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독서 목록

1. 개인주의 가족(그레구아르 들라쿠르, 이선민 역. 문학테라피. 2016. 211쪽)
: 일곱 살에 쓴 시 한 편으로 '우리 가족 작가'라는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자란 화자. 그만한 자질은 없었지만 쫓기듯 소설을 끼적거린다. 대학 때 만난 모니크도 화자 에두아르가 위대한 작가가 될 것이라면서 그의 등을 떠민다.

읽는 내내 에두아르가 가엾으면서도 그에게 화가 났다. 왜 말을 못하니, 왜 등 돌리지 않니, 왜 떠나지 않니. 그리고 어쩌면 이 모든 건 덤보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덤보를 미워하기도 했다. 사실 제일 짜증나는 건 모니크였지만. 어쨌든 에두아르는 이 모든 걸 딛고 행복을 향해 한걸음 내딛으니, 그걸로 됐다. 담담하게 얘기했지만 많이 아팠을 그가 이제는 편해지기를. 제목과는 다르게 가족에게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바보처럼 그 모든 불행들을 온 몸으로 받아냈던 에두아르가 이제는 행복해지기를.


2. 칸트의 집(최상희. 비룡소. 2013. 296쪽)
: 자기만의 규칙을 가지고 자기만의 세계 속에 사는 두 살 위 형 나무. 나 열무는 형과 엄마와 함께 다 쓰러져가는 바닷가 집으로 이사왔다. 형은 늘 같은 시간에 바닷가 모래밭에서 정해진 만큼의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늘 같은 시간에 그 바닷가를 산책하는 백발의 남자가 있다. 어느 날 바닷가에 있는 줄 알았던 형이 안 보이고, 열무는 형을 그 남자의 숲 속 집에서 찾아낸다.

자신 안에 갇힌 아이와 스스로를 가둔 남자의 우정은 어쩌면 뻔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이 이야기는 열무를 화자로 내세워 열무와 칸트의 이야기를 더해 진부함에서 벗어난다. 형이 남들과 다르다는 걸 좀처럼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엄마와 그저 규칙만 지켜지면 다른 건 모두 상관없는 형, 그리고 감당 못해 떠나버린 아빠. 겨우 중학교 2학년인 열무에게는 너무 원망스러운 가족들일 수 있지만 그저 담담히 받아들이며 작게 구시렁거리는 게 다였던 열무가 단 한 번일지라도 길게 울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칸트의 이끎을 따라 짧고도 긴 여행을 한 게 나무가 아닌 열무라는 것도. 안아주고 싶었던 열무는 잘 자라겠지. 그래서 형의 둥근 둥지가 아닌 자신만의 집을 짓겠지. 다행이다.


3. 정신 병원을 탈출한 여신 프레야(매튜 로렌스, 김세경 역. 아작. 2016. 432쪽)
: 북유럽 신화의 사랑과 전쟁의 여신 프레야. 미국으로 건너와 정신병원에서 지루하고도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다. 어느 날 자신을 찾아온 가렌이라는 남자가 채용 제의를 하겠다며, 자신이 일하는 회사로 오면 힘을 키울 수 있게 신도를 제공하겠다고 한다. 조용히 살고 싶어 거절하자 남자는 졍신병원의 인간들을 모두 잠재우고 이 틈에 프레야는 나딘이라는 병원 신입 직원을 들쳐메고 탈출한다.

전세계 신화 속 신들을 모아 그들의 힘의 원천인 믿음을 제공하고 그들의 힘을 이용한다는 설정은 정말 참신했다. 다만 아직 시리즈의 첫째 권에 불과하기에 그들이 제공하는 믿음의 왜곡된 형태와 심들의 힘을 그들이 사용하고자 하는 잘못된 방향에 대한 충분한 설득이 없어 프레야가 피넴디를 파괴하려는 당위성이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물론 액션은 화려했고 긴박한 순간들에 대한 서술도 훌륭해서 재밌게 읽었다. 읽으면서 문득 우리나라의 신들에 대해 생각해 봤는데, 내가 워낙 무지하긴 하지만 저 개싸움(?!) 속에 들어가 살아 남을 정도로 성격 드러운 신은 우리 신전에는 없을 것 같아. 기껏해야 염라대왕 정도?


