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독서 목록

일 폭탄 맞은 상황. 리뷰는 틈틈이...

1. 파랑 대문(최윤. 현대문학. 2019. 211쪽)
: 누구와도 친했던 구름샘 마을의 아이들. 세월이 흘러 소녀는 어른이 되고, 이국땅의 병원에 누워있다. 폭행의 흔적. 아이를 잃은 상미는 남편 정우에게 폭행을 당하기 직전에 S의 방문이 있었다는 걸 얘기하지 않고 정우도 S를 얘기하지 않는다.

진실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으면서, 진실을 알지만 서로에게 얘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솜씨좋게 풀어냈다. 사실 등장인물들 누구에게도 공감하기 쉽지는 않았지만 숨죽이고 가만히 이들을 지켜볼 정도의 애정은 가질 수 있었다. 조금은 쓸쓸했던 이야기.


2. 묻히지 못한 자들의 노래(제스민 워드, 황근하 역. 위즈덤하우스. 2019. 403쪽)
: 열 세 살 조조. 자신을 정말 사랑하는 파파와 마마, 갓난동생 케일라와 함께 살고 있다. 생모 레오니는 거의 집에 안 들어오고, 백인 아빠 마이클은 언제부턴가 사라졌다. 레오니가 갑자기 마이클이 출소할 때 조조와 케일라가 함께 마중을 가야한다고 주장하고, 조조는 레오니와 함께 레오니 친구의 차를 타고 교도소로 향한다. 그리고 그 곳엔 오랫동안 집에 돌아가지 못했던 가여운 영혼 리치가 기다리고 있다.

표현하기 힘들게 아름답다. 단순히 잠들지 못한 영혼의 한풀이만도 아니고 미국 사회 저변에 깊이 묻혀 있는 인종주의를 비판하는 데에 그치지만도 않는다. 시아버지에게 총으로 위협받을 수 밖에 없는 레오니 커플의 이야기와 '마마'의 죽음의 자리와 레오니에게만 보이는 그와 나무에 열매처럼 매달려 있던 흑인들과 조조와 케일라에게는 절대 주어지지 않는 레오니의 사랑과 끝내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리치의 이야기가 슬프지만 슬픔을 드러내지 않으며 펼쳐진다, 죽은 이를 위로하는 만가도, 죽은 이에게서 내뿜어진 저주도 아닌 노래로.


3. 마침내(에드워드 세인트 오빈, 공진호 역. 현대문학. 2018. 305쪽)
: 그렇다. 마침내 이 시리즈의 끝이야기이다. 어머니의 장례식날. 4권에서 조금은 일반적인 삶으로 돌아온 듯 보였던 패트릭은 다시 술의 유혹에 굴복하여 요양원에 있다가 겨우 퇴원했고, 아내와도 헤어진 상태다. 아버지의 죽음을 수습했던 날과 마찬가지로 어머니에 대해 좋은 이야기만을 들으며 자신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던 어머니의 선함을 확인하는 패트릭. 그러나 마침내 그의 '원죄'였던 양친이 모두 사망함으로써 패트릭은 이제 과거에서 놓여날 수 있지 않을까. '과거는 소각되기를 기다리는 송장(57쪽)'이기에 어머니를 묻으며 이제 과거까지 소각해버리면, 패트릭도 조금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의 말대로 '구원받고 싶은 마음을 갖지 않'(249쪽)음으로써 '진보'할 수 있을 것이다.


4. 기억의 습지(이혜경. 현대문학. 2019. 143쪽)
: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필성은 같은 마을의 베트남인 새댁 응웬의 친정 식구들을 마중하는 자리에 함께한다. 베트남 어를 아주 조금 할 줄 안다는 이유로. 응웬은 죽었고, 이야기는 응웬의 죽음 이전의 이 작은 마을에서 필성과 응웬, 필성과 김을 보여준다.

전쟁의 참혹함과 그 안에 던져졌던 자와 살아남은의 트라우마, 이념 갈등의 희생자, 매매혼에 내던져진 여성의 힘겨움 등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인생이 흘러가버린 이들의 이야기. 내용의 무게에 비해 문장이 가볍고 서사에 여백이 많다. 분량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 차라리 길이를 늘려서 서사를 제대로 진행시켰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후반부가 너무 급박하게 흘러가는 느낌. 김의 이야기를 좀더 했어야 했다. 그래야 김의 마지막 말이 공감됐을 듯.


