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독서 목록

1. 인간의 문제(로맹 가리, 이재룡 역. 마음산책. 2014. 344쪽)
: 저자가 여기저기 발표한 산문들의 모음집. 지루한 글도 있었고 흥미로운 것도 있었다. 여러 사안들에 대한 저자의 생각들을 들여다 보는 것은 여전히 좋았으나 중간에 잠깐 실망하기도 했고, 다시 애정을 회복하기도 했다. 가끔 로맹 가리가 아닌 에밀 아자르가 등장해서 블랙 유머를 툭 던지기도 하고...

다른 작품들처럼 모든 문장이 좋았다, 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읽는 중간에 오해하기도 했으니. 다만 그가 여성에 대해 얘기할 때 말했듯 '상대방을 진정으로 믿을 수 있는 것, 그것이 핵심'(275쪽)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마음 깊은 곳으로 밀어넣는다.


2. 사월의 미, 칠월의 솔(김연수. 문학동네. 2013. 341쪽)
: 뭐랄까, 단편다운 단편들이랄까. 등장 인물들이 모두 문어체로 말하고 일상에 비근하기보다는 소설답게 아련하고 처연한 이야기들. 그래서 좋았다. 오랜만에 90년대의 감성들이 느껴지기도 했고. 가장 좋았던 건 표제작. 전에 다른 소설집에서 읽었지만 다시 읽으니 또 새로웠다.


3. 벨 아미(기 드 모파상, 송덕호 역. 민음사. 2009. 518쪽)
: 알제리에서 복무하다 제대한 조르주. 파리에서 하루하루를 겨우 버티던 가난한 그는 어느날 함께 복무했던 포레스티에를 길에서 우연히 만나고, 신문사의 중역이던 그를 통해 기자 자리를 얻는다. 포레스티에와 그의 부인의 도움으로 사교계에 입성하고 기자로서도 자리 잡아가던 중 자신의 수려한 용모를 맘에 들어하던 마렐 부인과 연인이 된다.

흥미로웠다. 사교계의 위선과 외모 지상주의, 천민 자본주의에 아주 약간의 권모술수가 더해지면 탄생할 수 밖에 없는 막장 스토리. 사실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테지만. 권선징악을 기대했으나 지극히 현실적인 결말이었다. 여성은 재능이 있어도 사회활동에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었고 재산권마저 제한적이었던 시기에 잘못 태어난 포레스티에 부인이나 왈테르 부인은 안타까웠지만, 사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다 비호감이어서 뭐... 어쨌든 재밌게 읽었다.


4. 책이 되어버린 남자(알폰스 슈바이거르트, 남문희 역. 비채. 2009. 199쪽)
: 한 남자가 길에서 쓰러져 숨진 여성을 목격한 직후 바로 옆의 책 가판대에서 강렬하게 자신을 잡아끄는 책을 발견한다. 자신의 것인양 당당하게 책을 가져온 남자는, 그동안 자신이 모았던 수많은 고서들을 모두 헐값에 팔아버리고 그 책에만 집중한다.

제목처럼 책이 되어버리고 마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환상 소설이기도 하고, 책 자체가 가진 마성을 우화적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어떤 책들은 이 이야기의 책처럼 치명적이기도 하니까. 이야기 전개도 결말도 클리셰이긴 하지만 편하게 읽었고 좋았다.


5. 완벽한 계획(발렝탕 뮈소, 전미연 역. 느낌이있는책. 2015. 428쪽)
: 글쎄, 이게 과연 완벽한 계획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할렘 출신 로뮈알. 공부를 잘한 덕에 명문고에 진학해서 부유한 집안의 테오와 친해지지만, 우정의 방향은 미묘하게 어긋난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연락이 끊겼던 둘은 길에서 재회하고, 로뮈알의 제안에 따라 피레네 산맥 등반을 위해 주말에 로뮈알의 산장에 여자친구와 함께 모인다.