4. 헬로, 미스터 찹(전아리. 나무옆의자. 2014. 220쪽)
: 갑작스런 사고로 엄마가 돌아가신지 한 달. 대학생 정우는 생일을 맞아 강아지를 한 마리 사서 집에 들어왔는데, 처음 보는 난쟁이가 집 안에 있다. 미스터 찹이라는 이 난쟁이는 강아지와 싸우고,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태연하게 눌러 앉는다. 정우는 여자친구를 사귀고 강아지를 돌보는 일상을 하루하루 살아간다.

글은 깊이는 얕았지만 편안했다. 그냥 딱 이 작가만큼이었달까. 미스터 찹이 머물렀던 이유도 머물렀던 기간도 딱 예상 만큼이었지만 난 좀 얄밉기도 했다. 어쨌든 나쁘지 않았다.


5. 보건교사 안은영(정세랑. 민음사.2015. 277쪽)
: 와, 이런 신선한 이야기라니! 나 이런 얘기는 처음 읽는 것 같다. 물론 내가 '한국형 판타지'라고 표방하는 책들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글로벌 판타지들 특히 퇴마 이야기를 많이 읽은 것도 아니지만 진짜 이 이야기는 참신했다. 간호사 출신의 평범한 보건교사 안은영이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 내의 여러 '영물'들을 퇴치하는 이야기. 학교 재단 후계자인 한문선생 홍인표의 '기충전'과 명승지나 남산 자물쇠, 소원 탑 등에서 에너지를 받는 설정은 정말 신선했고 학교이기에 생겨날 수 밖에 없는 사건 사고들도 재밌었다. 특히 교사 메켄지 챕터에서는 나도 안타까웠지. 이런 엄청난 능력으로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료봉사를 해주는 거, 아깝긴 하다. 미드 슈퍼내추럴 보면서 나도 쟤네는 기름값이랑 모텔비, 식비를 어디서 충당하는걸까, 고스트버스터즈처럼 수익사업을 하면 안 되는 걸까 궁금했었는데. 어쨌든 이 얘기도 정말 귀엽고 신선했다. 내겐 이런 이야기가 필요했어. 이 작가 정말 잘 쓴다.


6. 환상의 여인(윌리엄 아이리시, 이은선 역. 엘릭시르. 2012. 432쪽)
: 스콧 핸더슨은 아내와 싸우고 나와 처음 가는 바에서 눈에 띄는 오렌지 색 모자를 쓴 여인을 만난다. 아내와 함께 보기로 했던 공연을 그녀와 함께 보기로 하고, 하룻 저녁의 데이트 동안 서로에 대해 아무 것도 묻지 않기로 한다. 그런데 새벽에 귀가해 보니 아내가 죽어 있고 스콧은 범인으로 지목되어 이제 사형일을 앞두고 있다.

재밌었다. 이웃님 리뷰를 예전에 읽었어서 기대 없이 읽었기에 더 관대할 수 있었을 듯. 범인은 내가 의심한 딱 그 사람. 아마 누구라도 그를 의심할 테지만. 아무래도 시대적 배경 답게 올드한 면도 있지만 책 소개처럼 나 같은 초심자들에게 적당한 책이다. '환상의 여인'의 행방과 안전이 궁금해서 더 집중해서 읽게 되는 듯. 그런데 스콧 당신말야, 앞으로 제대로 살아. 내로남불, 웃겨. 마르셀라 불쌍하다.


7. 수비의 기술 1,2(채드 하바크, 문은실 역. 시공사. 2012. 442쪽, 439쪽)


8. 크리스티네, 변신에 도취하다(슈테판 츠바이크, 남기철 역. 이숲에올빼미. 2011. 475쪽)
: 츠바이크가 여자의 맘을 이렇게 잘 아는 건, 로테 덕분일까? 말년의 작품이라더니 그가 얼마나 지쳤는지가 작중인물 페르디난트의 입을 통해 피처럼 토해진다. 비록 부자 이모의 휴가 여행에 따라붙어 공작의 영애인 척 하며 귀족들과 어울려 자신의 위치를 잊은 것도, 다시 고향에 돌아와 진창 같은 현실 속에 절망한 것도, 그러다 페르디난트를 만난 것도 크리스티네이지만. 내 마음은 그래서 크리스티네를 따라갔다. 주눅들었다가 조마조마하다가 붕 떴다가 절벽 바닥으로 추락해 부러진 양 다리로 땅을 디딜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날아오를 날개를 가진 것도 아닌 참담함까지. 이 책이 미완이라는 견해가 있을 만큼 결말은 미진하지만 이야기만큼은 잘을 참아가며 읽을 만큼 난 깊이 빨아들였다.


