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독서 목록

1. 싱글맨(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조동섭 역. 그책. 2009. 221쪽)
: 동성 애인이 세상을 떠난 후 아침마다 영혼 없이 잠에서 깨어나는 조지. 이웃을 만나고 강의를 하고 학생들과 교류하는 그의 텅 빈 하루를 이야기한다. 집 안팎의 모든 곳에서 느껴지는 상실감, 가까이 사는 이웃은 물론 오랜 친구에게도 말이 통하는 학생에게도 드러내지 못하는, 이해받을 수 없는 공허와 적막. 머릿속에서 살고 있는 죽음... 이건 성적 취향이나 성별과는 상관없는, 혼자 있는 누구든 한번쯤은 느낄 처연함일 것이다.

좋다, 잘 썼다는 말로는 부족한 작품이다. 작가는 문학에서 가능한 가장 훌륭한 방법으로 인생을 전달한다. 읽으면서 문득 이게 영문학의 정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가를 이제야 읽은 게 아쉽다.


2. 탐정 콜린 피셔(애슐리 에드워드 밀러, 잭 스탠츠, 이주희 역. 시공사. 2018. 296쪽)
: 야스퍼거 증후군 열네 살 콜린.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지만 자신만의 규칙을 잘 지키고, 관심을 가져주는 여학생도 있다. 어느 날 학교 최고의 인기 여학생의 생일 파티가 열리던 학생 식당에서 총이 발견되고, 문제아 웨인이 총을 가져온 범인으로 의심받지만 콜린은 그가 범인이 아니라는 걸 확신하고 진범을 찾기 시작한다.

고기능성이라고는 하지만 콜린은 야스퍼거 증후군 같지 않다. 내가 무지해서 그렇게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재미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재밌었다. 그냥 10대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로 읽혔다. '다름'을 인정해 줄 수 있는 아이들에 관한 착한 이야기 - 당연하지만 모든 등장 인물이 착하거나 개과천선하는 건 아니다 - 를 읽고 싶다면 한번쯤 읽어볼 만 하다.


3. 카르멘(프로스페로 메리메, 송진석 역. 펭귄클래식코리아. 2012. 297쪽)
: 고고학자인 화자는 산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강도로 보이는 사람을 만난다. 그와 동행을 하고 함께 여관에 묵게 된 화자는 자신의 안내인이 그를 신고한 걸 알게 되어 그에게 귀띔을 해주고, 후에 감옥에 갇힌 그를 다시 보게 되자 그에게서 자신이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사연을 듣는다.

뭐랄까, 오랜만에 보는 '제대로 된' 팜므파탈이다. 하지만 옛날 작품이니만큼 여성을 미숙하고 판단력이 덜 갖추어진 존재로 바라보는 시각은 어쩔 수 없다. 이는 뒤에 수록된 「콜롱바」에서도 드러나는데, 사실 난 카르멘보다 콜롱바가 더 맘에 들었다. 더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이다. 가족의 복수 - 이른바 방데타 - 를 위해 오빠를 압박하고 조정하는 그녀가 어쩌면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했던 카르멘보다 더 나쁜 *일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를 본받아야 한다면, 난 카르멘보단 콜롱바이다.


4. 문근영은 위험해(임성순. 은행나무. 2012. 336쪽)
: 이걸 왜 이렇게 끝까지 성실히 읽었는 지는 모르겠지만... 나름의 병맛 코드가 확실한 소설이다. 뭐, 나쁘지는 않았다. 어차피 번역문을 계속 읽으면 쌓이는 피로감을 해소할 목적이 더 컸으니까. 음모론과 종말론이 버무려진 웹툰같은 소설. 진지하게 들여다볼 필요는 없을 듯 하다.


5. 비바, 제인(개브리얼 제빈, 엄일녀 역. 루페. 2018. 400쪽)
: 은퇴한 교장 선생 레이첼은 절친 로즈처럼 자신도 누군가를 만나보려 한다. 하지만 맘에 드는 데이트 상대가 예전의 정치 스캔들 - 전도 유망한 유부남 하원의원과 대학생 인턴의 불륜 - 에서 어린 인턴을 비난하자 발끈하며 돌아선다. 그 인턴이 바로 딸 아비바였기 때문. 아비바와 레이첼, 그리고 하원의원의 부인 엠베스와 다른 주에 사는 제인과 제인의 딸 루비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이 작가의 책들 중 가장 맘에 든다. 여성들은 항상 저지른 실수에 비해 과한 대가를 치르고 남성들은 그 반대이다. 하지만 잘못된 선택을 했을지라도 그 대가를 스스로 치르고 당당하게 나아가는 여성의 모습을 전형적이지 않게 그려냈다. 읽는 내내 속으로 '그래. 비바, 제인!'을 외치게 하는, 따뜻하고 강한 이야기였다.


