기서 내린 아름다운 부인은 자신이 사정이 있다며 로라 또래의 아름다운 소녀 카르밀라를 성에 맡긴다. 놀랍게도 카르밀라는 로라가 12년 전에 겪었던 무서운 일화 속 여인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최초의 여성 뱀파이어 소설.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에 영감을 줬다고 하는데 브램 스토커의 뱀파이어보다 카르밀라가 훨씬 더 매혹적이고 지능적이다. 카르밀라의 로라에 대한 격정과 집착은 당혹스럽기도 했으나 햇빛과 음식에 대해 큰 거부감이 없는 점이라든지 이름 안에 갇혀 있다든지 - '카르밀라'라는 이름을 애너그램 하는 것 외의 다른 이름은 쓸 수 없다 - 하는 점은 흥미로웠다. 예전에 모파상의 『오를라』를 읽고 꽤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카르밀라는 훨씬 더 아름답고 더 치명적이며 반드시 없애버리고 싶도록 밉다.
24. 유 러키 도그(줄리아 런던, 이은선 역. 황금시간. 2022. 535쪽)
: 다니던 회사에서 잘리고 1인 업체를 차려 홍보일을 하는 칼리. 달랑 둘 있는 고객은 별별 잡일까지 시키며 속을 썩이고, 얼마 전 이혼한 엄마는 성 해방을 외치며 당혹스러운 생활을 하고 독박 육아에 시달리는 언니는 수시로 칼리를 호출해댄다. 녹초가 되어서 귀가한 어느 날, 칼리는 엄마 때문에 떠맡게 된 우울한 바셋하운드 백스터 대신 명랑하고 깜찍하며 버릇없는 헤이즐이 쇼파 위에 앉아 있는 걸 발견한다. 수소문 끝에 약쟁이 도그워커의 구속으로 개가 바뀌었음을 알게 된 칼리는 자신의 개를 데리고 있는 뇌과학자 맥스의 집으로 달려가고, 이성적인 연애 무능력자 맥스는 칼리의 특별한 외모와 불같은 성격에 흥미를 느낀다.
전형적인 로코. 생각했던 대로 흘러가고, 심지어는 둘 사이를 방해하는 외부 갈등 요소조차 짐작했던 그대로이다. 그래도 분위기 환기를 위해 알고 선택한 거여서 재밌게 읽었다. 이런 책은 해피 엔딩이 보장되어 있으니까. 칼리가 가족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 아쉽지만. 사실 현실이었다면 절대로 이렇게 핑크빛으로 예쁜 얘기가 될 수 없겠지. 어이없는 부모님이야 귀엽게 봐줄 수 있겠지만 대책없이 넷째를 임신한 언니 미아나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맥스의 동생 제이미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으니(사실 제이미보다 미아가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핑크빛이어서 좋았다.
25. 딜리터(김중혁. 자이언트북스. 2022. 294쪽)
: 소설가 강치우는 경찰서에 참고인으로 소환된다. 전 여자친구 소하윤이 사라졌기 때문. 강치우는 자신과 관계 없는 일이라고 잡아떼지만 형사는 지인이 실종됐는데도 느물거리며 말장난을 하는 강치우가 의심스럽다. 경찰서를 나와 사인회에 간 강치우는 자신이 'Missing & Find'의 대표라는 백연우의 명함을 받게 된다. 곧 'Missing & Find'가 필요할 거라면서. 강치우는 늘 믿고 일을 맡기는 이기동에게서 주소를 받아서 찾아가는데, 그 곳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볼 수 있는 여자 조이수가 있다.
픽투스레이어. 세상은 4개의 레이어로 이루어져 있다. 지구가 첫번째. 생물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가 두번째. 그리고 세번째가 여분 레이어. 픽투스레이어의 리더 픽토르는 이 여분 레이어를 볼 수 있다. 네번째는 공허, 암흑. 딜리터는 두번째 레이어인 이 세상에서 사람/사물을 세번째 레이어로 보낼 수 있다. 소설 속에서는 포토샵이 이 픽투스레이어를 본따 만들어졌다고 했지만 내 짐작에 작가가 포토샵의 영향을 받아 이 소설을 쓴 거 같다. 이 작가는 뭐랄까, 점점 효과적인 뻥쟁이가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초반 작품들은 작가 특유의 능글거림 아래 꽤 깊이가 있었는데 이제는 어떻게 하면 내 뻥을 믿게 할까만 연구하는 것 같다. 작중에서 조이수의 습관적인 거짓말들이 허투루 읽히지 않는다. 다 작가 자신의 평소 말버릇이 아닐까 싶기까지 하다. 같은 맥락에서, 작가의 말조차 못 믿겠다. 건물, 갖고 있을 거 같아.
: 부제('감각의 향연')에 걸맞게 우리의 감각을 깨우는 음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확히 말하면, 최음의 음식들. 대단히 특이하거나 구하기 힘든 것들은 전혀 아니다. 어쩌면 일상에서 늘 접할 수 있는 음식들을 좀더 에로틱하게 제대로 활용할 수 있게 이끌어준다.
