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근황

지난 토요일 아침, 늦잠을 자고 일어난 나는 문득 호기심이 생겨 체중계 위에 올라가봤다. 44.1kg.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내 키는 164.7cm. 이 몸무게면 BMI는 16.3정도이고, 명백한 저체중이다. 맹세코 난 이 몸무게를 원한 적이 없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 조차도.

물론 아침을 배부르게 먹고, 입고 있는 레깅스와 티셔츠 대신 청바지와 후드티로 갈아입으면 몸무게는 더 나갈 것이다. 하지만 난 밥을 '배부르게' 먹을 수 없다. 먹으면 안 된다. 역류성 식도염 때문이다.

증상을 자각한 건 지난 6월말이었다. 밥을 먹고 3시간 정도 지나면 가슴이 쓰라렸다. 몸을 펼 수 없을 정도로. 처음에는 도시락으로 즐겨 싸가던 고구마만 끊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단순한 방안으로 사라질 정도의 경증은 아니었다. 위내시경을 하고, 의심스러운 뭔가 때문에 조직검사까지 받고 나서 마주앉은 의사는 모니터의 빨간 염증들을 가리키며 약을 처방해 주었다.

사실 내가 소화기 질환을 겪는 건 처음은 아니다. 역류성 식도염도 위염도 이미 다 겪어 봤다. 하지만 이번은 좀 달랐다. 이전에는 처방받은 약을 1~2주일 정도 먹으면서 귤과 유제품 정도만 멀리하면 증상이 사라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정도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다. 식전에 약을 먹고 밥을 먹었는데도 2~3시간 지나면 속이 싸했다. 약을 안 먹었으면 통증이 꽤 심했겠구나 하는 느낌.

밥의 양을 줄이기 시작했다. 난 원래도 늘 집밥을 먹고 회사에도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식단 자체에서 뭐를 더 바꿔야 할 지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담배는 한 번도 피워본 적 없고, 커피는 타고난 카페인 쇼크 때문에 입에도 못 대고, 2017년에는 혼술을 꽤 했었지만 그 해 말 건강검진에서 혈당 수치가 높게 나온 이후 2018년에는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 따라서 식도염의 원인이 될 만한 거라고는 과식과 스트레스 밖에 없는데 스트레스를 컨트롤하는 것보다 밥의 양을 컨트롤하는 게 우선 쉬워 보였다.

처음에는 밥의 양을 1/2로 줄였다. 하지만 약을 끊으면 다시 통증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다시 1/2을 더 줄였다. 밥에 섞는 잡곡의 종류와 양을 줄이고 소화흡수가 잘 되는 백미의 양을 늘렸고, 음식을 천천히 꼭꼭 씹어먹고, 밥 먹은 뒤에는 30분 정도 서성였다.

약을 약 2개월 정도 먹으면서 음식의 양을 줄이니 통증은 많이 가라앉았다. 하지만 잠깐이라도 방심해서 음식을 한 입 더 먹는다거나 갑자기 회사에서 압박을 받거나, 혹은 왜인지 짐작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위산은 갑자기 식도를 습격했다. 그래도 6개월 동안 복부 팽만감과 소화불량 등을 덤으로 겪으며 통증이 그나마 덜 생기는 식습관을 어느 정도 잡았다.

하지만 체중은 이렇게 어이없게 줄어버렸다. 체중이 줄으니 여러가지 부차적인 괴로움들이 시작됐다. 20여년 전에 떼어버렸던 손발저림과 수족냉증, 변비가 돌아왔다. 거기에 기립성 저혈압과 어지럼증도. 그리고, 올해 겨울이 특히 그런 건지 아님 이것도 체중 감소에 따른 건지 모르겠지만 유난히 춥다. 남들은 코트도 잘만 입고 다니는 날씨에 난 패딩을 입고도 춥다. (눈이 침침한 것도 체중 감소 때문일까?)

그래서 일단은 체중을 좀 늘려 보기로 했다. 물론 근육을 늘리는 게 우선이라는 거 잘 알고 있다. 체중이 지금보다 많이 나갔을 때도 근육 늘리기는 내 우선 과제였다. 하지만 역류성 식도염은 복압이 높아지는 운동을 할 수 없어서 어떤 근력 운동을 해야할 지 잘 모르겠다. 일단 플랭크는 안 된다길래 그만뒀고, 스쿼트는 식후 30분 이후에 하면 괜찮은 듯 해서 종종 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뭔가 느낌이 싸하다 싶을 때가 가끔 있어서 그럴 땐 그냥 아령을 들고 팔 운동 위주로 한다. 잘 모르겠지만 뭐라도 해야겠기에. 검색을 해보면 역류성 식도염에는 걷기 등을 추천한다. 그래서 출퇴근 길에 일부러 좀 돌아가더라도 많이 걸으려 노력하고, 주말에는 무조건 책을 5~7권 정도 짊어지고 도서관까지 걸어다닌다.

그리고 건강을 해치지 않는 간식을 조금씩 자주 먹으려 한다. 사실 쉽지는 않다. 사무실에 앉아서 얼른 먹을 수 있는 간식은 대부분 과자나 빵이고, 난 그것들을 사랑해마지않기 때문에 자주 유혹에 굴복한다. 하지만 혈당에 대한 염려도 아주 놓을 수는 없기에 신경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만 이 자체가 내게 스트레스가 되지 않아야겠지.

어쨌든 뭘 먹든 양은 예전의 1/4 정도가 최대라서, 난 늘 배가 고프고 기운이 없다. 그리고 식사든 간식이든 먹는 동안 내부의 악마의 속삭임 - 이거 한 입 정도 더 먹는 건 괜찮아. 먹고 좀 아프고 말지, 뭐, 맛있잖아 - 과 매순간 서글프게 싸우고 있다.


by 달을향한사다리 | 2019/01/15 17:44 | 힘내서 살아가기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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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xxx369 at 2019/01/16 00:24
저는 군인일 때 걸린 적 있거든요 그때 맨날 밥 먹구 잠을 바로 자는 버릇이 들어서 그랬는데 과식이랑 스트레스만으로도 오나봐요 치료 잘 받으시구 맛있는 음식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어요~
Commented by 달을향한사다리 at 2019/01/22 13:53
저는 야식도 안 먹고 밥 먹고 눕지도 않고, 원인이라고는 과식하고 스트레스 밖에 없어요. 의사도 그렇게 얘기하고... 아직도 음식량 컨트롤하는 게 쉽지 않네요ㅠ 369님은 지금은 괜찮으신 거죠?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at 2019/01/17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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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19/01/22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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