6. 액스맨의 재즈(레이 셀레스틴, 김은정 역. 황금가지. 2015. 581쪽)
: 1910년대 뉴올리언스. 이탈리아 이민자 부부들이 차례로 도끼로 잔인하게 살해당한다. 경찰이 이탈리아에서 건너온 마피아들만 뒤지는 사이에 범인은 신문사로 편지를 보내 특정일을 지정하고, 그날 밤 재즈가 울리는 집은 들르지 않고 건너뛰겠다고 말한다.

재밌었다.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와 뉴올리언스만의 인종 구성에 따른 독특한 분위기, 각 등장인물이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 필연성이 잘 드러나서 좋았다. 살인 사건을 좇아가지만 범인은 중요치 않다. 범인을 쫓으며 드러나는 인간 본성의 추악함이 더 강하게 울린다.


7. 계약자(선자은. 자음과모음. 2013. 222쪽)
: 알음이는 단짝 친구 소희와 함께 폐가로 간다. 소희가 자신의 짝사랑을 이뤄줄 '계약'을 하는데 함께 가주는 것. 소희가 의식을 행하는 동안 알음이는 자신도 모르게 복잡한 집안 사정이 해결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그날 밤에 알음의 방에 '계약자'가 등장한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뻔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 게 청소년 소설 작가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독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소재 선택이 중요할 듯. 그런 면에서 이 작가는 나와 아주 잘 맞는 것 같다. 사춘기 소녀의 불안함을 소름끼치는 거미라는 상징을 통해 잘 묘사하고 있다. 자신이 원하는 걸 갖고 싶은 맘과 그에 따른 책임을 남에게 토스하고 싶은 맘. 사춘기 소녀의 꿈에 깃드는 벌레는 어쩌면 클리셰일지 모르지만 그에 대한 묘사는 독보적이라 할 수 있을 듯. 빨려들어가듯 읽었다.


8. 순수의 시대(이디스 워튼, 고정아 역. 열린책들. 2008. 354쪽)
: 19세기 뉴욕 상류 사회의 잘 설계된 가식을 제대로 보여주는 소설. 집안이며 성품이 빠지지 않는 메이와 약혼한 뉴랜드 아처. 그저 무난하게 결혼하고 살아갈 날만 남은 그에게 메이의 사촌이자 유럽 귀족과의 불행한 결혼 생활을 피해 돌아온 엘렌이 나타나고, 뉴랜드는 필연적으로 그녀에게 끌린다.

내용이야 워낙 유명하고, 어언 20년이 지나긴 했지만 난 영화도 보긴 봤다. 시간이 지나서인지 각 인물의 캐릭터가 기억과 미묘하게 다르긴 했다. 내가 알던 메이는 자신이 원하는 걸 얻고 지키기 위해 스스로 생각하고 영리하게 행동했다면 소설 속 메이는 그저 본능적으로 움직인다. 엘렌도, 성격이 좀더 드라마틱하면서 약간의 신파가 가미되었달까. 시대적 배경에 충실한 건 내가 예전에 알던 메이와 엘렌이 아니라 새롭게 읽은 메이와 엘렌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뉴랜드... 이렇게 우유부단하고 이기적일수가. 물론 집안과 사회에 얽매일 수 밖에 없던 입장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작가의 필력이 새삼 감탄스러웠다.


9. 어둠 속 어딘가(월터 딘 마이어스, 이승숙 역. 고래가숨쉬는도서관. 2016. 240쪽)
: 제목과 수상 내역에 낚였다. 책이 완전 별로인 건 아니지만 기대가 너무 컸나보다. 하루하루를 지루하게 보내는 지미에게 갑자기 자신이 아버지라고 하는 크랩이 나타난다. 크랩은 지미를 시카고로 데려가려 하고, 얼떨결에 따라나선 지미는 아버지가 가석방된게 아니라 탈옥을 했다는 걸 알게 된다.