사실 이 책은 30금이다. 실오라기 하나 없이 완전한 누드보다는 레이스 사이로 슬몃 드러나는 한 뼘의 살갗이 더 관능적임을 아는 사람만이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책 뒤의 최음제 레시피는 감사한 덤이다.
2. 결혼식 가는 길(존 버거, 김현우 역. 열화담. 2020. 199쪽)
: 화자는 성당 앞에서 '타마타Tamata(그리스 정교에서 누군가에게 기적이나 도움이 필요할 때, 기도와 함께 교회에 바치는 편액. 6쪽)'를 판다. 철도 신호원으로 일하는 장이 온 몸이 아픈 딸을 위해 타마를 사러 온다. 장의 딸 니농은 잠시 반했던 남자에게서 에이즈에 감염됐고 이를 연인 지노에게 알리고 헤어지려 하지만 지노는 니농과의 결혼을 밀어부친다. 장은 스쿠터를 타고 프랑스 알프스 근처에서, 니농의 엄마 즈데나는 장거리 버스를 타고 프라하에서 딸의 결혼식이 열리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근처까지 오는 여행길에 오른다.
초반에 화자가 개입하는 부분이 몽환적이어서 좀 헤맸다. 장의 부성애, 니농과 지노의 사랑, 장과 즈데나의 사랑과 이별, 즈데나와 버스에서 만난 토마스의 이야기가 꿈결처럼 섞이고 풀어지며 아름답게 펼쳐진다. 이 작가의 장편은 처음인데 단편들보다 훨씬 좋았다.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간단하고 단순한 이야기같겠지만 작가 특유의 순하게 풀어지는 몽환의 느낌에 비극의 처절함이 더해져 가슴 깊은 곳을 건드리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었다. 결국 타마타는, 손에 쥐어지는 물건이 아니라 마음 속의 사랑인 것.
3. 상아의 문으로(구병모. 문학과지성사. 2021. 223쪽)
: '나'는 아침에 세수를 하며 나 자신을 천천히 재구성한다. 얼굴 부근에 물을 적시며 얼굴이 거기에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증상'은 나에게만 생기는 현상이 아니다. 잠을 잊은 이 도시의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꿈도 현실도 아닌 상태. 정신차려 보면 출근해 있고, 정신차려 보면 식사를 막 끝냈다. 나는 계속 생활 속을 부유한다.
작가의 전작들과는 분위기가 좀 다르다 싶었지만, 돌아보면 그렇게 이질적인 것만도 아니다. 전작들이 담고 있던 그 많은 상징들을 생각하면. 이 작품은 상당히 사변적이고, 마치 현대 무용을 보는 것 같다. 아름답지만 해석이 쉽지 않았고 신경을 온통 집중하다보니 나중에는 오히려 기절하듯 잠에 빠질 뻔 했다. 166쪽에 반전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확 정신차리지 못했을 지도. 의심스러웠으나 의심하고 싶지 않았던 진실이 드러났다. 역시 이 작가는 날 실망시키지 않는다.
4. 파워 오브 도그(토머스 새비지, 장성주 역. 민음사. 2021. 389쪽)
: 작가의 이름이 맘에 들어서 선택한 책인데, 나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다. 1924년 몬태나 주의 한 목장. 37세 필과 35세 조지 두 형제가 함께 살고 있다. 영리하고 상대방의 생각을 잘 이해하지만 그 명민함을 사악하게 사용할 줄 아는 필. 우직하고 원칙주의적이지만 사회성이 부족한 조지. 이들은 늘 모든 일을 함께 하고 심지어는 침실도 하나를 나누어 쓴다. 한편 심약한 의사 고든은 아내와 함께 의사가 한 명도 없는 마을에 이주해 와 집을 고치고 진료를 보며 살아간다. 힘든 생활에 알콜 의존도가 높아지긴 하지만 곧 태어난 아들과 아내와 함께 그럭저럭 꾸려나가던 중, 읍내로 소를 몰고 나온 목장 주인에게 모욕을 당하는 일이 생긴다.
처음에는 이 책이 또다른 햄릿 이야기인 줄 알았다. 뒷표지의 책 소개글 때문에, 『에드거 소텔 이야기』가 생각났다. 뒷표지의 스포일러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조금씩 드러나는 필의 비밀과 피터의 행보가 흥미로웠다. 결말은 짐작대로였지만 읽는 내내 한순간도 뻔하다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딱 원하는 결말. 그럴 줄 알았지만 알았어도 통괘했다. 또한 피터에 대한 배척에도 불구하고 그의 성정때문에 불편하지 않아서 좋았다. 그리고 애니 프루의 해설도 좋았다. 특히 마지막 문장이.
