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독서 목록

1. 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후안 룰포 외, 김현균 역. 창비. 2010. 299쪽)
: 스페인 + 라틴 단편 모음.기대보다 너무 재미없었다. 하지만 이사벨 아옌데와 루벤 다리오, 알레호 카르펜티에르만으로도 충분했다. 사실 후안 룰포 때문에 산 책인데, 후안 룰포는 그저 그랬다.


2. 고스트 차일드(소냐 하트넷, 김은경 역. 문학수첩. 2010. 223쪽)
: 강아지와 산책을 하고 돌아온 할머니 마틸다는 자기 집에 열 살 남짓한 남자애가 앉아 기다리고 있는 걸 발견한다. 마틸다는 소년이 묻는 대로 자신의 인생을 얘기해 주기 시작한다.

정말 좋았다. 집에서는 차가운 비즈니스맨일 뿐이지만 함께 여행할 땐 누구보다도 잘 통하고 다정했던 아빠. 여행이 끝나가면서 아빠가 다시 냉정한 아이언 맨으로 돌아갈 걸 예감하고 슬퍼하는 매디. 아이를 잃고 평생 죄책감을 갖고 아이를 기억하며 살아가게 될 것을 아는 매디. 페더를 보내줘야함을 아는 매디. 단 하나의 질문을 위해 페더를 찾아가는 매디. 이 아름답고 환상적인 이야기 속에는 한 여인이 평생동안 겪은 사랑과 아픔과 행복과 슬픔이 모두 들어있다. 길지 않지만 충분히 아름다웠고 마치 현실인양 아팠으며 꿈인듯 환상적이었다. 먼저 읽은 이 작가의 『한밤의 동물원』이 아파서 이 책도 집어들기 망설였는데, 이 책은 정말정말 좋았다.


3. 신의 궤도 1,2(배명훈. 문학동네. 2011. 327쪽, 326쪽)
: 인공위성을 몇 백개나 갖고 있는 '나'의 아버지. 엄마와 아버지는 정식 부부는 아니다. 아버지의 발길이 멀어지자 엄마는 자살하고, 나는 러시아로 가 비행술을 배우며 아버지는 적으로 생각하는 코스모마피아 바클라바와 친해지는데, 어느 날 아버지를 암살하려는 코스모마피아와 엮이게 된다.

기대가 컸던 탓인지 너무나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기술 발전이 어느 수준에서 멈춰버리고 푸른 숲이 가득한, 비행기가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는 행성과 너무나 멀리 있는 작디작은 신.작가의 세계관은 나쁘지 않았지만 그 외에는 글쎄. 작가가 나름 준비한 반전이랄까 하는 요소도 그닥 충격적이지도 않았고. 이 책을 끝까지 읽은 이유는 그저 설 연휴에 본가에 이 책 하나만 들고 갔기 때문이었다.


4. 더블 퍼지 브라우니 살인사건(조앤 플루크, 박영인 역. 해문. 2015. 383쪽)
: 아무리 이 시리즈에서 살인사건이 중요하지 않게 된 지 오래되었다지만 이렇게까지 홀대하는 건 좀 심하다. 전편에서 실수로 사람을 죽게 한 한나의 공판 기일, 판사실 옆에서 대기하던 한나는 판사실에서 나는 큰 소리에 들어가보았다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는 판사를 발견한다. 또다시 시체를 발견한 한나는 역시 수사에 들어간다. 근데 앞에서 얘기했듯 수사는 정말 곁다리일 뿐이다. 전권에서 엄청 예민하게 자신의 결혼식을 준비하던 한나의 엄마 로리 여사는 갑자기 라스베가스에서의 간단 결혼식에 동의하고, 이 결혼식에 신랑 들러리로 한나의 옛 친구 로스가 나타나 한나를 중심으로 한 3각 관계에 뛰어들어 4각을 만들어버린다. 게다가 한나는 이제껏 고민했던 시간들이 무색하게 노먼과 마이크를 뜨겁지 않은 상대로 치부해버린다. 마이크는 그렇다 쳐도 노먼은, 집까지 지은 노먼은 뭐가 되니. 암튼 다음 권 정도에서는 한나의 남자 관계도 좀 정리되고, 이 코딱지 만한 마을에 살인도 그만 좀 일어났음 좋겠다.