5. 썸씽 인 더 워터(캐서린 스테드먼, 전행선 역. 아르테. 2019. 499쪽)
: 결혼한 지 겨우 두 달 남짓 지났을 뿐인 에린. 숲 속에서 깊은 구덩이를 파고 있다. 옆에 놓여 있는 건 남편 마크의 시체이다. 잘생기고 능력있는 은행가 마크와 결혼한, 가능성을 인정받은 다큐 감독인 에린의 결혼 생활이 무너진 건 신혼 여행지인 보라보라섬의 바닷속에서 발견한 무엇 때문이다.

아니, 사실 어떤 관계가 끝나기 위해 반드시 외부의 어떤 요소가 개입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위험 요소는 늘 내재되어 있고, 그걸 촉발시키는 게 때로는 외부에서 오는 것 뿐이다. 물론 이 책은 스릴러이기에 외부의 명시적인 위협이 있지만 독자를 가슴 졸이게 하는 건 외부의 그것이 아니다. 바로 에린 자신이다. 그녀의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허술함과 무모함이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독자를 긴장시킨다. 그리고 그 점 때문에 조금 짜증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때문에 더더욱 에린의 편에서 에린을 응원하게 되기도 한다. 다행스럽게도 결국 모든 건 해피하게 흘러간다. 도입부가 길어서 조금 지루하긴 했지만 재밌게 읽었다. 에린의 다음 이야기가 이어졌음 좋겠다.


6. 뒤바뀐 교환학생(크리스티네 뇌슬링어, 김재희 역. 지니책. 2017. 286쪽)
: 비엔나의 에발트 가족은 에발트의 영어 교육을 위해 여름방학동안 영국인 교환학생을 받기로 한다. 그런데 오기로 했던 모범생 톰 대신 그의 형 재스퍼가 도착하고, 재스퍼는 첫날부터 기이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초등 저학년 대상인 듯 한데, 너무 올드하다. 어쩌면 내 안의 꼰대 기질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내용의 책으로 어린이들이 대체 뭘 깨달을 수 있는지, 이게 과연 성장 소설인지 하는 생각이 든다. 아픔이 있으면 사회성 따위 없어도 그냥 봐줘야 하나? 그걸 교정해 주는 게 진짜로 아픔있는 아이를 위한 길이 아닌가? 결말도 어색하다. 차라리 전형적이더라도 이상적인 결말을 만들던가. 과정은 현실과 동떨어져있었으면서 결말만 현실적인, 30여년 전에나 통했을 듯한 이야기이다.


7. 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정이현. 현대문학. 2018. 166쪽)
: 약사 세영은 지방에서 호텔 경영을 하는 남편과 떨어져 중학생 딸과 지낸다. 학부모로서의 역할이 버겁고 생활이 무거운 세영과 연고도 없는 곳에서 혼자 지내면서도 자유롭지는 않은 남편 무영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사실 조금 아쉽다. 세영이 참석해야하는 학폭위의 부담감과 무영의 무기력함과 외로움 등의 디테일은 섬세하지만 뭔가 알맹이가 빠진 듯한 느낌. 이야기 자체로 충분치 않은 느낌이다.


8. 벨칸토(앤 패칫, 김근희 역. 문학동네. 2019. 431쪽)
: 일본인 기업가 호소카와의 생일파티가 남미 어느 부통령관저에서 열린다. 호소카와의 투자를 노리고 열린 이 생일파티에는 각국의 기업가들이 참석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호소카와는 자신이 경애해 마지 않는 소프라노 록산 코스의 특별 공연 하나만 바라고 이 곳에 왔다. 록산 코스의 공연이 막 마무리되려는 참에 갑자기 관저가 정전이 되고, 테러리스트들이 잠입한다.

