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독서 목록 Yujin's Book Story

1. 배반(폴 비티, 이나경 역. 열린책들. 2017. 402쪽)
: 디킨스 시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화자. 'black whisperer(horse whisperer 같은...)'로 활약했던 아버지 같은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주위 사람들 때문에 아역배우 출신의 노인 호미니가 난동부리는 걸 말리러 갔다가 그가 노예처럼 대우받을 때 오히려 행복해한다는 걸 알고 그를 노예로 부린다. 그리고 그의 생일날 흑백 좌석이 분리된 버스를 선물했다가 그 상태의 버스 안에서 흑인들이 더 점잖게 행동한다는 걸 알고 디킨스 시 전체에 인종분리를 시작한다.

프롤로그가 너무 안 읽혀서 계속 읽을까 고민했는데 다행히 점점 재밌어졌다. 100여 페이지 정도 되면 탄력도 붙고, 저자의 블랙 유머에 계속 피식거리게 되기도 한다. 흑인과 비흑인 모두를 까는 저자의 능글맞음에 감탄하기도 하고. 다만 문장이 너무 길고 잊을 만 하면 비문(번역의 문제인 듯)이 튀어나오던 건 옥에 티.


2. 여자는 총을 들고 기다린다(에이미 스튜어트, 엄일녀 역. 문학동네. 2017. 494쪽)
: 미국 최초의 여성 보안관보 콘스턴스 콥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 시리즈의 처음이라 이야기가 좀 늘어지는 감은 있지만 재밌게 읽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농장에서 여동생 둘과 사는 콘스턴스. 셋이서 마차를 타고 장에 가던 중 갑자기 튀어나온 차로 인해 큰 사고를 당하게 되고, 항의를 했다는 이유로 망나니 염색공장 주인인 차주 코프먼에게서 협박과 살해 위협까지 당한다.

기대만큼 시원한 복수극은 아니다. 오히려 법정 드라마에 가깝다. 조금 지루할 수도. 하지만 든든한 조력자와 주인공의 단단한 마음이 읽는 동안 꽤 따뜻한 위안이 된다. 이 시리즈에서의 주인공의 활약이 기대된다.


3. 나의 미카엘(아모스 오즈, 최창모 역. 민음사. 1998. 304쪽)
: 평범할 수도 있는 결혼 생활 이야기. 로맨틱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운명적이라고까지는 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은 첫만남에서부터 결혼과 출산, 생활에 끼어든 전쟁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시어른들의 간섭과 이웃과의 이야기, 산후 우울증과 친척 친지들의 죽음... 담담하지만 행간에 배어든 저릿한 슬픔이나 허한 마음을 알아채기 힘든 건 아니다.

섬세한 서술이 맘에 들었다. 이 작가의 책은 오랜만인데 맘을 차분하게 해주어 좋았다. 다만 한나는... 계속 채워지지 않는 공허를 안고 살아가겠지. 하지만 과연 누가 그걸 채워줄 수 있을까.


4. 눈의 황홀(명지현. 문학과지성사. 2017. 295쪽)
: 이 작가 역시 오랜만에 읽는다.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얼마나 반가웠던지. 표제작에선 예전에 내가 반했던 작가의 모습을, 「단어의 삶」에선 작가의 새로운 감수성을 발견해서 좋았다.

삶은 누구에게나 무겁지만 특히나 남들보다 더 물에 푹 젖은 옷을 걸치고 걷는 듯한 주인공들이 안쓰러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걸어가야겠지. 살아있는 한 살아야 하므로.


5. 더 미러(말리스 밀하이저, 정해영 역. 다산책방. 2010. 631쪽)
: 운명을 바꿔버리는 웨딩 거울에게 농간당한 여성들의 이야기. 1978년, 스무 살 샤이는 걱정하는 부모를 외면한 채 결혼을 하려 한다. 그녀의 결혼식을 위해 요양원에서 할머니가 모셔져 오고, 다락방의 웨딩 거울이 내려진다. 그리고 지진이라도 난 듯 집이 흔들리더니, 샤이는 78년 전으로 가 스무 살 외할머니의 모습으로 깨어난다.

스토리 자체는 꽤 흡입력이 있다. 나름 여성의 삶을 들여다보고 변하지 않는 진리를 이야기하고 싶어하긴 했다. 다만, 책을 잘 못 썼다는 게 아니라, 이 책의 세계관이 썩 맘에 들지 않았다. 78년 전 할머니의 몸으로 들어가 할아버지와 잔다니, 아무리 본 적 없는 할아버지라 해도. 그리고 그 몸으로 외삼촌들과 엄마를 낳는다니, 이 무슨 막장 중에 막장인가. 게다가 교정도 엉망이다. 마지막 챕터는 아예 별개의 책인듯 이모를 고모로, 남동생을 오빠로... 전에 다른 책도 그러더니, 이 출판사는 이제 걸러야겠다.