5. 에냐도르의 전설(미라 발렌틴, 한윤진 역. 사일런스북. 2020. 542쪽)
: 오래 전 에냐도르에는 네 인간 왕국이 있었다. 그 중 한 왕국의 왕자가 대마법사를 찾아가 대륙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을 묻자 대마법사는 그에게서 의지를 뻇고는 그를 화염을 다스리는 드래곤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각 왕국의 왕자들은 아름다움을 뺏기고 다른 존재를 눈빛으로 제압하는 데몬, 감정을 뺏기고 자신들만의 문스틸로 만든 강철검을 가진 엘프 족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왕자는 대마법사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았고 대마법사는 그의 의지를 높이 사면서 그에게 마법의 힘을 조금 주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인간 종족은 장자를 무조건 엘프에게 바쳐 군 훈련을 받고 화살받이로 희생당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고, 드래곤은 데몬에게 종속당해 그들에게 노예로 부려지게 되었다. 엘프 왕국과 데몬 왕국의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고아인 트리스탄은 자신을 키워준 집의 장자인 카이를 대신해서 징집된다. 카이는 마력을 갖고 있으나 엘프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숨기고 있었고, 마을 사람이 징집관에게 고발하자 카이의 여동생 아그네스가 대신 끌려간다. 카이는 트리스탄과 아그네스를 끌고 간 무리를 뒤늦게 따라가는데...
아무래도 시리즈의 시작이고 이야기의 기본 세계관을 소개하는 부분인지라 진행이 더딜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오히려 시리즈 전체를 놓고 볼 때 1권이 가장 재밌었다. 네 종족의 주요 등장인물들이 만나서 관계가 형성되고 감정이 폭발하면서 앞으로의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6. 세련되게 해결해 드립니다, 백조 세탁소(이재인. 안전가옥. 2021. 362쪽)
: 이 출판사는 교정이 너무 엉망이라 집어들기 꺼려지는데 이 책은 오랫동안 국문학을 읽지 않아서 생긴 번역문 피로감 때문에 집어들었다. 애시당초 기대가 없어서였는지도 모르지만, 즐겁게 읽었다. 세탁소 딸 백은조는 서울에서 어떻게든 자리 잡아보려 동동거리다가 다 접고 고향 여수로 내려온 참이다. 부모님이 갑자기 은퇴를 선언하고 해외 여행을 떠나버려서 세탁소는 오롯이 은조 몫이다. 성공적으로 재개발되서 상대적으로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뽐내는 옛 극동1단지와 재개발 변죽만 울리고 있는 극동2단지 사이에 위치한 백조 세탁소. 은조는 브레이크 타임까지 도입하며 그저 슬슬 시간만 떼우려 하지만 의도치 않게 자꾸만 동네 일들에 휘말린다.
과하게 똑똑하거나 심각하지 않고 그저 관찰력이 좋고 까칠하지만 주위 상인들에게 또 승질대로는 못하는 주인공과 얄밉지만 어찌됐든 결과적으로는 은조 편이 되어주는 동네 터줏대감들의 캐릭터가 친근하고 현실감 있는 점이 좋았다. 이 시리즈가 계속되어도 좋을 것 같다.
7. 에냐도르의 파수꾼(미라 발렌틴, 한윤진 역. 사일런스북. 2020. 551쪽)
: 2권이니만큼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된다. 아그네스와 엘프 왕자 이스타리엘, 엘프의 감옥에 갇혀 있는 마법사 엘리야와 카이, 그리고 카이를 따라다니는 비범한 하얀 염소 그바일로와 카이가 구해줬지만 더럽게 틱틱대는 하녀 그레타, 카이의 여정에서 만나게 된 데몬 툴과 드래곤 스호토크, 그리고 트리스탄과 한 부대에 속한 남장여자 마론과 이스타리엘의 여동생이자 트리스탄에게 신분을 속인 이조라의 관계가 정신없이 얽혀 뻗어나간다.
사랑에 빠진 엘프의 피는 귀하다. 엘프는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대다수의 엘프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사랑에 빠진 것과 다르지 않다. 집착이라는 것도 어긋나긴 했지만 사랑의 한 행태가 아닌가. 근데 이 시리즈의 사랑은 그냥 사랑이 아니다. 막장의 조짐이 70쪽에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한다. 비단 엘프가 사랑에 빠져서 생기는 문제 만도 아니다. 모든 종족이 사랑에 기반한 움직임을 보인다. 슬슬 걱정스러워지기 시작했다.
8. 에냐도르의 화염(미라 발렌틴, 한윤진 역. 사일런스북. 2020. 525쪽)
: 고구마 전개. 마법사 엘리야의 권력에 대한 집착과 독단이 원인이기는 한데, 등장인물들도 정신 못차린다. 차라리 엘리야는 대의명분이라도 있지 - 그 명분도 공감이 안 가긴 하지만 - 나머지 인물들은 모두 사춘기 소년들 같다. 사랑 타령만 해대고, 대의는 돌아보지 않은 채 당장의 자신의 감정과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만 움직인다. 사실 이건 엘리야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이 새끼도 대륙의 평화와 안정은 그냥 명분일 뿐이고 사실은 지 자존심이 제일 중요한 거 아닌가 싶다. 물론 이쯤에서 위기가 닥치리라고는 예상했지만 어이없는 이유로 파수꾼들이 흩어지고, 역시 납득이 안 되는 이유로 모든 인물들이 움직인다. 특히 엘프의 왕이 지질한 새끼 빌런을 감싸고 도는 게 어이없었다. 그냥 작가가 쓰다보니 빌런을 하나쯤은 남겨둬야 해서 억지를 쓰고 있는 것도 같고. 암튼 좀 많이 질렸다.