흥미진진하게 흘러가긴 했지만 결말이 허무했다. 로뮈알의 사정이랄까, 상황도 별로 맘에 안 들었고. 그래, 우리나라건 프랑스건, 타고난 사회 계층을 뛰어넘는 건 아마도 불가능한 일 중에 하나이고 이 와중에 불행은 늘 못 가진 사람들에게 더 쉽게 온다. 그래서 더더욱 꽉 닫힌 결말이기를 바랐는데. 읽을 때는 몰입해서 읽었지만 이 작가를 다시 읽을 것 같진 않다.


6. 판타스틱 걸(김혜정. 비룡소. 2011. 275쪽)
: 귀여운 청소년 소설. 날씬하고 예쁜 열 일곱 살 예슬은 수퍼모델을 꿈꾸는 철없고 속편한 고등학생이다. 가족들과 함께 마이애미행 비행기에 올랐다가 이상기류로 10년 뒤의 자신과 맞닥뜨린다.

10년 뒤의 자신의 모습을 만났을 때 실망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특히 세상 무서운 거 모르는 열 일곱이라면. 청소년 소설답게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결말이기는 하지만, 삶에 찌든 내가 읽기에는 그저 순진하기만 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뭐, 책 속에서라도 세상은 아름다워야지. 잠깐 쉬어가기에는 좋았다.


7. 비온 뒤(윌레엄 트레버, 정영목 역. 한겨레출판. 2016. 312쪽)
: 봄비같은 단편들.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어딘가에나 있을 법한 사람들의 이야기. 하지만 한 겹 들춰보면 꾹꾹 눌러놓은 아픔이 신물처럼 배어나온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는 것. 되도록이면 담담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


8. 브라더 케빈(김수연. 문학동네. 2013. 196쪽)
: 이야기 전개는 다 클리셰였는데, 결말이 예상 외여서 맘에 들었다. 갑자기 특목고에 꽂힌 엄마 덕분에 특목고 입시 준비 학원에서 초딩들과 수업을 받게 된 중딩 성준. 시작이 늦은 만큼 학원 수업 후에도 보충수업을 받던 성준은 보충수업 선생으로 온 케빈을 통해 래퍼 투팍과 힙합을 접하게 된다.

10대가 화자이지만 좀 올드한 느낌이 든다. 자기가 태어나던 날 죽은 투팍을 좋아하는 거야 그럴 수 있지만 인용하는 영화랑 말투 등이 다 올드해. 얘기했듯 내용 전개도 너무 뻔하긴 하다. 하지만 작가의 데뷔작이라는 걸 감안하면,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을 읽은 후에 계속 읽을 지 판단하는 게 맞을 듯.


9.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프레드릭 배크만, 이은선 역. 다산책방. 2017. 160쪽)
: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 할아버지와 노아는 어느 광장의 벤치에 앉아 있다. 곳곳에 뜬금없이 공룡인형이며 자전거 따위가 놓여있는 이 곳에서 할아버지는 노아에게 여느때처럼 집으로 가는 법을 알려주려는 듯 하다. 하지만 이 광장은 점점 작아진다.

아름다운 삽화와 아름다운 문장들이지만 많이 아프다. 짧지만 깊은 이야기. 사실 우리 모두의 광장은 어느 나이가 되면 좁아지기 시작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다만 할아버지의 광장은 그 속도가 더 빠르겠지. 하지만 그 곁에서 손잡고 함께 앉아 있어줄 누군가가 있는 한 조금은 괜찮지 않을까.


10. 희귀본 살인사건(페이지 셀던, 이수영 역. 나무옆벤치. 2018. 366쪽)
: 오랜만에 발견한 정말 재밌는 코지 미스터리. 미국 켄자스의 딜레이니는 마침 박물관 일을 그만두고 쉬던 중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책방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걸 알게 되고, 원거리 면접을 본 후 취직한다. 모험이라고는 해본 적 없지만 지구 반대편으로 가서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된 딜레이니. 일과 스코틀랜드에 적응하던 중 서점 주인이자 각종 고문서와 골동품 수집에 일가견이 있는 에드윈의 마약중독자 동생 제니가 살해된다.

시리즈의 시작이어서 아직은 캐릭터 및 배경 소개에 더 치중되어 있다. 딜레이니의 특별함(책들이 말을 건다)과 에드윈의 수상함, 그리고 나머지 직원들의 독특함이 정말 매력적이고 무엇보다 고문서와 골동품이 가득한 책방이 정말 흥미롭다. 얼른 이 시리즈 전부 번역됐으면.