9. 에브리데이(데이비드 리바이선, 서창렬 역. 민음사. 2015. 421쪽)
: 매일 다른 사람의 몸에서 깨어나는 열 여섯 A. 그렇게 한 명 한 명의 하루씩을 빼앗으며 살아왔다. 자신과 동갑인 사람들의 하루를. 한 번도 같은 사람으로 깨어난 적은 없고, 아침에 깨어나면 이 몸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고 그녀 혹은 그의 기억에 접속하여 생활을 할 수 있다. 이렇게 산 지 5994일에 저스틴의 몸에서 깨어난 A는 그의 여자친구 리애넌을 보자 사랑에 빠진다.

이렇게 가엾고 이렇게 바른 열 여섯은 책에서도 처음이다. 이렇게 안쓰럽고 이렇게 어른스러운 아이도. A는 남자일지도 혹은 여자일지도 모른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여자의 몸에서 깨어나는지 남자의 몸에서 깨어나는지도, 여자를 사랑하는지 남자를 사랑하는지도.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고도 당연한 거지만 누구든 쉽게 드러내놓고 얘기하거나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기는 힘든 것. 하지만 A에게는 너무도 자연스럽다. 그래서 좋았다.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걸 원하면서도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 타인의 정당한 의문을 무시하지 않는,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스스로 이름지은 A가 편안해 지기를.


10. 인생의 양식(애거사 크리스티, 공경희 역. 포레. 2015. 527쪽)
: 아 어리석은 자여, 그대 이름은 남자. 이 이야기는 1차 대전 직전 영국, 천재 작곡가 버넌 데일의 인생 특히 사랑 이야기이다. 그리고 버넌은 적어도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어리석고 어리석으며 어리석었다. 왜 제인을 알아보지 못한 거야? 왜 넬에게만 빠진 거야? 제인이 당신한테 어떻게 했는데!

사랑은 타이밍이다. 사랑에 있어서 늘 운이 좋았던 넬과 늘 솔직했으며 헌신적이었던 제인. 그리고 역시나 볼 수 있는 걸 보려 하지 않고 보고 싶은 것만 봤던 버넌. 버넌의 시선이 조금만 빨리 뒤를 돌아봤다면 제인은 행복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버넌의 음악은? 역자가 후기에서 말했듯 이 소설은 누구라도 주인공으로 읽힐 수 있다. 난 처음에는 버넌과 넬이 주인공이라는 생각에 상당히 별로라고 느꼈지만 결국 주인공은 제인이었어. 하지만 그녀처럼 되고 싶지는 않다. 다음 생에서도 혹시 버넌 같은 남자를 만난다면, 몸을 살짝 틀어 비켜가요, 제인.


11. 애정 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전은강. 디오네. 2005. 308쪽)
: 재미도 그저 그랬고 좀 시시했다. 무엇보다 등장 인물들이 다 너무 비호감. 미미 누나도, 현이 아빠도, 동네 사람들도. 피식거리며 웃을만 하긴 했지만 딱 그 정도. 꽤 유치했다.


12. 귀향(베른하르트 슐링크, 박종대 역. 시공사. 2013. 483쪽)


13. 차가운 달(얀 코스틴 바그너, 유혜자 역. 들녘. 2010. 478쪽)
: 형사 킴모는 아내를 암으로 잃는다.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 속에서 차라리 업무에 집중하려고 복귀한 그는 베개로 질식사한 살인 사건에 투입된다.

스릴러이긴 하지만 스릴러 특유의 긴장감은 덜하다. 다만 왠지 겨울 새벽 같은 차갑고 날카로운 공기 속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이 계속된다. 아내의 부재가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는 킴모. 베사 자신과 살인을 하는 '그'를 분리하는, 하지만 살인의 순간 자신의 전지전능을 만끽하는 살인범. 이들의 시선이 교차되어 보여지고, 근거는 없지만 살인범의 생각을 느끼는 킴모의 수사는 마치 겨울 호수같다. 다만 중간중간 빈 듯한 느낌은 지울 수 없다. 북유럽식 스릴러에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작가에게 아니 킴모에게 뭔가를 더 묻고 싶은 기분. 하지만 이야기가, 느낌이 부족하진 않았다.