9. 에냐도르의 유산(미라 발렌틴, 한윤진 역. 사일런스북. 2020. 671쪽)
: 힘겹게 마지막 권까지 왔다. 어떻게든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걸 보고 싶어서. 기,승,전,결이 모두 사랑이었다. 애시당초 모든 문제의 시작이 그 망할 놈의 사랑 때문이었던 것. 이놈의 사랑 타령 지겨워 죽겠다. 아주 단 것만 몇 날 며칠을 과식한 기분. 게다가 캐릭터들은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흐물거리고 - 특히 트리스탄. 왜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 거냐? - 엉뚱한 캐릭터 - 새끼 빌런 호리엘 - 가 급부상하는 것도 이상하다. 얘가 뭐, 불사신이야? 갑자기?
세계관과 설정이 꽤 탄탄하다고 생각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사랑 범벅에 질렸다. 하지만 나와 맞지 않았을 뿐, 말했듯 잘 짜인 설정은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부디 이 책을 읽는 YA들이 사랑은 적절한 상대와 괜찮은 환경에서 제대로 해야 한다는 걸 깨닫기를.
10. 내가 행복한 이유(그렉 이건, 김상훈 역. 허블. 2022. 531쪽)
: SF단편집. 김초엽이 추천했다고 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몇 작품은 내 취향이었지만 아닌 것도 꽤 있었다. 사실 첫 작품 「적절한 사랑」이 매우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어서 계속 읽어나갔던 건데, 첫 작품만한 작품이 뒤에는 없었다는 게 아쉽기는 하다. 꽤나 그로테스크했던 첫 작품은 무엇보다 여성의 신체를 감정적/경제적 명분을 내세워 착취하는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어 인상깊었다. 가장 좋았다. 표제작도 나쁘지는 않았는데, 주인공에 깊이 공감했다. 왜 그렇게 다들 질색하는지, 겪어본다면 주위 인물들을 이해하게 될까? 「바람에 날리는 겨」도 좋았다.
11. 카지노 베이비(김성봉. 한겨레출판. 2022. 311쪽)
: '나'는 한때 큰 광산이 있던 카지노 도시 지음의 전당포 집 손자이다. 나이는 열 살 정도이지만 출생 신고가 되어 있지 않아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 전당포 주인인 '할머니'는 명품 감정까지 자기가 배워서 할 정도로 생활력이 강하지만 '엄마'는 늘 불안증에 시달리고 '삼촌'은 "랜드가 무너진다"며 늘 소리를 질러댄다. 사실 나는 이들이 내 출생 가족이 아님을 알고 있다. 나는 전당포에 맡겨진 아이이다.
화자가 마냥 영악하지 않아서 좋았다. 눈치 빤한 거야 얹혀 사는 아이이니 당연한 거고. 그렇다고 특별하지 않은 건 아니니까.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걸 알고 있다. 그러기 위해 반드시 또래보다 영악해야 하는 건 아니다. 소설은, 어쩌면 클리셰일 수도 있지만 도박촌으로 전락해 버린 옛 탄광 도시에 토박이와 외지인이 섞여 만들어 내는 이야기들이 과거와 현재의 영락을 반영하며 전개된다. 조금은 헐렁하게 흘러가는 듯도 하지만 나쁘진 않았다. 특히 박수무당의 굿판에서의 나의 이야기는 이 작가가 앞으로 조금만 더 깊이를 갖게 되면 어떨까 하는 기대를 갖게 했다. 작가의 이름을 기억해 둬야겠다.
12. 세번째 호텔(로라 벤덴버그, 엄일녀 역. 문학동네, 2021. 328쪽)
: 클레어는 5주 전 교통사고로 죽은 남편을 대신해 쿠바 아바나의 공포영화제에 온다. 택시 기사에게 주소를 잘못 불러주는 바람에 두 군데의 호텔을 거쳐 마침내 예약했던 호텔에 도착했고, 그래서 이 호텔을 세번째 호텔이라고 부른다. 남편이 고대했던 좀비 영화 상영회에 가려 했지만 마치 투명막이라도 생긴 듯 영화관에 들어갈 수가 없고, 클레어는 발길을 돌려 거리를 헤맨다. 그러다 어느 박물관 앞, 익숙한 흰 정장을 입은 남편의 모습을 발견하고, 남편은 스쿠터를 타고 사라져 버린다.
