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기스 콘의 춤』, 로맹 가리

징기스 콘의 춤 - 10점
로맹 가리 지음, 김병욱 옮김/마음산책


이걸 쓴 건 로맹 가리가 아니다. 에밀 아자르이다. 통독을 한 번 한 후 2부와 3부의 도그지어 만든 부분들을 한 번 더 발췌독하며 다시 한 번 확신했다. 이건 에밀이다.

빙의와 연쇄살인, 죄책감과 자기합리화, 눈 먼 사랑, 맹목적인 믿음, 패륜, 동족혐오, 신성모독... 그야말로 대환장 파티이다. 하지만 이건 표면일 뿐 한 겹 걷어내 보면, 저자가 이제껏 어떤 이야기들을 해왔는지 들어보기라도 했다면 저자가 정말로 혐오하는 게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희생양의 피로 쓰여진 혹은 그려진 문화. 흔히 '승화'라고 표현하는, 과거를 덮어버리고 미화시키려는 '유럽의 교육'. 저자는 친절하게도 예수의 피 위에 세워진 종교를, <게르니카>를, 『전쟁과 평화』를 얘기해 준다.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결합에 강하게 끌리는 건 본능이다. 릴리와 플로리앙에 의해 환희에 찬 모습으로 죽어간 이들이 그러했듯. 하지만 그것이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 다시 살아나는 타나토스의 에로스화 - 독일 내 극우 정당의 부활, 핵 무장시도, 베트남 전쟁 등 - 에 나의 로맹이, 아니 에밀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당연하다. 그를 안다면, 옮긴이가 해설에서 찾아 보여줬듯 이 책에 대해 '약먹고 썼'냐고 이야기하는 건 부당하다. 나의 에밀이라면, 『Pseudo』에서 니니(Nihilette)를 통해 나를 춤추게 했던 에밀이라면 이렇게 쓰는 게 당연하다. 이 정도면 매우 친절하고 건전한 서술이었다.

(다시 한 번) 사랑해요, E.

by 달을향한사다리 | 2019/01/02 11:40 | Yujin's Book Story | 트랙백 | 핑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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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이번 달 리뷰는 생략합니다. 모두들 아프지 마시고 건강한 연휴 보내세요... 1. 징기스 콘의 춤(로맹 가리, 김병욱 역. 마음산책. 2018. 368쪽) 2. 만체보 씨네 식료품 가게(브리타 뢰스트룬트, 박지선 역. 레드스톤. 2017. 398쪽 3. 뱀과 물(배수아. 문학동네. 2017. 3 ... more

Commented by 에르고숨 at 2019/01/02 15:40
새해 첫 작품은 모름지기 사랑하는 에밀이로군요.ㅎㅎ 로맹 가리 최근 나온 책 보고 사다리 님 생각했어요. <죽은 자들의 포도주>. 무려 첫 장편소설이라는데, 로맹인지 에밀인지 가려주세요, 사다리 님. 헤헤.
Commented by 달을향한사다리 at 2019/01/04 16:01
그 책 이미 제 서재에 누워 있는데, 좀 아꼈다가 읽으려구요^^ 로맹도 에밀도 아닌 로만을 발견하길 기대하고 있어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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