14. 베니스의 제프, 바라나시에서 죽다(제프 다이어, 한유주 역. 사흘. 2015. 434쪽)
: 제목과 뒷표지의 찬사(?)에 낚였다고 해야하나. 기대치가 낮았다면 재밌었을지도 모르겠다. 1부 베니스의 제프와 2부 바라나시의 제프 사이 간극이 너무 커서 2부를 한참 읽어가면서도 머리 속으로는 혹시 이게 그냥 각각의 작품인데 편집자가 묶어버린건가 싶기도 했고, 조금 더 읽고 나서는 그냥 연작 소설로 봐야하나 싶기도 했다. 이는 단지 1부와 2부의 시점문제(3인칭-1인칭)는 아니었다. 내게는 마치 베니스의 제프와 바라나시의 제프가 서로를 디스하는 것 같았다. 베니스 제프의 불타오르는 욕망과 철없음 vs 바라나시 제프의 비움과 내려놓음. 불행하게도 어느 쪽도 내 취향은 아니었다. 바라나시 제프의 깨달음은, 2부 자체 내에서만 볼 때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지만 베니스의 제프와 동일인이라는 전제 하에서는 급작스럽다. 1부와 2부가 각각의 작품이었다면 차라리 난 둘 다에게 후한 점수를 주었을 지도.


15. 빅 마운틴 스캔들(카린 지에벨, 이승재 역. 밝은세상. 2016. 592쪽)
: 꽤 재미있었다. 산악가이드로 일하는 뱅상. 몇년 전 아내가 관광객과 도망간 후 여자들과 원나잇만을 즐기며 아내에게서 받은 상처를 뭇 여성들에게 복수하며 풀고 있다. 어느 날 그의 절친 산악감시원 피에르가 추락사한 시체로 발견되고, 산을 누구보다 잘 아는 피에르가 발을 헛디뎠을 리 없다고 믿는 뱅상은 새로 부임한 군인경찰 세르반과 수사를 시작한다.

두께에 비해 페이지가 빨리 넘어간다. 무엇보다 주인공 둘이 수사에만 매달리지 않아서 좋았다. 둘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서. 다만 마지막 챕터에서 세르반의 성 정체성에 관한 얘기는... 뭐지, 싶었다. 이야기는 예상대로 흘러가기도 하고 아주 작은 반전이 있기도 하지만 나름 촘촘했고,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흥미도 생겼다.


16. 호모 도미난스(장강명. 은행나무. 2014. 343쪽)
: 『표백』이랑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니었다. 훨씬 재밌었다. 무한 경쟁사회에서 나타난 진화된 인간 정신조종 능력자. 중국 전설에 따라 스스로를 '흰원숭이'로 부르며 '백원단'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능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류잉춘과 그의 선택을 받은 안시현. 그리고 능력을 써서 세상을 바꾸려는 저우환위와 사적인 욕심을 채우려는 천슈란의 이야기. 첫 몇 페이지에 너무 잔인한 장면이 나와서 멈칫했지만 곧 빠져들었다. 속도감 있는 전개와 분명한 캐릭터 덕에 즐겁게 읽었다. 다만 챕터와 챕터 사이에 슬쩍 끼워넣은 백원단 문서는 초반의 몰입에 잠깐씩 제동을 걸긴 했다. 아직도 내게 이 작가의 최고 작품은 『그믐』이지만 이 작품에서 작가의 필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17. 탐정 넬(케이트 해니건, 김경희 역. 주니어RHK. 2015. 347쪽)
: 내가 마음이 좀 더 부드러웠다면 이 책이 재미있었을까? 고를 때는 분명 엄청 기대하면서 집어들었는데. 넬은 모든 가족을 잃고 오랫동안 왕래가 없던 키티 숙모와 살게 된다. 넬의 아빠가 자기 남편을 죽인 게 사고라는 걸 인정하기 싫어하는 키티 숙모는 넬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넬은 어떻게든 고아원에 보내지지 않으려고 애쓰며, 여탐정으로 일하는 숙모를 돕는다.