분명 죽었는데 눈 앞에 나타나 '여기서 뭐하는 거냐'며 묻는 남편. 공포스러울 수 있겠지만, 그리고 책 소개에도 공포 소설임을 이야기했지만 공포보다는 혼란 쪽의 비중이 더 크다. 처음에는 남편을 너무나 사랑한 클레어의 애도라고 생각했으나 - 그리고 진짜 유령 혹은 살아 있지만 자신의 죽음을 가장한 것이길 바라기도 했으나 - 읽을 수록 혼란스럽다. 클레어의 사랑도, 남편의 존재도. 사실 정말 중요한 건 클레어의 마음이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13. 다른 여름(김희진. 폭스코너. 2022. 275쪽)
: 장세오는 백화점 명품관을 돌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신을 꾸민다. 마지막으로 맘에 드는 여행 가방까지 구입한 그는 지하철에서 대중들을 향해 자신과 온전히 하루를 함께 있어준다면 그 명품 여행 가방을 선물하겠다고 얘기하지만 그의 의도를 곡해한 사람들의 냉대와 업신여김만 받을 뿐이다. 지친 마음으로 공원에서 쉬고 있던 장세오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남자에게서 2년 만에 도착한 스페인어 편지를 꼭 번역해야만 하는 여자 조소라를 만난다.
자칫 멀멀할 수도 있는 이야기이지만, 장세오의 사정 - 한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피부가 검은 - 과 조소라의 편지가 작품에 색을 입힌다. 작품 안에서 잊을 만 하면 등장하는 작가의 전작들 속 인물들을 반가워하며 읽다가 뜻밖의 결말에 마음이 내려앉았다. 그래도 딱 맞는 결말이었다고 생각한다. 장세오에게도, 작품에도.
14. 메이든스(알렉스 마이클리디스, 남명성 역. 해냄. 2022. 423쪽)
: 런던에서 상담치료사로 일하고 있는 마리아나. 인생의 사랑이던 남편 세바스찬을 1년 전에 휴가지에서 익사 사고로 떠나보내고 상실감을 힘겹게 극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부모님과 언니 부부까지 모두 사별했기에 이제 그녀에게 남은 혈육은 케임브리지에 다니는 조카 조이 뿐이다. 그룹 상담 치료에서 자신에게 집착하는 환자 때문에 고민하던 중, 조이가 두려움에 떠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온다. 친구 타라가 살해되었다고. 마리아나는 조이를 위해 케임브리지로 향한다.
다 의심스럽다. 마리아나에게 집착하는 환자 헨리, 타라와 부적절한 관계였다고 조이가 의심하는 에드워드 포스카 교수, 케임브리지까지 오는 열차 안에서 마리아나에게 접근한 남학생 프레드 그리고 이 사건에 법의학 심리학자로 관여하고 있는 마리아나의 지인 줄리안까지. 사실 마리아나는 처음부터, 총애하는 여학생들만 모아서 사적 모임을 갖는 에드워드 포스카 교수를 지목하고 혼자서 조사를 한다. 추리소설이 다 그렇지만 들쑤시고 다니는 주인공이 너무 불안했다(그래서 차라리 돈받고 일하는 탐정이나 경찰이 주인공인게 훨씬 맘이 편하다). 마리아나는 딱히 조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기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움직인다. 이에 대한 해명이 에필로그에 나오지만 석연치는 않다. 그래도 마지막 챕터에서 작가의 전작 속 주인공과의 만남은 반가웠고, 이 작품이 시리즈로 발전해서 프레드와 마리아나의 관계 변화와 마리아나의 성장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15. 비올레트, 묘지지기(발레리 페랭, 장소미 역. 엘리. 2022. 588쪽)
16. 주홍색 여인에 관한 연구(셰리 토머스, 이경아 역. 디앤씨미디어. 2022. 470쪽)
: 1880년대, 홈스 가의 네 딸 중 셋째 샬럿은 유부남과 한 침대에 있다가 그의 부인에게 발각된다. 사교계에 얼굴을 못 들고 다니게 된 샬럿. 이건 명민한 그녀의 계획이었다. 때가 되면 교육을 받고 혼자 살아갈 수 있게 해주겠다는 아버지의 약속이 묵살되자 독신을 고수하기 위한. 샬럿은 불합리하고 위선적인 집을 뛰쳐나와 혼자 살기 시작한다. 한편 샬럿의 추문에 동반자였던 남자의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죽고, 죽기 직전 저녁에 샬럿의 언니 리비아와 말다툼을 했다는 게 드러난다. 또한 아버지의 옛 약혼녀 또한 죽은 채 발견된다.
비상한 지능과 탁월한 감각을 지닌 샬럿이 아니면 이 시리즈는 탄생하지 못했겠지만 난 리비아에게 더 마음이 쓰였다. '인간 혐오자가 아닌 척 하는 인간 혐오자'(50쪽)인 리비는 나와 닮았다. 이 책은 셜록 홈즈가 여성이라면, 하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샬럿은 누구보다 총명하고 능력 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제약에 갇혀 쓸모없는 인간 취급을 받는다. 리비아 또한 자신의 진가를 발견하지 못하고 나날이 풀이 죽어가고만 있다. 하지만 여러 조력자와 샬럿 자신의 힘으로 상황을 개선하고 자신만의 분야를 개척해나가는 샬럿은 마치 슈퍼히로인 같았다. 이 시리즈를 선택한 과거의 나를 칭찬해 주고 싶다.