배경과 정서를 감안하더라도 초반 서술이 너무 불친절하다. 내용이 뭔가 엉성한 듯. 결말도 좀 갑작스럽다. 그래도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미묘한 감정 교류라는, 몰랐던 부분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10. 312호에서는 303호 여자가 보인다(피터 스완슨, 노진선 역. 푸른숲.2018. 471쪽)
: 이 작가의 책들 중 가장 나은 책. 전남친의 스토킹과 자살로 인해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케이트.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친척 코빈이 집을 바꿔 살아보자고 제안하자 공황 장애를 극복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런던에서의 생활을 접고 보스턴으로 간다. ㄷ자 구조의 고급스러운 아파트에 짐을 푼 다음날, 옆집 303호 여자가 살해된다.

가장 나았다고 얘기하는 건 결말이 나름 명확해서. 그렇다고 개운하고 확실한 결말은 아니다. 반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은 작은 꼬임이 있긴 하지만 이야기는 대체로 예상대로 흘러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뒷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흡입력있는 전개는 이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인 듯. 그래서 이 작가를 계속 읽을 수 밖에 없나보다.


11. 여섯 살(낸시 휴스턴, 손영미 역. 문학과지성사. 2011. 369쪽)
: 4세대에 걸쳐 각 세대의 여섯 살을 이야기한다. 2004년 '테러와의 전쟁' 중인 미국 캘리포니아의 솔이 인터넷에서 보는 동영상들, 1982년 이스라엘 하이파로 이주해야하는 랜돌이 맞닥뜨린 시오니즘과 팔레스타인과의 갈등, 1962년 세이디에게는 쉽지 않은 半히피인 엄마와의 삶, 그리고 1944년 부족하지만 가족에게 사랑받으며 살고 있는 크리스티나의 집에 입양된 요한이 얘기해주는 진실.

현재로부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가족의 비밀이 서서히 드러난다. 현대사의 비극과 무관할 수 없는. 하지만 역사만이 일방적으로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다. 개인이 그런 개인이 될 수 밖에 없는 건 사회와 환경 탓이기도 하지만 그런 역사와 사회를 만드는 것도 개개인이니까. 네 아이의 성향은 다 다르고 주어진 환경과 맞닥뜨려야 하는 비극도 각각이지만 결국 이런 하나하나가 쌓여서 유산이 되고 역사가 되며, 결국 미래가 되는 것이다.


12. 독이 서린 말(마이테 카란사, 권미선 역. 사계절. 2013. 327쪽)
: 바르바라가 실종된 지 4년. 이 사건을 맡았던 형사 로사노는 은퇴를 앞두고 후임에게 인수인계를 하며 사건을 되짚어 본다. 그러던 중 바르바라의 절친 에바에게 단서가 될 만한 전화가 걸려온다. 형사 로사노 뿐 아니라 폐인이 된 엄마와 적극적으로 딸을 찾아나서며 당국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던 아빠, 절친인 에바, 그리고 바르바라의 관점에서 각각 이야기가 전개되고, 어쩌면 가장 의심스럽지만 누구에게도 의심을 받지 않았던 그 사람이 범인으로 밝혀지기까지의 이야기이다. 가장 현실적이면서 가장 외면하고 싶은, 게다가 새드 엔딩인 이야기. 하지만 흡입력이 너무나 강해서 숨 쉬는 것조차 잊으며 읽었다. 이 작가를 기억해 두어야겠다.


13. 델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미카엘 베리스트란드, 이승재 역. 문학수첩. 2018. 496쪽)
: 20년이 넘게 일한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정리해고를 당한 화자. 50대의 이혼남에게 재취업이 쉬울 리가 없다. 전부인과 아이들과의 관계마저 뒤뚱대는 가운데 여행 가이드인 고등학교 친구의 말에 혹해서 인도 패키지 여행에 따라나선다.

머리 식히며 읽을 만한 가벼운 이야기.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운이 좋은 백인이어서 가능한 인도에서의 즐거운 모험이야기이다. 해피엔딩이 보장되어 있는.


14. 나의 사촌 레이첼(대프니 듀 모리에, 변용란 역. 현대문학. 2017. 570쪽)


15. 운명은 제 갈 길을 찾을 것이다(해나 피터드, 윤미나 역. 문학동네. 2016. 279쪽)
: 도서관에서 연속으로 좋은 책을 골라온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잘했어... 미국 중부의 작은 마을 핼러윈 밤, 열 여섯 살 노라가 실종된다. 노라의 소식은 아무도 모르지만 화자를 비롯한 마을의 소년들은 노라의 여동생과 다른 여자 아이들, 그리고 노라의 아버지와 다른 부모들을 보며 노라의 야이기를 상상하고, 자신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어쩌면 성장담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도 자라지 않는다. 화자들이 아닌, 죽었을 지도 모르는, 혹은 잊혀질 만 하면 마을의 누군가의 눈에 띄는 노라만이 진짜 성장을 하는 이야기. 매혹적인 이야기이다. 너무나 사실적이지만 신비롭고 새롭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서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로 건너갈 수 있는, 비극이지만 비극이 아닐 수 있는 이야기.