11. 빛의 호위(조해진. 창비. 2017. 268쪽)
: 좋았다는 말로는 부족한, 삶과 인간에 대한 드러나지 않는 애정이 보이는 작품들. 현대를 부유하는 디아스포라의 서글픔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꼭 잡아야 하는 이유가 되어주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프지만 따뜻하다. 모든 작품들이 다 좋았다. "살아 있는 한 살아야 함을 넘어, 살아 있다는 감각에 집중"(127쪽)하여야 함을 이야기해줘서, 고마웠다.


12. 벌들의 죽음(리사 오도넬, 김지현 역. 오퍼스프레스. 2015. 431쪽)
: 마약중독자 아버지는 침대에서 죽었고, 오열하던 엄마는 다음날 뒷뜰 창고에서 목을 맸다. 두 시체를 뒷뜰에 묻은 열 다섯 마니와 열 둘 넬리. 원래부터 자식들을 방치하곤 했던 부모가 멀리 여행을 떠났다는 거짓말을 주위에 퍼뜨리고, 어떻게든 둘이서 꾸려나가던 그들 자매를 옆집에 사는 게이 노인 레니가 조금씩 챙기기 시작한다.

결말을 읽을 때까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형식은 미스터리이지만 사실 아버지를 누가 죽였는가는 중요한 게 아니다. 그저 죽을 만 해서 죽었을 뿐. 다만 마니와 넬리가 어떻게 하루하루 버틸 수 있을지, 특히나 마음을 더 다치지 않을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읽는 내내 끔찍함에 몸을 떨었지만 그래도 해피엔딩이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게다가 조금의 통쾌함도 있었고. 오랜만에 정말 맘에 드는 소설을 읽어서 좋았다.


13. 거짓말을 먹는 나무(프랜시스 하딩, 박산호 역. 랜덤하우스코리아. 2017. 544쪽)


14. 남은 생의 첫날(비르지니 그리말디, 이안 역. 열림원. 2015. 355쪽)
: 기대보다 가벼웠던 이야기. 늘 남편에게 헌신하며 남편의 냉대와 무시, 불륜마저 참고 살던 마리는 남편 생일날 그를 떠나 세계일주 유람선에 오른다. 첫날 20대의 카밀, 60대의 안느와 친해진 마리. 카밀은 뚱뚱하고 못생겼던 과거를 딛고 새로운 삶을 사는 계기를 만들려 유람선에 올랐고 기항지마다 남자를 유혹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안느는 40년을 함께한 사랑을 한순간의 실수로 잃고 절망 속에서 떠나왔다. 이 세명이 각자의 인생을 다시 찾는 이야기.

문학상 수상작이라고 해서 기대가 컸는데 솔직히 실망했다. 기대가 없었다면 괜찮았을 지도. 뻔한 칙릿이지만 재미가 없지는 않았다. 기대만큼의 개운함이나 깊이는 없을지언정.


15. 여름의 맛(하성란. 문학과지성사. 2013. 368쪽)
: 오랜만에 읽은 작가였지만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한국 작가를 찾으려고 모험을 하기보다는 '안전하게' 가야하는 걸까하는 생각을 하게 했던 작품들. 내용과 상관없이 다 무난했다. 그러니까, 필력이. 역시 꾸준히 찾아읽을만 한 작가.


16. 그리고 신은 내게 도와달라고 말했다(한스 라트, 박종대 역. 열린책들. 2018. 324쪽)
: 앞의 두 권에서 신과 오랜 시간 토론하고 악마의 유혹을 떨쳐낸 야콥. 언제나처럼 추운 길을 퇴근하던 중 산타와 요정 복장을 한 강도에게 시계와 지갑을 뺏기고 경찰서에 갔다 나오는 길에 건너편에 4년 전에 죽은 자칭 신 아벨 바우만을 발견한다. 잘못 봤겠거니 했지만 야콥의 집까지 찾아온 아벨은 야콥이 자기가 선택한 메시아라며 이 세상을 구하는 임무를 맡으라고 한다.