6. 나를 생각해(이은조. 은행나무. 2011. 302쪽)
: 희곡 작가이자 극단에서 홍보일을 맡고 있는 화자. 나름 전통있는 소속극단의 단장이 갑자기 실종되어 버리고, 남자친구와의 지지부진한 연애도 슬슬 끝을 보이지만 데뷔작의 초연을 앞두고 있기도 하다.

깊은 생각없이 편안하게 읽혔다. 새로운 형태의 가족에 대한 고찰이라든가, 사랑이 뭐 이래 따위의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지만. 필력도, 무게도, 내용도 무난했다.


7. 웃는 남자 외 - 제 11회 김유정 문학상 수상작품집(황정은 외. 은행나무. 2017. 271쪽)
: 기대가 커서였는지 황정은은 그저 그랬다. 물론 작가의 저력이 있는 만큼 평균 이상이긴 했지만... 생각 외로 좋았던 건 김숨. 김숨과 편혜영은 선뜻 집어들기가 꺼려지는데 - 이야기의 무게 때문에 - 여기 실린 단편은 둘 다 좋았다.


8. 타인들의 책(닉 혼비 외, 강선재 역. 문학동네. 2016. 396쪽)
: 새로운 작가를 발견하고 싶었지만 가장 좋았던 건 역시 그전부터 좋아했던 컬럼 토빈과 조지 손더스. 애덤 설웰과 앤드루 숀 그리어도 좋았다.


9. 더 리더(베른하르트 슐링크, 김재혁 역. 이레. 2004. 247쪽)
: 열 다섯 미하엘은 하굣길에 아픈 자신을 도와준 한나에게 감사 인사를 하러 찾아갔다가 그녀와 연인 사이가 된다. 전차 차장인 그녀는 미하엘이 그녀에게 학교에서 읽히는 책들을 읽어주는 걸 좋아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말도 없이 사라지고, 미하엘은 수년이 지난 후 법대 재학 중 전범 재판을 참관하러 갔다가 그녀가 피의자인 걸 알게 된다.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초반엔 그저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둘의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에서의 그 싸움처럼, 영혼을 잠식하는 불안한 사랑 이야기. 하지만 역사의 흐름에 휘말린 개인과 그 개인이 자신의 자유보다 더 중요시하는 자신의 존엄,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아야 하는, 미쳐 자라지 못한 자의 혼란과 슬픔이 진하게 녹아 있는 후반부는 더 이상 그저 연인들의 사랑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아픈 결말만큼은 사랑 이야기였지만. 역시 이 작가의 여운은 길다.


10. 누군가 이름을 부른다면(김보현. 은행나무. 2017. 382쪽)
: 열 아홉 원나의 아빠는 오래 전 화재때 원나를 구하고 돌아가셨고 엄마 마저도 몇 년 전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만 있다. 작디 작은 마을에서 특히 더 원나를 챙겨주는 건 펜싱 코치이기도 한 이장님. 그런데 어느 날 전세계에 Z바이러스가 번지기 시작한다.

목차가 심상치 않았지만 당연히 청소년 성장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다. 청소년이 주인공인 것도 맞고 성장도 하긴 한다. 그런데 갑자기 좀비라니... 하지만 이제껏 보거나 읽었던 어떤 좀비 영화/소설보다 더 밝다. 포악한 인간 본성과 무정부 상태의 혼란 등이 전혀 그려지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만큼 투명한 해피엔딩도 드물 듯. 작가의 필력도 좋고, 내용도 맘에 들어서 정말 좋았다.


11. 미겔 스트리트(V.S. 나이폴, 이상옥 역. 민음사. 2003. 317쪽)
: 영국령 트리니다드 섬의 슬럼가 이야기. 30년대 식민지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냉소, 열패감, 가끔은 현실에 대해 자각하고 다시 실망하는 모습들이 연작으로 이어진다. 하나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는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씁쓸했고, 그러기에 마지막 챕터에서의 떠남이 너무나도 다행스러웠다. 작가의 위트와 그 속에 녹아있는 페이소스 덕에 즐거웠다.


12. 보헤미안 랩소디(정재민. 나무옆의자. 2014. 295쪽)
: 이 책이 짜증나는 게 불쾌하고 어이없는 현실 때문인지 엉망인 스토리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앞으로 세계문학상 수상작들은 그냥 걸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3.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에트라그 케레르, 장은수 역. 문학동네. 2013. 261쪽)
: 단편집인 줄 모르고 읽었는데 재밌었다. 환상적이기도 하고 꽤나 현실적이기도 한 짧은 이야기들. 이 작가는 아이디어가 정말 많은 듯 했다. 들어본 듯 익숙하다가도 작가 자신만의 초현실성이 색다르게 입혀진다. 가장 좋았던 건 「이 금붕어에게 무슨 소원을」.


