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독서 목록

1. 어떤 날들(앤드류 포터, 민은영 역. 문학동네. 2015. 551쪽)
: 이혼한 건축가 엘슨. 어린 애인이 있긴 하지만 왠지 요즘 사이가 멀어진 듯 하고 일에서도 예전같지 못하다. 아들딸과의 대화가 힘들게 된 지는 오래. 갑자기 전처에게서 대학에 가 있는 딸에게 문제가 생겨 집으로 돌아올 거라는 전화가 온다.

미국 중산층 가정의 붕괴는 어쩌면 상당히 진부한 소재일테지만 이 책은 꽤 신선하게 재미있었다. 이혼한 부부 각자의 미묘한 기대와 불안과 공허.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어 자꾸만 주어진 문제와 기회를 회피하는 아들. 사랑에 모든 것을 바치려는 딸. 이들 모두에게서 내 모습이 보였다면 과장일까. 이 작가는 이 책이 첫 장편이라는데 데뷔작 단편들도 기대된다.


2. 도둑괭이 공주(황인숙. 문학동네. 2011. 422쪽)
: 길냥이에게 밥을 주는 스무 살 캣맘 이야기. 철없는 어린 엄마는 미국인지 어딘지로 가서 연락 끊긴 지 오래고, 돌봐주던 이모네서 나와 편의점에서 일을 하며 길고양이들을 돌본다.

사실 이 책이 출간된 2011년이면 도둑고양이라는 말 대신 길고양이라는 말이 꽤 보편화됐을 때인데 제목이 참 촌스럽다. 대학생이 아닌 스무 살 여자아이의 이야기이지만 큰 고민은 없다. 나쁜 사람도 별로 없고. 물론 길고양이에게 해코지하는 못난이들은 등장한다. 하지만 '나'의 주변에는 다 따뜻한 사람들뿐이다. 그래서 편하게 읽었다. 이 책을 가볍다 말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장이 고양이 꼬리처럼 팔랑팔랑했다.


3. 어스(데이비드 니콜스, 박유안 역. 호메로스. 2015. 565쪽)
: 열 일곱 아들을 둔 피터슨 부부. 어느 날 밤 아내 코니는 남편 더글라스를 깨워 이젠 헤어지자고 얘기한다. 아들 앨비가 가을에 대학으로 가면 자신도 떠나겠다고. 하지만 세 식구가 함께 하기로 한 그랜드 투어는 취소하지 않고 가기로 한다. 이 기회를 통해 더글라스는 서먹한 아들 앨비와 친해지고 코니의 마음도 돌릴 수 있을까?

약간은 전형적일 수도 있는 가족 여행기이지만 작가의 필력이 좋아서 재밌게 술술 읽힌다. 여행기와 가족의 지난 시간들이 교차되어 보여지는데 챕터는 나누기는 했지만 여행에서 맞닥뜨리는 상황과 과거로의 연결이 아주 매끄럽다. 과학자(생화학자 남편)와 예술가(큐레이터 아내) 결합의 나쁜 예로 보여질 만한 캐릭터들에다가 더글라스와 앨비의 기차 안에서의 다툼이 우리 정서로는 납득이 쉽지 않기는 하지만 이 작가의 이야기 솜씨 덕분에 거슬리는 점은 그냥 덮어두게 된다. 다른 책들도 기대된다.


4. 우리가 묻어버린 것들(앨런 에스킨스, 강동혁 역. 들녘. 2015. 424쪽)
: 삶이 힘겨운 대학생 조. 엄마라고도 할 수 없는 술주정뱅이의 눈을 피해 겨우 돈을 모아 대학에 왔지만 엄마 곁에 남겨둔 자폐증 동생 제러미가 늘 신경쓰인다. 생활비를 위한 알바 때문에 미뤄둔 대학영어 과제를 위해 무작정 요양원을 찾은 조는 30여년 전 열 네 살 소녀를 강간살해하고 시체마저 불태운 살인범 칼이 말기암 때문에 석방되어 이 곳에 머물고 있다는 걸 알고 그를 인터뷰하기로 한다.