재밌었다. 역시 이 작가의 필력은 여전하다. 하지만 그래도 재미로 보면 악마 이야기만한 건 없기는 하다. 이 책은 이야기의 전개가 너무 뻔했고, 결말도 좀 시시했다. 그게 뭐야, 그건 메시아만 할 법한 일은 아니잖아... 어쨌든 이 시리즈가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 소재가 있을 지 모르겠지만.


17. 내가 걸어서 여행하는 이유(올리비에 블레이즈, 김혜영 역. 북라이프. 2017. 268쪽)
: 이 책을 선택하면서, 난 정말 armchair traveler라는 생각을 했다. 걷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그건 정말 모든 조건 - 복장, 신발, 날씨(미세먼지 농도 포함), 목적지, 음악 등등 - 이 완벽하게 충족되어 있을 때만 그런 것.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좀 무모하다 싶게 걷기 여행으로 뛰어든다. 물론 경험에서 배워가며 나아지긴 하지만. 저자는 1년에 한 달씩 시간을 내어 프랑스에서 스위스, 이탈리아를 지나 동유럽까지 걸어간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사실 초반에는 단락과 단락 사이의 유기성이 떨어지고, 저자가 도시와 자동차, 아스팔트 등에 관해 주저리주저리 불평하는 게 꼰대처럼 보여서 계속 읽어야하나 고민하기도 했지만, 뒷부분으로 갈수록 저자 자신도 그랬듯 걷기에만 집중되어서 읽을 만 했다.

사실 걷는 여행에 관해서는 이미 상당히 많은 책들이 나와 있다, 특히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들. 나도 꽤 많이 읽었지만 걷는 여행은, 특히 이 책처럼 남들과는 조금 다른 경로를 걷는 이야기는 읽을 수록 새롭다. 아마 내가 저자처럼 걸어서 여행할 일은 없겠지만, 간접 경험이나마 즐거웠다.


18. 앙리 픽 미스터리(다비드 포앙키노스, 이재익 역. 달콤한책. 2017. 319쪽)
: 브르타뉴 지방의 작은 도시 크로종. 이 곳의 작은 도서관에는 '누구도 원하지 않는 책들'만을 위한 서가가 있다. 도서관장 구르벡이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소설을 읽고 아이디어를 내서 만든,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해 출판이 되지 못한 책들을 위한 서가. 시간이 흘러 구르벡도 이세상 사람이 아니게 된 어느 날, 파리에서 편집자를 하는 델핀이 작가인 남자친구 프레드와 함께 부모님 집에 휴가를 보내러 왔다가 앙리 픽이라는, 죽은 피자가게 주인이 쓴 엄청난 소설을 발견한다.

결말이 뭐랄까, 좀 허무했다. 그것만은 아니기를 바랐는데. 그래도 이야기를 따라가는 동안에는 정신을 딴 데 팔 수 없게 흥미진진했다. 우리나라에선 절대 있을 리 없는 '누구도 원하지 않는 책들'의 도서관도 충분히 흥미로웠고. 이 작가의 다음 책도 기대된다.


19. 애티커스의 기묘한 실종사건(마멘 산체스, 김고명 역. 북로그컴퍼니. 2017. 398쪽)
: 가볍게 읽을만 한, 해피엔딩이 보장된 이야기. 마드리드의 만체고 경위에게 어느 날 실종 사건이 하나 접수된다. 영국의 출판 명가 크라프츠먼사의 스페인 지부인 잡지사 <리브라르테>를 정리하러 온 애티커스 크라프츠먼이 몇 달 째 연락이 없다는 것. 이야기는 만체고가 더듬어가는 애티커스의 행적과 몇 달 전 애티커스가 마드리드에 도착한 이래 전개된 사건들을 차례로 보여준다.

스릴러처럼 보일 지 모르지만 전혀 아니다. 가볍지만 나름 스페인 그라나다 지방의 풍습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라나다의 풍습이 의외로 남미 분위기가 풍겨서 신선했다. 그 와중에 애티커스 본가의 서재 모습은 부러워서 기절할 지경. 이야기가 모두 짐작가능하기는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편하게 읽었던 책.


by 달을향한사다리 | 2018/05/02 17:26 | Yujin's Book Story | 트랙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