17. 벨그라비아의 음모(셰리 토머스, 이경아 역. 디앤씨미디어. 2022. 459쪽)
: 살인 사건인지 자연사인지(혹은 자살인지) 모호했던 지난 번과 달리 이번엔 명백한 살인 사건이다. 비록 트래들스 경사는 이 건을 셜록 홈스에게 의뢰할 생각이 전혀 없지만. 셜록 홈스인 척 하며 갖가지 사건을 의뢰받아 해결해 주고 있던 샬럿은 뜻밖에도 오랜 벗이자 첫키스 상대였던 잉그램 경의 아내 레이디 잉그램의 의뢰를 받게 된다. 왓슨 부인과 그녀의 조카 페넬로페의 도움을 받아 파악한 레이디 잉그램의 의뢰는 결혼 전 사랑했던 연인과 1년에 한 번씩 스쳐지나기로 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불안하니 그의 행방을 알려달라는 것. 샬럿은 그 남자를 조사하던 중 뜻밖의 진실과 마주한다.
본격적인 사건 조사의 시작인데, 전권보다 재미가 덜했다. 일단 트래들스 경사. 좋게 봤는데, 이런 남성우월주의자이자 열등감 덩어리일 줄이야. 샬럿에 대한 존경심이 사그라든 거야 그 잘난 도덕 의식 때문이라 쳐도 - 난 셜록이 여성이라는 점도 한몫 했다고 보지만 - 가업을 경영하고픈 아내의 바람을 위험하고 여성스럽지 못하며 남편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보는 게 어이없었다. 게다가 밴크로프트 경의 미묘한 태도도. 샬럿의 지적 능력은 인정하면서도 그걸 그저 유희거리로 돌리려 하다니. 뭐, 당대에 드물지도 않은 인간상이었겠지. 사실 이야기가 재미가 덜했던 건 꽤 많은 우연이 남용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밴크로프트가 장난감으로 던져 준 10년 전의 암호문이 현재의 살인과 바로 연결되는 건 납득하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이 비호감 캐릭터들이 시리즈의 진행에 따라 어떻게 바뀔지, 샬럿과 리비아는 또 어떻게 성장할 지 계속 지켜보고 싶다.
18. 드래곤 펄(이윤하, 송경아 역. 사계절. 2020. 420쪽)
: 구미호 민은 엄마, 이모들, 사촌들과 함께 진주시 외곽에 살고 있다. 가난한 민의 희망은 얼른 우주군에 입대해서 이 집을 벗어나는 것. 오빠 준은 이미 우주군에 입대했다. 어느 날 조사관이 찾아와 준이 막강한 힘을 가진 드래곤 펄을 찾아 동료들과 탈영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밥상으로 둔갑해서 그 얘기를 듣던 민은 얼결에 조사관을 폭행하고 집을 나온다. 어릴 때부터 우주군 입대가 소원이었던 준이 탈영할 리 없다고 생각한 민은 준을 찾아 돌아가기로 하고 준이 소속된 우주선으로 향한다.
기대를 갖고 읽기 시작했으나 군데군데 드러나는 서양식(?) 시각이 좀 실망스러웠다. 나리네 도박장이 '행운의 붉은 색과 황금색'으로 장식되어 있다든지, 도깨비인 수진 이마에 솟은 뿔과 그녀를 계속 고블린으로 칭한다든지. 처음 민이 집안 형편이나 현재 상황 같은 건 생각도 안 하고 다 뒤엎었을 때부터 집중이 좀 안 되긴 했는데, 이러한 설정의 어긋남에 더해 캐릭터들이 좀 산만하고 개연성이 부족하다. 이 책 읽어보고 괜찮으면 『나인폭스 갬빗』도 읽어볼까 했는데, 이 작가는 나와는 잘 안 맞는 것 같다.
19. 비키니(제임스 패터슨, 맥신 패트로, 나중길 역. RHK. 2010. 443쪽)
: 하와이의 수영복 화보 촬영 현장에서 모델 킴이 사라진다. 언론의 취재 경쟁이 벌어지고, 전직 경찰이자 현직 기자인 벤은 이 건을 취재하기 위해 하와이로 간다. 나름의 조사를 하지만 결국 킴은 시신으로 발견되고, 킴의 부모님까지 희생당한다.
뒷표지에서 살인범이 책을 의뢰한다는 설정이 재밌을 것 같아서 대출했는데, 살인범의 접촉은 한참 뒤이다. 거의 전반부는 위의 살인사건 이야기. 저자가 보여주고 싶었던 건 진짜 사이코패스는 제 손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그 놈이 아니라 그 놈을 사주한 다른 인간들이라는 거 같은데, 그냥 끔찍할 뿐. 게다가 내가 궁금했던 살인범의 집필 의뢰 부분은 그냥 시시하게 넘어가 버리고 만다. 기대보다 별로였던 이야기.