진짜 재밌었다. 내게 맞는 스릴러를 또 찾아내서 뿌듯. 30년 전의 사건을 파헤치는 와중에도 생활에 찌든 조의 삶과 사랑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고 칼의 인생 이야기도 놓치지 않았다. 사람을 죽이는 것과 살해하는 것의 차이. 마지막까지도 지켜줘야 하는 존엄성. 그리고 죄책감을 덜기 위한 자기 학대와 아이러니한 삶에 대한 의지까지. 잘 쓰는 작가다. 후속작도 얼른 읽어야겠다.


5. 아우라(카를로스 푸안테스, 송상기 역. 민음사. 2009. 106쪽)
: 환상적인 푸엔테스의 단편. 역사학자 몬테로는 신문 광고를 보고 옛 시가지의 낡은 저택으로 간다. 그 곳에서 늙고 쇠약한 노부인 콘수엘로의 죽은 남편 비망록을 정리하는 일을 맡은 그는 곧 콘수엘로의 조카이자 유일한 벗인 아우라의 물결치는 듯한 녹색 눈동자에 빠져든다.

콘수엘로와 아우라의 비밀은 금세 드러나지만 나도 모르게 펠리페와 함께 그녀에게 빠져들고 결국 모든 게 그녀의 뜻대로 되기를 바라게 된다. 역시 작가의 힘인 듯. 여전히 내 사랑을 끌어올리는 푸엔테스.


6. 떠다니네(조용호. 민음사. 2013. 205쪽)
: 침선 낚시를 하러 먼 바다로 나가는 남자(<모란무늬 코끼리 향로>), 집에서는 잠시 몸을 누일 뿐인 여행 사진작가(<베인테 아뇨스>,<신천옹>), 고향을 떠나 돈을 벌러 온 가장(<별이 빛나는 밤에>), 아들을 잃고 이제는 아내마저 잃는 중인 남자(표제작), 20여년 동안 한 여인을 두 번 잃고 그녀를 보내러 여행 온 남자(<달과 오벨리스크>). 모두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부유하는 사람들이다. 나름의 이유가 있어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나라도 손목 끌어다 앉히고 더운 밥 차려주고 싶은 사람들. 이 작가 특유의 신파이고, 오래된 마음이고, 어쩌면 구닥다리 캐릭터이다. 하지만 난 이게 좋다. 평펑 울게하기보다는 묵지근하게 가슴 속에 내려앉는 슬픔들이.


7. 아파트 제대로 고르는 법(심형석. 한국경제신문. 2016. 351쪽)
: 제목에 끌려서 읽었다. 도움되는 정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원론적인 거라서... 그리고 아주 작은 부분이긴 하지만 작년에 쓴 원고인 듯한 부분에선 올해의 시장 예측이 엇나가기도 했다. 새 아파트 분양받을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될 수도 있을 듯. 하지만 난 그냥 내가 살고 싶은 집을 고를 거다.


8. 시작하는 연인들은 투케로 간다(그레쿠아르 들라쿠르, 이선민 역. 문학테라피. 2015. 219쪽)
: 20세기 마지막 독립기념일(7월 14일) 투케 해변에 있던 네 가지 사랑 이야기. 열 다섯&열 셋의 풋사랑 커플, 늘 남자운이 없던 한 여인, 남편에게서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하는 쉰 다섯의 여인 그리고 결혼 50년이 된 노년 커플.

차분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 하나하나가 모두 보석처럼, 햇살에 반사되는 파도 거품처럼 반짝였다. 큰 기대 안 하고 읽었는데 마음을 쓰다듬어 주는 부드러운 슬픔 덕에 위로받았다. 가장 좋았던 건 <사랑을 모를 때 만난 사랑>. 뒤의 <오이풀>은 오히려 좀 아쉽다.


