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대』, 줌파 라히리(스포 있음)

저지대 - 10점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마음산책


캘커타, 1940년대에 겨우 15개월 차로 태어난 수바시와 우다얀. 형 수바시는 차분하고 순응적이고, 동생 우다얀은 진취적이고 열정적이다. 모든 놀이와 공부를 함께하지만 대학은 각각 진학하고, 형은 노력 끝에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 인도에 남은 동생은 당시 조금씩 들썩이던 공산주의에 발을 디디게 되고, 친구의 여동생과 집안에서 환영하지 않는 결혼을 한다.

인도 현대사와 맞물려 두 형제의 삶, 아니 정확히는 수바시와 우다얀의 아내(였던) 가우리의 삶을 이야기한다.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선택을 해나간 그들의 삶을. 아무래도 수바시가 먼저 등장하기도 했고 또 많은 챕터들이 수바시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수바시에게 많이 공감하게 되기는 하지만, 그래서 나도 중반 이후까지는 가우리가 조금 원망스러웠지만 문득 내가 놓친 부분을 깨달았다. 나도 모르게 60년대에 미국에 사는 인도 남성의 논리만을 따르고 있음을.

누가 가우리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녀가 수바시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벨라에게 헌신적이지 않다고 그녀를 비난하려거든 그녀와 같은 것을 잃어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잃은 건 사랑만은 아니다.

세상엔 마음의 방을 딱 한번만 채울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가우리 방의 주인은 수바시도, 벨라도 아니었다. 우다얀도 아니었지. 그저 그녀 자신뿐. 그래도, 가우리에 대한 미움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녀도 대가는 치렀다. 그녀의 삶은 '발가벗겨졌고, 결국 혼자가 되었다.'(382쪽)

수바시가 행복을 찾고 가우리는 쓸쓸함은 가진 채 혼자 남는 건, 그리고 벨라가 가우리와 닮은 듯 다른 삶을 사는 건 뻔하고 전형적인 결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중간중간 우다얀의 이야기를, 우다얀과 함께 했던 가우리의 목소리를 들려줌으로써 뻔함을 탈피한다. 이 이야기에서 인도 근대사는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건 개인의 선택이다. 배경에 그 어떤 역사적 사건이 있든 혹은 그저 사소해 보이는 평범한 일상적 사건이 있든 한 명의 개인에게는 그 자신의 선택만큼 거대한 건 없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 대가를 치르며 인생을 완성해가는 것이다.

by 달을향한사다리 | 2020/04/03 14:17 | Yujin's Book Story | 트랙백 | 핑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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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이 소년이 좋았던 것 같다. 이 작가의 문장만큼이나. 2. 남자, 방으로 들어간다(니콜 크라우스, 최준영 역. 민음사. 2008. 381쪽) 3. 저지대(줌파 라히리, 서창렬 역. 마음산책. 2014. 543쪽) 4.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테네시 윌리엄스, 김소임 역. 민음사. 2007. 182쪽)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오다가 '묘지'라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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