20. 절연(정세랑 외. 문학동네. 2022. 410쪽)
: 동아시아 작가들이 한 가지 주제로 쓴 앤솔러지. 주제는 물론 절연이다. 사실 난 우리 작가 외의 동아시아 작가들에게는 별 관심이 없어서 큰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고, 첫 작품(「無」,무라타 사야카)이 내가 가진 일문학에 대한 선입견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 같아서 계속 읽을 지 망설였지만 사랑하는 정세랑 작가의 작품을 위해 달려보기로 했다(사실 애시당초 정세랑 작가가 아니라면 이 책을 집어들지도 않았을 거다). 그 뒤로도 쭉 지루하다가 티베트 출신의 라샴자 작가의 「구덩이 속에는 설련화가 피어 있다」가 딱 내 취향의 작품이었고, 그 뒤에 대만 출신 렌밍웨이 작가의 「셰리스 아주머니의 애프터눈 티」도 (작품 줄거리 자체와는 별개로) 맘에 들어 기분이 좀 좋아졌다. 그래도 역시 가장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린 건 정세랑 작가의 「절연」.
뒤에 실린 정세랑 작가와 무라타 사야카 작가의 대담에서도 나온 얘기지만 '절연'은 엄청 가볍거나 매우 무겁게 느껴지는 단어이다. 난 가볍게 써본 적은 없다. 사실 일상에서 쉽게 쓰는 단어도 아니고. 역시 정세랑 작가가 이 단어의 무게감을 잘 반영했다. 중국의 하오징팡 작가, 태국의 위왓 럿위왓웡사 작가, 홍콩의 홍라이추 작가의 작품들은 주제에서 미묘하게 틀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물론 해석하기 나름이고, 갖다 붙이면 붙이겠지만. 이게 지역(나라)적, 언어적인 특징인지 아니면 작가 개인의 역량인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이 작가들을 일부러 찾아 읽진 않을 것 같다.
21. 펀치 에스크로(탈 M.클레인, 정세윤 역. 구픽. 2018. 459쪽)
: 이게 재미가 없었던 게 내 상태 때문이었는지 혹은 나와 안 맞는 하드SF에 도전한 탓이었는지, 혹은 작품 별로였던 건지....2147년 인공지능 훈련 전문가 salter인 조엘은 전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순간이동기술 기업 IT의 엔지니어인 아내 실비아와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허니문 여행지인 코스타리카로 여행을 가기로 한다. 춘간 이동 센터에 도착한 조엘의 앞에 왠지 어색해 보이는 여자가 끼어들고, 조엘이 막 순간 이동을 시작하려는 찰나 테러가 발생해서 코스타리카의 순간 이동 센터가 파괴된다. 아내의 상사이자 IT의 간부인 빌이 나타나 조엘을 안심시키며 IT 본사로 데려가려고 하는데, 순간 조엘의 모든 통신이 단절되고(ID가 삭제되는 것과 같음) 조엘은 코스타리카에 이미 또다른 자신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작가는 나름의 탄탄한 이론을 바탕으로 상당히 정교하게 설정을 했다. 이게 주석에 빼곡히 설명되어 있다. 이 책에 흥미를 잃은 데엔 사실 초반에 주석 이해하려고 애쓰다가 지친 탓도 좀 있다. 그리고 조엘의 심리적인 갈등 - 순간 이동 기술의 비밀이라고 하는 것 - 또한 공감이 되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이동하는 줄 알았어? 난 처음부터 순간 이동이란 그런 거일 거라고 상상해 왔고, 책 초반의 모나리자 실종(?) 사건을 언급한 걸로 보아 책 속의 순간 이동 기술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조엘이 충격을 받고 갈등하고 사방팔방을 다 건드리고 다니는 게 심드렁했다. 하지만 만약 이걸 할리웃 영화로 봤더라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돈 주고는 안 봤겠지만.
22. 저주 토끼(정보라. 아작. 2017. 326쪽)
: 이 작가의 최신 작품들을 차례로 읽고 있지만 이 책을 가장 읽어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도서관에서 내게도 차례가 돌아왔다. 첫 작품이자 표제작이 너무 좋아서 기쁜 마음을 가득 안고 읽기 시작했는데, 바로 뒤의 「머리」는 좀 엽기적이었다. 그로테스크한 세 편(「머리」,「몸하다」,「덫」)과 서늘하게 아름다운 세 편(「저주 토끼」, 「차가운 손가락」, 「안녕, 내 사랑」)이 번갈아 나오고 상대적으로 평이하게 느껴졌던 「흉터」를 지나 「즐거운 나의 집」에 이르렀는데, 정말정말 좋았다. 앞의 작품을 읽고 몇 시간 후 이 작품을 읽었는데 초반에는 흔하디 흔한 한국문학 단편 같은 분위기인 줄 알고 실망했다. 하지만 이 작가만의 방식으로 매끈하게 풀어가는 걸 읽으면서 금세 신나졌다. 게다가 작은 반전도. 작품 속 그녀가 부럽기까지 했다. 「즐거운 나의 집」이 가장 좋았지만 마지막의 「재회」도 좋았다. 사실 이 작품만 결이 좀 다르게 쓸쓸하다고 생각했는데 작가의 말을 읽고 깨달았다. 이 작품만 제대로 읽은 거구나. 어쨌든 이 단편집을 읽어서 기뻤다.
