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여행자들』, 윤고은

밤의 여행자들 - 10점
윤고은 지음/민음사


이 책, 괜히 사서 읽었다. 그냥 도서관에서 빌려 읽을 걸. 읽을수록 반납해 버리고 싶었다. 재미 없어서가 아니다. 아주 흥미진진했고, 결말이 궁금했고 이 여자의 앞일이 걱정됐는데 그게 너무 괴로웠다. 다들 알면서도 외면하고 싶어하는 진실이 너무 적나라해서. 그걸 지금까지처럼 모른 척하고 살고 싶어서. 그래서 얼른 읽고 반납해 버린 다음에 다른 예쁜 이야기책을 빌려 읽음으로써 씻어버리고, 가끔 도서관 서가에서 이 책의 책등이 보이면 저기 악몽이 들어있어, 하며 지나쳐 버리고 싶었다.

재난 지역 전문 여행사에 근무하는 요나. 한때는 회사 내의 실력파 실세였지만 어느새 퇴물 취급을 받는다. 사직서를 던지는 그녀에게 팀장은 퇴출대상 여행상품 중 하나를 골라 여행을 다녀와 평가하라는 마지막 제안을 하고, 그녀는 사막의 싱크홀이 있는 ‘무이’로의 여행을 택한다.

무난했던 초반과는 달리 요나가 돌아오는 길에 낙오가 되면서부터 악몽은 시작된다. 여행객이 없는 민낯의 무이로 되돌아온 그녀에게 또 다른 제안이 오고, 수락 외에는 다른 선택지는 없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악몽은, Bad ending은 그녀의 낙오나 제안 수락 때문이 아니다. 사랑 때문이다. 그 놈의 사랑. 사랑은 모든 걸 바꾼다. 시각을, 사고를, 그리고 운명을. 세계를 전복시킨다. 그러게, 여행지에 가선 사랑에 빠지지 말았어야지, 라고 가볍게 말할 수 없다. 그러기에는 폴이 너무나 거대하고 정글은 너무나 냉정하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이 여행은 악몽이 되고 만다. 영원히 깰 수 없는 악몽.

난 재난을 싫어한다. 물론 재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재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꽤 있겠지. 재난 속에서 피어나는 기적, 사랑, 인류애 뭐 그런 것들을. 난 재난 이야기조차 싫어한다. 재난의 와중에 생겨나는 감동적인 일들은 그냥 무난한 생활 중에 안 일어나는 게 더 좋다. 이 책은 내가 싫어하는 이야기와 결말을 모두 갖고 있다. 만들어진 가짜와 그걸 쓸어버리는 진짜, 슬픈 엔딩 아니 나쁜 엔딩. 하지만 이 책은, 읽고 반납해 버리고 잊고 싶었던 이 책은 내 손안에서 내 책장에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야 무이를, 폴을, 잊지 않을 수 있다.

by 달을향한사다리 | 2016/03/30 16:31 | Yujin's Book Story | 트랙백 | 핑백(1)
Linked at 타인에게 말걸기 : 3월의 독.. at 2016/04/04 14:15

... 현장에서 자신의 육촌과 마주치는 장면은 정말이지 작가의 필력에 새삼 감탄하게 했다. 빅토리아 시대를 벗어난 이 작가의 다른 이야기들이 정말 기대된다. 5. 밤의 여행자들(윤고은. 민음사. 2013. 250쪽) 6. 메이블 이야기(헬렌 맥도널드, 공경희 역. 판미동. 2015. 455쪽) : 갑자기 아버지를 잃은 저자가 참매를 길들이며 슬픔을 이겨내는 과정을 ...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