1996년 페루의 일본 대사관 인질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한다. 장기화되는 인질 사태에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변화되는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이전까지는 머리로만 알았던 스톡홀름 신드롬이 이해되기도. 끔찍한 범죄지만 그런 범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었던 배경과 테러범들의 인간적인 모습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게 해줬다. 현실적인 결말도. 재밌게 읽었다.


9. 더 와이프(메그 윌리처, 심혜경 역. 뮤진트리. 2019. 393쪽)


10. 가을(앨리 스미스, 김재성 역. 민음사. 2019. 333쪽)
: 여덟 살의 엘리자베스. 숙제를 위해 이웃집 노인 대니얼을 인터뷰하려 하지만 엄마는 그가 '늙은 호모'라며 막는다. 하지만 싱글맘 엄마로부터 충분한 애정을 받지 못하는 엘리자베스에게 대니얼은 따뜻하게 다가오고, 둘은 자주 강가를 거닐며 우정을 나눈다. 그리고 20년 후, 대니얼은 요양원에 있고 엘리자베스는 미술사를 가르친다.

대니얼과 엘리자베스가 산책을 하며 나누는 긴 대화가 따뜻하게 맘 속으로 스몄다. 비록 엘리자베스가 전부를 기억하지 못한대도 그녀의 맘 속에 자리해서 그녀를 이끌어주는, 그리고 20년 후 대니얼의 길고 긴 꿈에 자리하는. 대니얼의 언어는 엘리자베스 엄마의 언어와 확연히 대비되었다.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듣고 싶은 말만 듣는 엄마와 달리 대니얼은 엘리자베스가 상상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하고 그녀의 이야기에 귀기울인다. 그리고 그 대화는 그녀를 그녀가 그림을 그녀만의 시선으로 읽도록 이끈다.

이 작가의 장점이 가장 포근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국내 출간된 작품들은 거의 다 읽었는데 이번 작품이 가장 좋았다. 4계절을 연작으로 낸다니, 안 읽은 나머지 3개의 이야기가 정말로 기대된다.


11. 어제는 봄(최은미. 현대문학. 2019. 175쪽)
: '나'는 등단 10년차 무명 작가이다. 늘 쓴다고만 하면서 제대로 쓰고 있지는 못하는 나는 자료 수집을 위해 경찰서의 이선우 경사를 만난다.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 남편과 딸, 그리고 이선우 경사와의 관계, 또한 내 어두움의 근원이 묻혀 있는 이 곳과 고향 사이의 작은 산. 이야기는 모든 것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충분히 보여주면서 서서히 진행된다.

봄은 흔히 많은 것들의 시작을, 생명의 탄생을,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봄도 가을 혹은 겨울만큼 춥다. 조금만 마음을 놓아버리면 감기에 걸리고 또 조금 더 꽁꽁 싸매면 금세 여름이 되어버리는 찰나의 계절이기도 하다. 이 소설의 화자는 바로 그 중간을 딛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온 몸에 힘을 주고 간신히 버텨낸 어제가 바로 봄이었다는 걸, 지난 다음에야 깨닫는다.


12. 마인드리더(크리스토퍼 판즈워스, 한정훈 역. 북로드. 2018. 416쪽)
: 존 스미스는 다른 사람의 생각에 접근하여 그것을 읽고 조정까지 할 수 있다. CIA에서 특수훈련까지 받았으나 현재는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어느 날 억만장자 슬론이, 자기 회사의 소스를 훔쳐낸 젊은 천재 프레스턴의 기억을 지우고 그 소스를 무력화해달라는 제안을 한다.

킬링타임용으로 딱이다. 미드 한 편 보는 듯. 재미도 있지만 타인의 고통을 유발하면 자신도 고통받는다는 점에서 생각할 거리도 소소하게 던져준다. 꽤 재밌긴 했지만 '지적유희'라는 광고문구는 글쎄. 머리 비우기 좋았다.


13. 소설 보다 : 봄-여름 2018(김봉곤 외. 문학과지성사. 2018. 162쪽)
: 큰 기대 없이 작가들을 탐색한다는 기분으로 집어들었는데 대체로 좋았다, 정지돈만 빼고. 정지돈은 진짜 지루했다. 다른 작품들은 빨아들이듯 읽었고 뒤의 인터뷰도 흥미로웠지만 정지돈은 인터뷰마저 지루했다. 읽기 전엔 김봉곤이 지루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는데. 어쨌든 이렇게 가볍게 문학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획 자체는 참신한 것 같다.