16. 바깥은 여름(김애란. 문학동네. 2017. 269쪽)
: 필연적 상실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 역시는 역시다. 이 작가만의 개성이 확연히 드러나는 단편들. 전작 『비행운』이 생각나지만 감히 말하건데 작가의 필력은 더 강해졌다. 힘있는 문장들이 애달픈 이야기를 지탱해준다. 가장 좋았던 건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17. 레인 레인(앤 M. 마틴, 이진경 역. 상상의힘. 2016. 295쪽)
: 야스퍼거 증후군 로즈. 엄마는 어릴 때 떠났고 아빠와 둘이 산다. 동음이의어를 수집하는 로즈를 아빠는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비가 오던 어느 밤 로즈에게 개를 한 마리 데려다 주고, 로즈는 동음이의어가 3개나 되는 Rain(Reign, Rein)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로즈를 이해하기는 커녕 이해하려는 의지도 안 보이는 아빠가 읽는 내내 원망스러웠다. 폭풍우 치던 밤에는 나도 로즈와 함께 아빠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결말은 어쩌면 해피엔딩이겠지만 또 어쩌면 새드엔딩일 수도 있다. 단순한 게 좋아서 읽기는 하지만 어른으로서 읽는 청소년 소설은 마냥 단순하지만은 않다. 그래도 로즈가 납득할 수 있다면 됐다. 룰은 룰이니까.


18.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니콜라이 레스코프, 이상훈 역. 소담출판사. 2017. 296쪽)
:비장한 제목에 비해 이야기의 느낌은 소소하다. 아마도 구어체의 민담 분위기라 그런 듯. 희대의 팜므 파탈이라기 보다는 그저 사랑에 목매던 발칙한 여인 - 표제작 - 과 혼자 힘으로 어떻게든 삶을 헤쳐나가야 했던 줏대 없고 나약한 여인에 관한 수다 - 「쌈닭」- 이다. 아주 재밌지도 그렇다고 정말 재미없지도 않았다. 카테리나는 좀 실망스러웠고,「쌈닭」의 돔나는 맘에 들었지만 사실 돔나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레카니다에 관한 이야기니... 토속적이고 서민적인 느낌에, 가장 러시아다운 작가라는 말이 공감된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이 작가를 또 읽을 것 같지는 않다.


19. 렛 잇 스노우(존 그린, 로렌 미라클, 모린 존슨, 정윤희 역. 북폴리오. 2016. 312쪽)
: 폭설이 내린 크리스마스 이브, 기적처럼 이루어지는 10대 세 커플의 이야기이다. 각각의 이야기에는 접점이 있고, 각 작가의 개성이 드러나 있으며 독특하게 동화적이다. 플로리다의 조부모님께 기차를 타고 가다가 멈춰 선 마을에서 진정한 사랑을 찾은 주빌레(「주빌레 익스프레스」)의 이야기가 가장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맞았지만 내 취향은 역시 존 그린(「크리스마스의 기적」). 이성으로 의식한 적 없던 친구가 문득 여자로 보이는 건 뻔하지만 늘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아마 내게는 일어날 리 없는 일이어서일까. 「돼지들의 수호신」의 애디는, 아무리 개과천선한다지만 비호감이었다.


20. 지도 도둑(에두아르도 라고, 고인경 역. 푸른숲. 2010. 359쪽)
: 독특한 단편집. 액자 소설 형식이다. 화자는 어느날 '글을 보내준다'는 발신불명의 이메일을 받고 답신을 보내 단편 소설 원고를 받는다. 글을 읽어내려가던 중 갑자기 작가가 트리에스테에 있을 것 같다는 예감으로 그곳을 향해 출발하고, 도시를 빠져나가기 직전 황금 지도를 훔쳤다는 혐의로 수배중인 지도 도둑과 동행하게 된다.

액자의 역할을 하는 소피의 이야기 - 돌아가신 소피의 아버지, 우연히 만난 지도 도둑 - 와 소피가 읽는 단편들이 교차된다. 각각의 이야기는 유니크함을 지니고 있고 그 자체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다만 소피가 읽는 단편들과 소피의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얽히지는 않는다. 소피의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작가의 전작을 읽어볼 생각이다.


