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레드 조앤 - ![]() 제니 루니 지음, 허진 옮김/황금시간 |
여든이 넘은 조앤은 신문에서 대학 때 지인인 윌리엄이 죽었다는 걸 알게 된 후 자신의 평온한 여생은 끝났다는 걸 직감한다. 바로 다음날 정보국 요원들이 그녀를 찾아오고, 그녀는 왕실 변호사로 활동하는 아들에게 알려지는 게 두려워 모든 반박할 권리를 포기한 채 자신이 어떻게 대학 신입생 때 러시아 출신의 발랄한 소냐와 소냐의 사촌 레오와 알게 되었고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일들을 했는지 얘기한다.
처음에는 흥미로웠는데 뒤로 갈수록 짜증이 났다. 조앤 때문에. 캠브리지에 진학이 확정되자 입을 옷부터 맞춰 준 엄마에게서 자란 조앤이 규칙 따윈 가볍게 무시하는 소냐에게 휘둘린 것도, '각자 자신의 능력에 맞게 책임을 져야'(28쪽) 한다고 얘기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조앤이 공산주의에 호기심을 가지게 된 것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레오 말대로 되어가는 게 화가 났다. 비록 그녀가 행동한 게 레오의 말을 따른 게 아니라 그녀 자신의 생각이었다 해도 결과적으로는 레오가 말한 대로 했기 때문에. 아니, 난 그녀가 조국을 배신했기 때문에 화가 난 게 아니다. 그녀가 레오에게 다시 희망을 품었기 때문에, 사랑해 줄 다른 남자보다 사상을 우선시했기 때문에, 닉의 비난처럼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 믿음이 레오가 그녀를 이용하기 위한 세뇌라는 걸 몰랐기 때문에 화가 났다.
게다가, 폭탄에 대한 억제책으로 폭탄을 만들도록 돕다니, 그 얼마나 모순인가. 단순히 저쪽에서 칼을 들었기 때문에 나도 칼을 든다는 개념이 아니지 않은가. 난 왼뺨을 맞고도 오른뺨을 들이대는 비폭력주의자는 아니지만 양쪽 진영에서 각각 폭탄을 들고 있어야 평화가 유지될 거라는 생각은 어이없었다. 거기에 더해 내 나라가 약속을 어겼다고 상대 나라에 정보를 줌으로써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믿을 만큼
물론 이건 소설이다. 조앤은 작가가 실존 인물에서 영감을 얻긴 했지만 그 인물 자체도 아니고. 또, 여성이 혼자서 외출할 수 있게 된 지 채 몇 년이 지나지 않은 시대에, 여성이 대학을 졸업해도 학위가 아닌 수료증만을 받는 시대에 조앤이 그나마 자기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화를 내는 건 작가가 그만큼 잘 썼다는 얘기라는 것도.
어쩌면 난 그냥 조금 슬펐던 건지도 모르겠다. 세계사에서 그렇게 혼란스러웠던 시기가 없었다면, 그런 큰 전쟁이 없었다면, 그렇게 무서운 무기가 개발되지 않았다면...... 부질없기는 하지만, 그리고 그런 시대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삶을 살지 않음이 감사하긴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은 후 한참 동안 깊게깊게 숨을 쉬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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