14. 아자젤(보리스 아쿠닌, 이항재 역. 아작. 2019. 347쪽)
: 19세기 말 모스크바. 공원에서 권총 자살 사건이 일어난다. 하급 관리 에라스트 판도린은 이를 조사하던 중 자살한 젊은이가 공원까지 오기 전에도 비슷한 시도를 했었다는 걸 밝혀내고 좀더 심층적인 조사에 들어간다.

딱히 재미는 없었다. 당시(19세기) 러시아의 생활상이라든가 사회 분위기는 매우 섬세하게 묘사해서 꽤 흥미를 끌었지만 추리 소설로서의 흡입력은 별로. 하지만 전반적으로 꽤 유쾌한 분위기이다. 판도린의 순진합과 원칙주의가 그에게 행운을 가져다주고 그의 조사에 시너지 효과를 낸다. 아자젤이라는 단체의 신념과 방식도 흥미로웠다. 책 속에선 사회근간을 흔드는 나쁜 단체인 것처럼 등장인물들에게 받아들여지지만 그건 당시 러시아가 계급사회였기 때문이 아닐까? 만약 이 단체가 실재했다면 꽤 효율적으로 출신에 따른 불평등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는 당시 러시아 사회에 혁명의 분위기가 무르익었음을 나타내는 것이겠지. 어쨌든 이 작가, 더 읽을 생각은 없다.


15. 보이지 않는 정원(김유진. 문학동네. 2018. 261쪽)
: 이 작가는 왠지 청력이 예민할 것 같다, 나처럼. 다수의 작품들에서, 숨어 있는 문장들에서 소리에 대한 섬세한 반응이 느껴졌다. 내용으로는 평범(?)한 한국 소설들이다. 들어봤음직한 이야기들. 하지만 크케 신산하지도, 발랄하지도 않은 이 이야기들이 이 작가의 큰 장점이기도.


16. 지금 이 순간의 행운(매튜 퀵, 이수영 역. 중앙북스. 2014. 335쪽)
: 바솔로뮤는 얼마 전에 어머니를 병으로 잃었다. 39살이 되도록 독립은 커녕 직업조차 가져본 적이 없는 바솔로뮤는 배우 리처드 기어를 너무나 좋아해서 병상에서 아들을 리처드라고 불렀던 엄마를 생각하며 리처드 기어에게 편지를 쓴다. 슬픔 극복을 위한 심리 상담을 해주러 집에 방문하는 대학원생과 엄마가 다니던 성당의 맥내미 신부, 짝사랑하는 도서관의 사서녀 등등.

이 작가는 뭔가를 혹은 누군가를 잃은 사람의 모습을 잘 묘사하는 듯. 울지 못하는 바솔로뮤의 마음 같은 거. 사실 좀더 섬세한 문장을 기대했는데 바솔로뮤의 투박한 문체로는 충족되지 못할 기대였다. 내용적으로도 좀... 뭐랄까, 작가가 왠지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쓴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전작이 훨씬 좋았다.


17. 아들(요 네스뵈, 노진선 역. 비채. 2015. 612쪽)
: 이 작가는 처음이다. 명성을 확인하려고 읽었는데, 나쁘지 않았다. 오슬로 교도소에서 장기 복역중인 소니. 다른 재소자들에게 성자로 불리는 그는 재소자들의 고해성사를 들어주고 그들에게 축복을 내리는 신비한 분위기를 견지하고 있지만, 교도소 부소장의 주도 아래 부유층의 범죄를 대신 뒤집어쓰며 자포자기의 삶을 이어가고 있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탈옥을 한다.

역시 재밌었다. 명성이 그냥 쌓이는 건 아니지. 캐릭터에 따라 좀 허술한 부분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잘 짜여있는 스토리가 꽤 흡입력있었다. 아직 이 작가만의 특별함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앞으로도 종종 읽을 것 같다.