9. 신원 미상 여자(파트릭 모디아노, 조용희 역. 문학동네. 2003. 175쪽)
: 심란한 마음 가라앉히기에는 역시 모디아노. 세 편의 단편이 모인 연작소설이다. 삶이 아직은 부표처럼 흔들리는 20대의 여성들이 화자이다. 그녀들은 불안해하고 우울해하고 두려워했지만 난 그녀들이 부러웠다. 면접에 떨어진 후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는, 기숙학교로 가는 버스를 타지 않을 수 있는, 살던 곳을 과감히 떠나올 수 있는 그녀들이. 모디아노 특유의 차분하고 아련한 분위기 속에서 쓸쓸함이 묻어난다. 사랑을 하고 일을 하고 모임에 들어가지만 결국은 혼자일 수 밖에 없는 쓸쓸함. 그래도 그 쓸쓸함이 날 위로했다.


10. 저 반짝이는 별들로부터(필립 K. 딕 외, 정소연 역. 창비. 2009. 369쪽)
: 전에 읽은 『다른 늑대도 있다』가 정말 좋았어서 비슷한 느낌의 SF 버전인 이 책도 집어들었는데, 역시 난 SF는 별로 안 맞는 듯. 물론 괜찮은 작품들도 있었고 여러 생각을 하게 하기는 했지만... 가장 좋았던 작품은 판타지같던 <슬픔의 카드>.


11. 6시 27분 책 읽어주는 남자(장-폴 디디에로랑, 양영란 역. 청미래. 2014. 232쪽)
: 매일 아침 출근길 6시 27분 열차에 타는 길랭. 늘 지하철 보조의자에 앉아 낱장으로 된 책장을 큰 소리로 읽어준다. 책 파쇄 공장에서 일을 하고, 스스로도 너무나 싫어하는 이 일에서 살아남은 책의 '살갗'들을 이렇게 소진하는 것.

재미있었다. 사실 처음 1/5 정도는 좀 지루했지만. 짧고 뻔하지만 귀엽고 착한 이야기.


12. 나b책(김사과. 창비. 2011. 167쪽)
: 나와 b와 책의 이야기. 중학생인 나와 b. (아마도)20대인 책. 부모님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나와 가난한 b. 모든 게 싫어 책만 읽는 책. 물고기가 되고 싶은 b와 바다가 되고 싶은 나와 책이 되고 싶은 책.

미친 슬픈 이야기. 좋았지만 싫었다. 김사과는 계속 읽을 거지만 이 책은 다시는 안 읽을 거다.


13. 기억을 잃어버린 앨리스를 부탁해(리안 모리아티, 김소정 역. 마시멜로. 2014. 535쪽)
: 크림치즈에 관한 생각을 하며 깨어난 앨리스. 주위 사람들이 웅성대고 잘생긴 구급대원이 나타나자 당황한다. 운동 중에 머리를 부딪히며 쓰러졌다는 친구의 말에 임신 중이라며 걱정하지만 태명이 건포도인 그 아이는 이미 아홉살이고 앨리스는 아이가 두 명 더 있으며, 그렇게 기다리던 남편 닉과는 이혼 중이다. 10년의 기억을 잃어버린 앨리스.

역시 읽으면서 '나라면'이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10년 동안의 기억을 잃었다면, 글쎄. 지금의 나는 지난 10년을 잃었다해도 그닥 아쉬울 건 없었겠지만, 1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이 자리라는 것에는 좌절했을 것 같다. 앨리스는 나와는 달리 자신이 많은 것을 가진 것에 놀라지만 그녀가 멈추고 싶었던 10년 전은 그녀에게 가장 행복했던 날들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당연하게 해피엔딩으로 간다. 필력이 좋아서 재미있게 단숨에 읽었다. 이야기가 끝나가는 게 아쉬웠을 정도. 『허즈번드 시크릿』보다 더 좋았다.


