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스퀘어』, 헨리 제임스

워싱턴 스퀘어 - 10점
헨리 제임스 지음, 임정명 옮김/책세상


의사인 슬로프는 깊이 사랑했던 아내를 잃고 평범하고 둔감한 딸 캐서린과 결혼 못한 여동생과 산다. 캐서린은 별다른 연애 사건 없이 스무 살을 넘기고, 사촌동생의 약혼 파티에서 사촌 제부의 먼 친척인 모리스와 만나 사랑에 빠지는데, 아버지 슬로프는 그를 탐탁지 않아 한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별다를 것 없는, 19세기 미국 상류사회의 결혼/연애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뛰어난 점은 스토리에 있지 않다. 독특한 캐릭터와 직접적이지 않으면서도 등장인물의 내면을 잘 드러내는 묘사가 작가의 내공을 보여준다.

작품 초반에서는 무력한 느낌을 주던, 정말 둔한 느낌의 캐서린. 이미 이 자체로도 꽤나 특이한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못생기진 않지만 매력이 없는 여주인공이라니. 물론 이는 그녀 아버지의 시각으로 서술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역시 일반적이지는 않은 캐릭터이지 않은가. 게다가 캐서린은 결혼을 반대하는 아버지에게 거세게 반항하지 않는다. 연인과 도망은 커녕 크게 상심하는 모습을 드러내놓고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유순하게 아버지의 뜻에 따르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마음을 유지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의무를 다한다.

아버지 슬로프 또한 그간의 문학 작품에서 보기 힘든 캐릭터이다. 딸을 물리적으로나 권위적으로 막아서지 않는다. 작품에서도 말했듯 딸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내버려둔다. 부성애라기보다는 동료애 같은 느낌. 어쩌면 애당초 애정이 없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모리스를 싫어하는 이유도 가난 때문이거나 직업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저 사람을 꿰뚫어보는 것이다.

이 두 독특한 캐릭터의 시너지가 꽤나 즐겁다. 과연 이 이야기가 어떻게 결론이 날지 지켜보는 것도 긴박함은 없지만 나름 흥미진진했다. 그리고 마음에 쏙 드는 결말까지. 사실 처음에는 만연체 문장이 좀 부담스러웠다. 문장 자체가 빙빙 돌려 말하는 듯한 느낌. 첫 한두 페이지는 단어 하나하나를 곱씹어가며 읽느라 속도가 좀 떨어졌지만 금방 적응되기는 했다. 아무래도 이런 문장 때문에 작품의 초반에 아버지의 시선을 따라가게 되는 경향도 있었고.

전체적으로 정중동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작품은 내게 헨리 제임스라는 작가에 대해 가진 애정을 배가시켜 주었다. 즐거운 독서였다.

by 달을향한사다리 | 2019/07/02 09:43 | Yujin's Book Story | 트랙백 | 핑백(1)
Linked at 타인에게 말걸기 : 6월 독서.. at 2019/07/03 12:21

... 시하는 내용 때문에. 그래도 다음 권은 안 읽을 것 같다. 11. 깃털 도둑(커크 월리스 존슨, 박선영 역. 흐름출판. 2019. 428쪽) 12. 워싱턴 스퀘어(헨리 제임스, 임정명 역. 책세상. 2007. 381쪽) 13. 나쁜 소녀의 짓궂음(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송병선 역. 문학동네. 2011. 548쪽) 14. 머리부터 천천히(박솔뫼. 문학과지성사. ...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