18. 내 여자친구의 아버지들(김경욱. 문학동네. 2019. 253쪽)
: 표제작이 인상깊었다. 딱 김경욱스러운 이야기라는 느낌.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 속으로 자연스럽게 하지만 치명적으로 흘러들어가는 과정에 대한 묘사가 뛰어나다. 그 상황들 때문에 종종 짜증스럽기도 했지만 재미있게 읽었다. 가장 좋았던 건 「밤낚시」.


19. 살인기술자(토니 파슨즈, 박미경 역. 북플라자. 2018. 431쪽)
: 유능한 은행가가 살해된 채 발견된다. 목이 예리한 흉기로 단번에 잘려 소리조차 못 내고 죽은 것. 형사 맥스 울프는 피해자가 있던 회사 건물 계단에서 '돼지'라는 낙서를 발견하고, 곧 피해자 책상 위 고등학교 사진 속 친구들이 살해당하기 시작한다.

다른 시리즈라면 맬러리 경감이 주인공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때로는 맥스 울프처럼 인간적인 경찰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언론에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곡해되고, 마주친 살인범에게 얻어맞는 모습이 인터넷에 뿌려지고. 재밌긴 한데 많은 걸 알고 있는 독자 입장에선 중간에 경찰이 헛다리 짚는 부분이 많이 지루하다. 특히 연쇄살인범의 특징에 대한 강의는 사족. 딱히 반전은 없다. 범인도 악질도 처음 짐작했던 그 사람이다. 로맨스 부분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어색해. 왜 그녀를 좋아하는지 묘사가 불충분하다. 그럼에도 울프 경정을 계속 보고 싶다.


20. 길고 긴 나무의 삶(피오나 스태퍼드, 강경미 역. 콜. 379쪽)
: 부제("문학, 신화, 예술로 읽는 나무 이야기") 때문에 문학적으로 깊이 있는 학술서를 기대했으나 그냥 에세이였다. 물론 문학, 신화에서 해당 나무와 관련된 부분을 언급하기는 하는데 그냥 가볍게 건드리는 정도이다. 그래도 나무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는 즐거움은 있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평가가 바뀐 주목이나 한국이 언급된 벚나무 이야기라든지 역시나 사람의 욕심이 문제인 올리브 납치 이야기 등도 재밌었고 산사나무 울타리 만드는 법도 인상적이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건 마가목. 보통 사악한 마법으로부터의 보호해준다고 한다. 나도 한 조각 갖고 싶었다. 기대없이 읽었다면 꽤 재밌었을 듯.


21. 밤에 들린 목소리들(스티븐 밀하우저, 서창렬 역. 현대문학. 2017. 487쪽)
: 작가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나보다. 전작이 정말 좋았어서... 아이디어나 소재가 나쁘진 않았는데 풀어가는 방식이 좀 평범했다. 딱 내가 예상했던 대로 전개되는 바람에 지루함마저 느껴졌다. 『에드윈 멀하우스, 완벽하고 잔인한 인생』은 안 이랬다고. 어쩌면 내가 이 작가한테만 너무 엄격한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아르카디아」는 정말 좋았고 표제작도 맘에 들었다.


22. 라스트 코요테(마이클 코넬리, 이창식 역. 랜덤하우스코리아. 2010. 519쪽)
: LA에 지진이 나고, 해리의 소중한 집도 무너졌다. 연인은 해외로 나가버렸고 해리는 상사를 폭력적으로 위협해서 징계와 함게 정신 상담까지 받아야 한다. 상담을 받으며 어머니의 죽음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 해리는 미결로 남은 어머니 살인 사건을 재조사하기로 한다.

해리의 방식은 변한 게 없는데 이번에는 왠지 그의 방식이 자꾸만 못마땅했다. 그의 심리의 근원을 알 것 같으면서도 연민과 함께 그래도 극복했으면, 덜 가혹했으면 하는 마음. 이야기 자체는 매우 흥미로웠다. 일반적인 추리소설의 긴박함은 없지만 해리의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즐거움과 함께 독자도 알고 해리도 아는 범인을 어떻게 잡아 죄값을 치르게 할 건지 지켜보는 즐거움이 있다. 물론 반전도 있어서, 범인은 그 사람이 아니다. 해리 보슈 시리즈 4권인데, 주인공에 대한 내 애정이 많이 깊어진 것 같다.