5. 혈통(파트릭 모디아노, 김윤직 역. 문학동네. 2008. 142쪽)
: 조용하고 차분히 얘기하는 작가의 아버지와 어머니. 부모 중 누구에게도 따뜻함을 느끼지 못했던 어린 시절을 마치 다른 누군가에 관한 얘기인양 담담히 서술한다. 화자의 담백하면서 건조하기까지 한 말투에 위로받다가도 문득문득 드러나는 어린 파트릭의 부모의 애정에 대한 갈망이 마음 아프다. 작가 자신은 '조서 혹은 이력서를 작성하득 이 페이지를 써나간다'(44쪽)고 했지만 열이 39도까지 오르는데도 파리 행 열차를 타고 부모님 곁에 조금이라도 더 머물고자 하거나 어머니의 관심과 애정을 위해 돈을 구하려고 애쓰거나 기숙사에 머물면서 통학생을 고통스럽게 바라보는 화자는, 안아주고 싶도록 안쓰럽다.

옮긴이는 모디아노의 글이 어렵다 했지만 내겐 명료했다, 물론 내 오만인지도 모르지만. 담담하고 담백한 말투로, 어른이 된 자신의 모습으로 어린 자신을 위로하려는 그를 알 것 같아 맘이 아렸다.


6. 젊은 도시, 오래된 성(이승우 외. 자음과모음. 2011. 487쪽)
: 한중일 3국의 유명 작가들이 공통 주제로 쓴 단편 모음. 평상시에 동북아 작가는 거의 안 읽는 내가 왜 이 책을 샀는지 의문이긴 하지만 기대가 없어서인지 의외로 재밌게 읽었다. 다만 이런 책들이 다 그렇듯 주제에 작품을 억지로 끼워맞춘 듯한 느낌. 역시 우리 작가들 작품이 좋았다. 그럼에도 가장 재미있었던 건 시마다 마사히코의 <사도 도쿄>. 그런 사후세계에서 그렇게 흘러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지만 도그지어는 시바사키 도모카의 <하르툼에 나는 없다>에 가장 많이 만들었다. 그리고 내 폰의 날씨 어플에도 하르툼과 하바롭스크를 추가했다. 추운 날 하르툼의 날씨와 기온을 들여다보면 맘에 조금은 건조하고 더운 바람이 부는 것 같다.


7.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A.M.홈즈, 이수현 역. 문학동네. 2009. 520쪽)
: 50대 리처드 노박. 베버리힐스의 대저택에서 자신을 돌봐주는 영양사와 개인 트레이너, 가정부를 두고 간간이 데이 트레이딩이나 하며 사는 그는 어느날 갑자기 알 수 없는 통증으로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다녀오고, 이후 그의 삶의 태도는 바뀐다.

리처드 노박은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비록 아내와 헤어지고 이제 10대가 된 아들과는 사이가 어색하지만 그 외에는 정말 나쁘지 않은 삶이다. 돈 걱정 없고, 의도했던 하지 않았던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고, 주위 사람들에게 적당히 베풀 수 있는 삶. 드라마틱한 사건 따위는 필요치 않다. 사실 소설이니만큼 노박이 일상에서 사건사고는 계속 일어나지만, 작가는 그저 소소한, 늘상 있을 수 있는 일처럼 경쾌하게 도로의 추격전을, 갑자기 생긴 집 앞의 거대한 구덩이를, 유명인과의 우정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현실적이면서도 흐뭇한 결론을.

