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미너리스』, 엘리너 캐턴

루미너리스 1 - 6점
엘리너 캐턴 지음, 김지원 옮김/다산책방


1866년 뉴질랜드, 월터 무디는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호키티카에 도착한다. 지친 몸으로 호텔로 간 그는 휴식을 위해 흡연실에 들어가는데, 그 안에는 미묘한 분위기를 공유하고 있는 인종도 직업도 계층도 다른 12명의 남자들이 있다. 곧 무디에게 해운업자 발터가 다가와 말을 걸고, 금과 정치인과 죽음과 실종과 자살 시도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철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잘 기획된 소설. 별자리 차트를 펼쳐놓고 등장인물을 구성한 뒤 각 챕터의 제목들을 뽑아놓고 글을 쓰기 시작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어느 지점에서는 개스코인이 안나와 만나고, 이쯤에선 뢰벤탈이 카버를 처음 봤던 이야기를 털어놓고 하는 타임 라인을 작가가 미리 만들어두고 거기에 맞춰 이야기를 진행시켰을 거라는 말이다. 물론 많은 소설들이 이런 방식으로 쓰인다는 걸 알고 있긴 하지만 왠지 이런 방식은 내겐 드라마나 영화를 구성하는 방식처럼 보이고, 나는 작가들이 종종 얘기하듯 작가는 이야기의 시발점만 제공하고 등장인물들이 그 안에서 스스로 사건을 만들고 달려가는 듯한, 살아 움직이는 그런 이야기를 더 선호한다. 설사 내가 읽는 모든 소설들이 이같은 방식대로 쓰여졌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계획대로 착착 맞춰서 구성했어요, 하는 게 티나지 않게 잘 감추기라도 했어야 했다는 얘기다. 물 위에 떠 있는 백조의 우아함을 칭송할 수 있는 건 물 밑에서 부산하게 움직이는 발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기에.

각 챕터의 제목은 그 챕터에서 전개될 이야기를 암시하고, 원본에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제목 밑에 요약문이 한두 줄 있는데 그 문장들이 비문인 경우가 많아 상당히 거슬린다. 그 외의 교정 오류도 많고. 게다가 책의 서문부터 별자리 차트를 언급해서, 무지한 나로서는 미리 검색이라도 해보고 읽어야겠다 싶었는데 그게 은근히 부담스러웠다. 결국 등장인물 소개+해당 인물의 별자리+각 별자리별 특징과 수호성+행성별 특징 등을 검색해보고 나름대로 손으로 정리해 놓은 A4 2장짜리 메모를 옆에 두고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을 듯. 오히려 그렇게 부담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기에 이야기를 즐기지 못했을 지도 모르겠다. 아마 별자리 차트에 정통한 사람이 읽으면 정말 재미있었을 수도, 혹은 작중인물들이 해당 별자리의 성격을 너무 전형적으로 드러내서 평면적으로 느꼈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별로라는 얘긴 절대 아니다. 그냥 편하게 즐길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얘기. 다만 여러 광고 문구들처럼 '천재적인 작가의 압도적인 이야기' 까지는.... 따로 포스팅을 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이 책을 아직 안 읽었고 읽을 계획이 있는 독자님이라면 그냥 편하게 즐기시라는 것. 기대 없이 집어든다면 빠져들만한 책이다.

by 달을향한사다리 | 2019/07/02 10:45 | Yujin's Book Story | 트랙백 | 핑백(1)
Linked at 타인에게 말걸기 : 6월 독서.. at 2019/07/03 12:21

... 까. 저자도 서문에서 깊이 있는 미술사 책은 아니라고 했고, 신문에 연재했던 컬럼을 엮은 것이니만큼 딱 그만한 무게감을 갖고 있다. 18. 루미너리스 1.2.(엘리너 캐턴, 김지원 역. 다산책방. 2016. 528쪽, 676쪽) 19. 거울 보는 남자(김경욱. 현대문학. 2018. 164쪽) : 남편의 1주기. 무덤에 다녀오던 '나'는 지하철에서 남편과 닮은 ...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