23. 경이의 땅(앤 패칫, 조은경 역. 문학동네. 2015. 490쪽)
: 제약회사의 임상병리학자 머리나. 동료 에크먼 박사의 죽음을 알리는 편지가 도착한다. 에크먼 박사는 회사가 투자하여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진행을 독촉하기 위해 아마존에 갔다가 목숨을 잃은 것. 시신조차 돌려보내지 않은 상황에서 남편의 죽음을 믿지 못하는 에크먼 박사의 부인 캐런의 부탁으로 머리나는 아마존으로 향한다.

아마존으로 들어가기 전, 초반 부분은 좀 지루하다. 게다가 주인공 외의 캐릭터들이 비호감이어서 더 진도가 더뎠다(특히 머리나의 연인이면서 회사 사장인 폭스 씨. 대체 왜 안 헤어진거야?) 어쩌면 내 맘 상태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읽다가 리뷰들을 보니 반전이 있는 성장 소설이라는 글들이 보여 꾸역꾸역 읽었다. 난 진심으로 머리나의 성장을 바랐으니까. 그런데 반전은 처음 내가 설마했던 바로 그것이었고 머리나도 성장을 하긴 했으나 충분하지는 않았다. 전에 읽은 이 작가가 꽤 괜찮았어서 읽었는데 아마 더는 안 읽을 것 같다.


24. 일주일(김려령. 창비. 2019. 299쪽)
: 작가 도연은 이스탄불에 혼자 여행을 갔다가 대학 강사 유철을 만나 함께 일주일을 보낸다. 몇 년 후 지방 도시의 북콘서트에서 국회의원인 유철과 다시 만나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평범하고 무난한 사랑 얘기인 듯 해서 계속 읽어야하나 망설였지만 '모성이데올로기 좆같네(59쪽)'라고 딸 앞에서 얘기하는 주인공 때문에 계속 읽었다. 평범한 사랑 얘기라고 한다면 할 수 있겠지만 아니라면 또 아니었다. 일단 주인공들 직업에서 생기는 여러 갈등이 있었고 상황에서 오는 갈등도 있었다. 하지만 주인공 자신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없어서 순하게 읽혔고 그래서 좋았다. 가끔씩 책 속 주인공에게 과몰입하는 내게 이 소설은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읽을 수 있는, 쉬어가는 이야기였다. 남녀 주인공들 캐릭터도 맘에 들었지만 사실 제일 좋았던 건 full name도 안 나온 김보좌관.


25. 위험한 시간 여행(조이스 캐롤 오츠, 고상숙 역. 북레시피. 2019. 392쪽)
: 가까운 미래, 하나로 통합된 북미 연합국은 국가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 전체주의적 국가이다. 누구든 체제에 대한 비판을 드러내기만 하면 최악의 경우 존재 자체가 삭제당할 수 있다. 젊은 시절의 반항적인 행동 때문에 사회등급이 하위로 떨어진 아버지와 존재를 삭제당한 삼촌이 있는 고등학교 졸업반 아드리안. 졸업식 고별사에서 배운 대로가 아닌 자신만의 역사적 시각을 드러냈다가 추방령을 받고 80년 전의 시골 대학으로 존재가 이동된다.

생활도 문화도 심지어 언어조차도 생경한 곳으로 강제로 이송된 아드리안의 외로움이 손에 잡힐 듯 생생했다. 마치 늦은 밤 혼자 거실에 앉아 베란다 유리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건물 안의 고요에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하지만 뒷부분으로 갈수록 힘이 달리는 느낌. 작가가 공들여 설명한 심리학의 행동주의 이론 부분은 사실 좀 지루했고, 소설가라면 이론을 길게 설명하며 등장인물들을 앉혀놓고 이론에 관해 토론하게 하는 대신 이야기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사족이라는 느낌이었다. 결말도 좀 어리둥절했고, 약간은 찝찝하기까지. 이 작가 처음이니 한 권 정도 더 읽어보고 판단해야겠다.

by 달을향한사다리 | 2019/11/04 12:27 | Yujin's Book Story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oblivion.egloos.com/tb/4177233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