14. The Closet Novel(김중혁 외. 문학과지성사. 2014. 235쪽)
: 패션지에 실렸었다길래 좀 가벼운 작품들인가 하는 생각을 했던 나의 편견을 반성한다. 패션 아이템과 관련되어 있긴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아이템을 두고 소설을 쓴 게 아니라 이미 쓰여진 소설들 중에서 패션 아이템과 연결지을 수 있는 작품들을 (어거지로) 골라낸 듯 싶다. 어찌됐든 이렇게 쟁쟁한 작가들을 하나의 주제로 묶은 것만도 나름 의미 있는 듯. 김중혁이 가장 이 소설집의 취지에 맞는 작품을 내놓은 듯 하지만 내가 제일 좋았던 건 정용준.


15. 달과 6펜스(서머싯 몸, 송무 역. 민음사. 2000. 328쪽)
: 손에 잡히는 6펜스 대신 닿지 않는 달을 좇은 찰스 스트릭랜드의 이야기. 다들 아시다시피 폴 고갱을 모델로 했다. 에피소드들을 얼마나 수집해서 가공했는지는 모르겠으나 - 블란치와 스트로브의 에피소드는 다른 책에서도 읽은 것 같은데 - 이 에피소드들과 스트릭랜드의 캐릭터가 바로 이 책이 전기가 아닌 소설이 되는 지점인 듯. 사실 스트릭랜드의 캐릭터는 너무나 비호감이었지만, 그건 내가 그의 열망을 공감하지 못한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전에 읽은 바르가스 요사의 작품과는 또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16. 비밀의 요리책(엘르 뉴마크, 홍현숙 역. 레드박스. 2009. 654쪽)
: 15세기 베네치아. 거리에 사는 고아 루치아노는 총독의 요리사인 페레로의 눈에 띄어 그의 주방에서 일하게 된다. 당시 베네치아에는 세상의 모든 진리가 담겨 있는 책이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고, 베네치아의 권력층은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 책을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루치아노는 총독의 성에서 일하면서 스승 페레로가 그 책에 있다는 사랑의 묘약을 만드는 법을 알고 있다고 믿는데, 페레로는 루치아노의 생각과는 별개로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는다.

이른바 '그 책'에 관한 소설. 이제껏 다른 소설들에서는 '그 책'을 다룰 때 그 안에 담긴 진리에 대해서는 모호하게 얼버무리곤 했지만 이 소설에서는 그 안의 진리에 대해서 명확히 얘기해 준다. 세상의 진보적인 지식이 요리법 속에 숨겨져 있다고. 덕분에 소설이 가진 미스테리함은 반감됐고, 캐릭터들의 애매함까지 더해져서 어중간해졌다. 다만 사건의 촘촘한 배열 덕에 책장은 비교적 빨리 넘어갔다. 나쁘진 않았지만 다시 이 작가를 읽진 않을 것 같다.


17. 군주의 거울(김상근. 21세기북스. 2016. 339쪽)
: 그리스의 고전인 크세노폰의 『키루스의 교육』, 헤로도토스의 『역사』,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통해 리더쉽을 고찰한다. 자기계발서 같지만 사실상 앞의 세 책의 요약 및 해설본이라 할 수 있다. 기대를 안 하고 읽어서인지 페이지도 죽죽 넘어가고 생각보다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인문학 초심자에게 좋은 책.


18. 오직 두 사람(김영하. 문학동네. 2017. 271쪽)
: 작품 하나하나가 다 힘들었다, 내용이. 왜 이렇게 무거운가... 짐작도 못했던 삶의 이면을 들여다 본 느낌이다. 새삼 아팠다.


19. 사이공 나이트(정민. 나무옆의자. 2013. 323쪽)
: 문학상 수상작이라서 선택했고 그래서 끝까지 읽었다. 문학상 타이틀만 아니었다면 진작에 던져버렸을 테고 시간 낭비도 안 했을 텐데. 작가는 말초 신경만을 자극하는 시간 때우기용 소설이든 제대로 된 느와르든 방향을 확실히 잡고 가야할 듯. 이 책은 이도저도 아닐 뿐. 아, 그 전에 스토리와 플롯을 다듬는 연습부터.

덧글

  • 이요 2018/07/03 14:30 #

    세계문학상이 이렇게까지 추락했군요. 9번은 아는 언니가 읽고 각색을 할까 어쩔까 한다고 해서 알고 있었던 작품인데, 할아버지와 자고 아이까지 낳는군요. 쿨럭.
  • 달을향한사다리 2018/07/09 17:48 #

    세계문학상은 정말... 아예 재미만 추구하던지, 아니면 제대로 문학성을 추구하던지 했음 좋겠어요. 진짜 무슨 일기장 제출만 하면 상 주는 건지... 5번 <더 미러> 말씀하시는 거죠? 결말도 꽤나 찜찜해요ㅠㅠ
  • 이요 2018/07/09 17:52 #

    네 맞아요. 5번 <더 미러> 더 미러랑 더 리더를 헷갈리다니...ㅋㅋ
  • 달을향한사다리 2018/08/01 16:05 #

    헷갈릴 만 하죠, 뭐ㅎㅎㅎ 둘 다 세 글자에, 첫 글자도 같고...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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