23. 카르밀라(조셉 토머스 셰리던 르 파뉴, 최윤영 역. 초록달. 2015. 254쪽)
: 오스트리아 교외의 고성에 사는 로라는 아버지와 가정교사 둘 외에는 교류를 할 만한 친구가 없다. 아버지의 지인인 슈필스도르프 장군이 조카딸을 데리고 오기로 했던 약속이 미뤄지자 실망을 감출 수 없는데, 아버지와 산책을 하던 중 성 근처를 지나던 낯선 마차가 사고로 멈추고 거기서 내린 아름다운 부인은 자신이 사정이 있다며 로라 또래의 아름다운 소녀 카르밀라를 성에 맡긴다. 놀랍게도 카르밀라는 로라가 12년 전에 겪었던 무서운 일화 속 여인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최초의 여성 뱀파이어 소설.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에 영감을 줬다고 하는데 브램 스토커의 뱀파이어보다 카르밀라가 훨씬 더 매혹적이고 지능적이다. 카르밀라의 로라에 대한 격정과 집착은 당혹스럽기도 했으나 햇빛과 음식에 대해 큰 거부감이 없는 점이라든지 이름 안에 갇혀 있다든지 - '카르밀라'라는 이름을 애너그램 하는 것 외의 다른 이름은 쓸 수 없다 - 하는 점은 흥미로웠다. 예전에 모파상의 『오를라』를 읽고 꽤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카르밀라는 훨씬 더 아름답고 더 치명적이며 반드시 없애버리고 싶도록 밉다.
24. 유 러키 도그(줄리아 런던, 이은선 역. 황금시간. 2022. 535쪽)
: 다니던 회사에서 잘리고 1인 업체를 차려 홍보일을 하는 칼리. 달랑 둘 있는 고객은 별별 잡일까지 시키며 속을 썩이고, 얼마 전 이혼한 엄마는 성 해방을 외치며 당혹스러운 생활을 하고 독박 육아에 시달리는 언니는 수시로 칼리를 호출해댄다. 녹초가 되어서 귀가한 어느 날, 칼리는 엄마 때문에 떠맡게 된 우울한 바셋하운드 백스터 대신 명랑하고 깜찍하며 버릇없는 헤이즐이 쇼파 위에 앉아 있는 걸 발견한다. 수소문 끝에 약쟁이 도그워커의 구속으로 개가 바뀌었음을 알게 된 칼리는 자신의 개를 데리고 있는 뇌과학자 맥스의 집으로 달려가고, 이성적인 연애 무능력자 맥스는 칼리의 특별한 외모와 불같은 성격에 흥미를 느낀다.
전형적인 로코. 생각했던 대로 흘러가고, 심지어는 둘 사이를 방해하는 외부 갈등 요소조차 짐작했던 그대로이다. 그래도 분위기 환기를 위해 알고 선택한 거여서 재밌게 읽었다. 이런 책은 해피 엔딩이 보장되어 있으니까. 칼리가 가족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 아쉽지만. 사실 현실이었다면 절대로 이렇게 핑크빛으로 예쁜 얘기가 될 수 없겠지. 어이없는 부모님이야 귀엽게 봐줄 수 있겠지만 대책없이 넷째를 임신한 언니 미아나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맥스의 동생 제이미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으니(사실 제이미보다 미아가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핑크빛이어서 좋았다.
25. 딜리터(김중혁. 자이언트북스. 2022. 294쪽)
: 소설가 강치우는 경찰서에 참고인으로 소환된다. 전 여자친구 소하윤이 사라졌기 때문. 강치우는 자신과 관계 없는 일이라고 잡아떼지만 형사는 지인이 실종됐는데도 느물거리며 말장난을 하는 강치우가 의심스럽다. 경찰서를 나와 사인회에 간 강치우는 자신이 'Missing & Find'의 대표라는 백연우의 명함을 받게 된다. 곧 'Missing & Find'가 필요할 거라면서. 강치우는 늘 믿고 일을 맡기는 이기동에게서 주소를 받아서 찾아가는데, 그 곳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볼 수 있는 여자 조이수가 있다.
픽투스레이어. 세상은 4개의 레이어로 이루어져 있다. 지구가 첫번째. 생물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가 두번째. 그리고 세번째가 여분 레이어. 픽투스레이어의 리더 픽토르는 이 여분 레이어를 볼 수 있다. 네번째는 공허, 암흑. 딜리터는 두번째 레이어인 이 세상에서 사람/사물을 세번째 레이어로 보낼 수 있다. 소설 속에서는 포토샵이 이 픽투스레이어를 본따 만들어졌다고 했지만 내 짐작에 작가가 포토샵의 영향을 받아 이 소설을 쓴 거 같다. 이 작가는 뭐랄까, 점점 효과적인 뻥쟁이가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초반 작품들은 작가 특유의 능글거림 아래 꽤 깊이가 있었는데 이제는 어떻게 하면 내 뻥을 믿게 할까만 연구하는 것 같다. 작중에서 조이수의 습관적인 거짓말들이 허투루 읽히지 않는다. 다 작가 자신의 평소 말버릇이 아닐까 싶기까지 하다. 같은 맥락에서, 작가의 말조차 못 믿겠다. 건물, 갖고 있을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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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1 19:07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2023/02/06 14:27 #
비공개 답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