주인공이 너무 비호감이었다. 그냥 다른 청소년 작품들의 어린 탐정들처럼 적당히 영악하면서도 어린애 같은 면이 있다면 좋았을 텐데 이 아이는 머리 나쁜 못된 애 같았다. 숙모 옆에 있고 싶다면 눈치껏 굴어야지, 그렇게 키티라고 부르지 말랬는데 끝까지 키티라고 부르며 자기를 탐정일에 안 끼워준다고 삐지고, 결정적인 순간에 실수해대고... 하는 행동만 보면 아홉살 짜리 같은데 말끝마다 자기 어린애 아니라고하고. 19세기에 열 서너살이면 다 큰 거 아닌가? 그 시절에는 어린이들이 요즘보다 정신적으로 빨리 성숙했잖아. 넬은 비록 비호감이었지만 그래도 책 말미에선 정신 좀 차렸고, 사실 넬 보다 케이트 원이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계속 읽게 되었다. 그 시절에도 여성이 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일을 그것도 잘 해내고 넬에게 왜 간호사에서 머무르려 하냐고 의사가 될 수도 있다고 얘기해 주는 케이트가 정말 멋있었다. 게다가 실존인물이라니. 차라리 케이트가 주인공인 어른 소설을 써줄 일이지.

ps. 어린이 책이라면 교정을 더 잘 봐야지. 남편의 친형은 형부가 아니라 아주버니다.(35쪽)


18. 모든 일이 드래건플라이 헌책방에서 시작되었다(셸리 킹, 이경아 역. 열린책들. 2016. 360쪽)
: 적당히 해피엔딩인 로맨틱 코미디.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에서 일하던 매기는 실직을 하고 몇 달 째 드래건플라이 헌책방에서 로맨스 소설만 읽어대고 있다. 집주인이자 헌책방 주인인 휴고는 그녀의 집세를 깎아주었을 뿐 아니라 헌책방 일자리까지 제안한다. 매기는 서가를 정리하던 중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서 남녀가 번갈아 주고 받으며 쓴 메모들을 발견하는데...

엔딩은 내 기준으로는 절반의 해피엔딩이었다. 그렇게 다시 시작하는 건 내 생각에는 좀 그래. 그 사람을 잃었는데 거기에 더해... 다만 라지트와의 관계는 오히려 현실적이어서 좋았다. 서점이나 책에 관한 얘기는 늘 열린 맘으로 좋아할 준비를 하고서 읽기 시작하지만 기대만큼은 아니었던 적이 더 많았던 듯. 앞으로는 기대하지 말고 시작해야겠다.


19. 덧니가 보고 싶어(정세랑. 난다. 2011. 247쪽)
: 덧니가 매력적인 장르 소설가 재화. 오래 전에 사귀다 헤어진 용기와 닮은 등장인물을 의도치 않게 작품에서 죽여버린다. 보안업체에 다니면서 지금은 어린 여자친구와 사귀는 용기는 어느 날부터 몸에 이상한 문장들이 문신처럼 나타나기 시작한다.

정말 귀엽고 매력적인 소설. 전에도 얘기했듯 딱 이만큼의 판타지가 좋다. 꼭 지구를, 나라를 구해야만 영웅인 건 아니지. 아끼는 사람을 구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다. 굳이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질 필요 있나? 사랑하는 사람들 마음 안 아프게 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제목이 왜 이걸까 하는 생각을 읽는 내내 했는데 마지막 챕터에서 알았다. 무심결에 지나쳐버린 첫 챕터의 떡밥도 깨달았고. 진짜 재밌었다.


20. 게스트(세라 워터스, 김지현 역. 자음과모음. 2016. 739쪽)
: 이 작가의 패턴이 그대로 반영된 소설. 배경은 1차 대전 직후 1922년 런던. 전쟁 중에 오빠와 남동생을 잃고 아버지마저 돌아가시자 프랜시스는 엄마와 함께 사는 저택의 유지를 위해 2층을 세 놓기로 한다. 젊은 바버 부부가 이사오고, 불편함과 어색함을 견디며 조금씩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하던 중, 바버 부인과 단둘이 소풍을 가게 된다.

패턴이 딱 보였지만 그래도 재밌었다. 사실 내 예상은 이 얘기를 한 번 더 꼬지 않을까 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전작들에서보다 심리 묘사가 촘촘한 게 가장 맘에 들었다. 다만 그 불안하고 원망스러우면서도 의심스럽다가도 미치게 보고싶은 그 마음을 따라가다보니 좀 지치는 기분도 들었다. 그리고 결말은 뭐랄까 좀 이도저도 아닌듯. 해피도 새드도 아니었다. 그저 읽느라 지쳐서 이제는 그들이 그저 잘 살겠지 하며 책 덮어야겠다 싶었다. 그래도 재밌게 읽었으니 만족.


