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1구역 - ![]()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승욱 옮김/은행나무 |
아포칼립스 소설인 줄 모르고 집어들었다. 난 그냥 작가를 선택했을 뿐. 작품은 post apocalypse라서 충분히 사색적이었고 마크 스피치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정적이어서 내가 좋아할 요소들이 꽤 있었다. 그런데 진도가 너무 안 나갔다. 절반 정도 읽었을 때 깨달았다. 번역이...... 이 번역가 처음도 아니고 이전에 읽었을 때 번역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 없는데. 이 작가 문장이 어렵나? 형용사가 많긴 하지만. 문장들 자체가 어색해서 피곤했다.
그가 보기에 진짜 영화는 화면 속 영화가 끝난 뒤, 불가사의하게도 모든 것이 예전 모습으로 돌아갈 때부터 시작이었다.
- 197쪽
종말의 역병이 한차례 지나간 후, 재건 작업이 시작된다. 버팔로에 임시 중앙정부격의 기관이 세워지고, 헛된 희망같은 소문들 끝에 마크 스피치는 구조되고 용병이 되어 제1구역에서 군인들이 '해골'을 처리하고 지나간 건물들의 '붙박이 망령'을 처리하는 일을 맡는다.
시종일관 회색빛이다. 희망 따윈 초반에 잠깐 비추다 사라진다. 마치 신기루처럼 멀리서 반짝이지만 조금도 가까워질 수 없다. 이 빌딩만 소개하면, 여기만 처리하면 곧 더 나아지겠지, 제2구역도 생기겠지 하는 생각은 찰나에 스칠 뿐. 그냥 꾸역꾸역 하루를 보낼 뿐이다. 해골을 피하고 붙박이 망령들을 청소하며.
결말이 맘에 들었다. 클리셰일지언정. 난 멸망한 세상의 최후의 일인은커녕 구출되는 몇 천명 중에도 들지 못하겠지만, 그래서만은 아니다. 내가 초반에 희생될 무명씨라고 세상의 완전한 종말을 바라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런 존재가 나타났을 리 없으니. 모든 결말은 필연적이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를 수 밖에 없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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