21. 아이스크림 메이커(에르네스트 판 데르 크바스트, 임종기 역. 세종서적. 2018. 496쪽)
: 읽기 전에 약간의 선입견이 있었음을 먼저 얘기해야 겠다. 먹을거리가 소재라면, 특히 그 먹을거리를 처음 만들거나 발견하거나 정복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면 에로틱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게다가 아이스크림이지 않은가. 어쨌든 이야기의 초반에는 화자의 증조 할아버지 이야기가 나온다. 화자의 집안이 대대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팔며 살게 된 시작점의 이야기. 그리고 세대를 뛰어넘어 아이스크림 대신 시(詩)를 선택한 화자와 그 대신 가업을 물려받은 동생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에로틱한 부분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차분하고도 담담한 어조로 자신과 집안의 이야기를 해주는 화자의 목소리가 더 깊게 울렸다. 부담없이 읽히지만 마냥 가볍지만은 않았고, 이야기의 방향 또한 익숙한 듯 새롭지 않을 지 모르지만 시시하지는 않았다. 의외였던 건, 아이스크림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내가 읽는 동안 아이스크림이 그다지 땡기지 않았다는 것.


22. 그들의 눈빛 속엔 비밀이 있다(에두아르도 사체리, 조영실 역. 홍시. 2015. 351쪽)
: 법원 사무장으로 은퇴한 차파로. 오래 전 의욕을 가지고 수사했던 살인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로 결심하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현재의 차파로의 이야기와 차파로가 쓰는 소설 - 사건의 진실을 담고 있는 - 이 번갈아 이야기되는데 꽤 재미있다. 스토리는, 권력에 의해 사법 정의가 좌지우지되던 70년대를 배경으로 살인 사건을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단순히 스토리만 이야기하기에는 이 작품만의 분위기를 설명하기 힘들다. 사건을 좇는다기 보다는 사건에 얽힌 차파로의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릴러를 기대하며 집어들었지만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좋았다.


23. 저스트 원 이어(게일 포먼, 이진 역. 문학동네. 2017. 403쪽)
: 『저스트 원 데이』이후에 얼른 읽어야지 하면서도 미루다가 이제야 읽었다. 전작은 앨리슨의 시각에서의 하루였고 이 책은 빌럼 관점에서 앨리슨을 놓친 후 그녀와 다시 만나기까지의 일 년 동안의 이야기이다. 전작이 잘 기억이 안 나서 좀 헤매긴 했지만 빌럼이 때때로 기억을 일깨워주긴 한다. 다만, 해피 엔딩임에도 불구하고 역시 빌럼은... 빌럼 때문에 난 이 책을 '29금' 하고 싶다. 29세 이하는 읽지 마세요. 세상에 '임자 만나서 정신 차리는 놈'은 없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고, 본성은 안 변한다. 감히 말하건데 이런 사람은 소설 속에만 있는 법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럼은 매력적이다. 끊임없이 앨리슨을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그녀와 닿아있기를 원하는 빌럼은... 절절한 로맨스를 읽고 싶다면 꼭 이 책과 전작을 읽어 보시기를.


24. 개를 읽는 시간(오 헨리 외, 지은현 편역. 꾸리에. 2017. 421쪽)
: 개에 관한 세계 문학 모음. 에세이도 있고 소설도 있다. 엮은이가 얘기했듯 처음 접하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워낙 동물을 좋아하기에 흥미를 갖고 읽기 시작했지만, 번역이 너무 직역체라서 생각보다 진도가 쉽게 안 나갔다. 챕터를 나눈 기준도 잘 모르겠고... 그래도 처음 접하는 작가들과 좋아하는 개 이야기라 즐겁게 읽었다. 가장 좋았던 건 역시 레이 브래드버리.

by 달을향한사다리 | 2019/04/03 15:22 | Yujin's Book Story | 트랙백 | 덧글(4)
트랙백 주소 : http://oblivion.egloos.com/tb/4168761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at 2019/04/03 15:3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19/04/18 11:19
비공개 답글입니다.
Commented by 이요 at 2019/04/03 15:37
22번. 내용을 보니 영화 '엘 시크레토'의 원작소설인가봐요. 그 영화 정말 재밌게 봤거든요.
Commented by 달을향한사다리 at 2019/04/18 11:19
검색해 보니 맞는 거 같아요. 영화가 재밌으셨다니 흥미가 생기네요, 볼 것 같진 않지만...

:         :

:

비공개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