21. 어린 왕자를 찾아서(김화영. 문학동네. 2007. 119쪽)
: 『어린왕자』불어판 출간 60주년을 맞아 쓴 에세이. 생텍쥐페리의 생과 『어린왕자』의 집필 배경과 과정 등이 그가 남긴 여러 관련 자료들 - 스케치, 편지, 메모 등 -과 함께 소개된다. 사실 이 자료들이 보고 싶어서 이 책을 산 건데, 읽으면서 생텍쥐페리의 삶에 대해 좀더 알게 되어서 좋았다. 특히 어머니와의 마지막 만남과 아내에 대한 애틋함은 날 눈물짓게 했다. 두고두고 꺼내볼 때마다 좋을 것 같다.


22. 신이 토끼였을 때(세라 윈먼, 정서진 역. 문학동네. 2015. 435쪽)
: 근래 읽었던 책 중에 가장 내 맘을 움직인 책이다. 어린 엘리는 이웃집으로 이사온 유대인 골란 씨와 친해진다. 공포와 고통에 대해 자신만의 슬픔을 간직한 것 같던, 좋은 사람처럼 보이던 이 노인은 엘리에겐 부적절한 친구였고 엘리보다 다섯 살 많은 오빠 조는 엘리에게 어울리는 친구를 만들어 주겠다며 작은 토끼를 데려온다. 엘리는 토끼의 이름을 '신'이라고 짓는다. 학교에 입학한 엘리는 줄곧 친구를 사귀지 못하지만 전학생 제니 페니는 '신'의 존재를 엘리만큼 받아들여주고, 둘은 단짝이 된다. 그러다 엘리네 가족은 멀리 이사를 가게 된다.

영특하면서도 속이 깊은 엘리와 너무 일찍 인생의 단 한 사람을 만나고 잃어버린 조, 늘 아름다운 고모 낸시와 닮고 싶은 노신사 아서, 주위에 한 명쯤은 있으면 정말 재밌을 것 같은 진저 그리고 안쓰러운 제니 페니까지 모두가 사랑스러웠고 아팠다. 특히 조는 내게 가장 아픈 손가락.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그가 죽기를 기도하다가 정작 그에게 정말 위험이 닥치자 앞으로 그를 볼 수 없어도 좋으니 그를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조는, 엘리의 비밀을 지켜주면서 엘리에게 어울리는 친구를 만들어 주는 조는, 그리고 자신을 잃은 상태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조는 내가 늘 곁에 있어주길 바라는 사람이었다. 늘 내 곁에 있으면서 때로는 내가 그에게 안겨 위로받고 또 때로는 내 품에 그를 안고 위로할 수 있는 좋은 친구였으면... 물론 조 외에도 앞에서 말했던 모든 인물들이 다 좋았다. 그래서 난 책을 덮자마자 그들이 그리웠다. 그리고 지금도.

by 달을향한사다리 | 2016/11/02 16:41 | Yujin's Book Story | 트랙백 | 덧글(4)
Commented by 지노 at 2016/11/02 21:43
<보건교사 안은영>이 땡기는데요. 장강명 작가의 작품에선 재미가 빠질 수없을거 같아요. 기자출신 작가의 힘이 작품에서 느껴지더군요.
Commented by 달을향한사다리 at 2016/11/03 17:03
전 사실 <표백>은 그냥 그랬어요ㅋㅋㅋ 아이디어와 메시지는 좋은데 재미는 그닥... 그치만 점점 이야기꾼이 되어가는 게 느껴져서 꾸준히 읽게 되더라구요^^ <보건교사 안은영> 재밌어요^^
Commented by 취한배 at 2016/11/02 22:07
출퇴근 시간 길어진 덕(?) 톡톡히 보시는 사다리 님(?긍정적으로다가;) 10월에도 선방@@!
저는 덧니가 보고 싶네요. 덧니, 그리고 교정틀 낀 이에 패티시가... 제게 있는 것 같아요.(부끄=3=3)
Commented by 달을향한사다리 at 2016/11/03 17:09
긍정적으로~!! 지하철 길게 타는 건 책 많이 읽게 되어서 괜찮은데 타기 전후에 걷는 게 너무 싫어요ㅠ

취한배님 덧니 좋아하시면 <덧니가 보고 싶어> 읽으시면 공감 포인트가 있지 않을까 싶네요ㅋㅋㅋ전 정장셔츠+바지 패티시 있어용ㅋㅋㅋ단추를 후드득.... 교정틀 낀 이... 음... 알 것 같아요...(부끄부끄=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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