14. 알로하(윤고은. 창비. 2014. 312쪽)
: 혼자인 사람들. 어떻게든 이 세상에 발 딛고 버텨보려 아등바등대는 사람들의 이야기. 때로는 어떤 형식으로든 원하는 걸 얻기도 하지만 (<프레디의 사생아>, <콜롬버스의 뼈>)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그들이 얻은 것보다 잃은 것들에 더 눈이 가고 안쓰러울 뿐이다. 가장 좋았던 건 표제작과 <콜롬버스의 뼈>.


15. 타인들 속에서(조 월튼, 김민혜 역. 아작. 2016. 446쪽)


16. 틈(서유미. 은행나무. 2015. 114쪽)
: 일상을 파고드는 틈. 평소와 다를 바 없던 평이한 오전, 우연히 길에서 남편의 차 조수석 여자와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는 남편을 본 후 무너진 바닥을 딛고 서보려는 여자의 이야기. 흔하다면 흔하달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각자의 삶 속 틈을 메워보려는 세 여자의 우정이 좋았다. 어쨌든, 그렇게 여자도 한 발짝 내디딜 수 있었으니.


by 달을향한사다리 | 2016/08/01 16:26 | Yujin's Book Story | 트랙백 | 덧글(10)
Commented by 하늘여우 at 2016/08/01 16:56
와우... 책 많이 읽으셨네요! 다 사서 읽으신건가요? 아니면 집 근처에 도서관이 있는 축복받으신 분?
Commented by 달을향한사다리 at 2016/08/03 11:37
7월에 읽은 책 중에 사서 읽은 건 4권이구요, 나머지는 도서관 책이에요. 집 바로 근처는 아니지만, 걸어서 40분 정도 가면 도서관이 있지요^^
Commented by 우람이 at 2016/08/01 18:29
와 저의 최애캐(!) 앤드류 포터가 드디어! 단편집 너무너무 사랑해요. 신기하게도 제임스 설터의 향이 살짝 느껴지고 번역도 좋아요. 지금 <어떤 날들> 읽는 중인데 너무 반가워요.. 이런 날도 있네요. 아이 좋아라 T.T
Commented by 달을향한사다리 at 2016/08/03 11:38
앤드류 포터 좋아하시는 군요^^ 단편집도 읽으셨겠네요ㅋㅋㅋ저도 이제 단편집 읽어보려구요. <어떤 날들>읽으시고 느낌 얘기해주세요~
Commented by 이요 at 2016/08/01 18:36
앤드류 포터가 장편을 냈군요! 읽어봐야겠당..
Commented by 달을향한사다리 at 2016/08/03 11:39
단편집 읽으셨어요? 저는 외국 작가는 단편보다 장편이 더 끌리더라구요ㅋㅋㅋ그래도 앤드류 포터는 읽어볼 생각이에요^^
Commented by 이요 at 2016/08/03 16:52
단편 좋습니다. 읽어보세요.
Commented by 달을향한사다리 at 2016/08/04 22:57
넹~ ^^
Commented by 취한배 at 2016/08/01 22:57
7번에서 읭@.@? 했어요.ㅋㅋㅋ '난 그냥 내가 살고 싶은 집을 고를 거다' 결론에서 또 ㅋㅋㅋ. 사다리 님 요즘 집(소음) 얘기 없으신데 무탈하신 것이기를요.
Commented by 달을향한사다리 at 2016/08/03 11:40
소음에 관해서 짧게 말씀드리자면, 일단 103호는 제압(?)했어요ㅋㅋㅋ 근데 여름이라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이 많긴 하네요ㅠ 소음에 관해서는 막 하소연하고 싶기도 하고 얘기조차 하기 싫기도 하고 그래요ㅠ 7번책을 읽은 건 역시나 집에 관한 고민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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