제목이 거창하기에 사실 기대 없이 집어들었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비록 내 인생을 구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 책을 읽는 3일 동안을 행복하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8. 천사들의 도시(조해진. 민음사. 2008. 255쪽)
: 내가 사랑하는 작가 조해진의 단편집. 단편은 처음이었는데, 등장 인물들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게 되던 장편들과는 달리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문장들이 더 깊이 들어왔다. 다른 작가의 책에서 이런 문장들을 봤다면 이질감을 느꼈을 지 모르지만 이 작가에게서는 정말 좋았다. 사실 내용들은, 사회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킬 수 밖에 없는, 외롭고 가여운 사람들의 이야기라 많은 다른 한국 소설들과 소재에 있어 차별화되지는 못했지만 이 작가 특유의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시선, 그리고 섬세하게 인물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유려한 문장 덕에 이 작가에 대한 나의 애정은 더 깊어졌다. 가장 좋았던 건 <등 뒤에>.


9. 가장 잔인한 달(루이즈 페니, 신예용 역. 피니스아프리카예. 2014. 536쪽)
: 이 책에 이르러서야 루이즈 페니의 가마슈 경감 시리즈가 제대로 자리잡은 느낌이다. 평화로운 스리파인즈에 부활절이 찾아오고, 주민들은 아기자기한 행사를 준비하던 와중에 비스트로의 주인 올리비에의 제안에 따라 마침 그 마을에 머물던 영매와 교령회를 열기로 한다. 첫 번째 교령회는 별 일 없이 지나고, 과거 죽음의 그림자가 가득한 옛 해들리 저택의 정화를 위해 그 곳에서 다시 한 번 교령회를 열기로 한다.

전작보다 스토리가 많이 정리된 느낌이다. 아마 이제야 가마슈 경감을 위협하던 적의 실체가 드러나서인지도 모르겠다. 전작들 2권에 걸쳐 모호하게 존재감만을 어필하던 적들이 이번 이야기에서는 구체적인 행동을 개시한다. 여전히 맘에 안 드는 캐릭터도 있고 뒤통수를 치는 등장인물도 있으며 스리파인즈에는 과거 시리즈에 등장하지 않았던 인물이 등장해서 혼란스럽게도 했지만. 다만 이번에는 살인 사건의 해결은 가마슈 경감의 직감에 의존해서만 해결되는 바람에 범인을 추리하는 게 더 혼란스럽긴 했다. 그래도 이제야 이야기의 중심이 잡혔으므로, 남은 이야기는 꽤 재밌을 것 같다.


10. 재인, 재욱, 재훈(정세랑. 은행나무. 2014. 170쪽)
: 그닥 친할 것도 없는 삼남매가 함께 휴가를 다녀오다가 국도변 어느 바지락 칼국수집에 들어간다. 이상하게도 형광빛인 바지락을 먹은 후 첫째 재인은 대전의 연구소로, 재욱은 사막의 플랜트 건설 현장으로, 재훈은 미국의 염소 농장에 교환학생으로 떠났는데, 각자 있는 곳에서 어이없을 정도로 사소한 초능력이 생겼음을 발견한다.

재밌었다. 딱 이 정도의 소소한 이야기 참 좋아한다. 소소하게 자신의 삶을 살던 사람들이 딱 한 번의 영웅같은 행동을 하는 이야기. 투덜대지만 속정은 깊은 사람들이 안 그런 척 다정하게 구는 이야기. 이 작가의 책을 계속 찾아 읽고 싶어졌다.


11. 트래커(톰 브라운, 김훈 역. 랜덤하우스코리아. 2008. 423쪽)
: 유명한 야생 추격자인 저자의 어린 시절에 관한 에세이. 저자는 어린 시절, 자신과 같은 취미를 갖고 있는 릭이라는 소년과 친구가 되면서 릭의 할아버지인 원주민 아파치족 '뒤를 밟는 늑대'에게 야생 동물을 추적하고 야생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훈련받는다. 릭과 함께, 때로는 혼자서 여름이건 겨울이건 숲의 동물들의 흔적을 좇고 숲 한가운데서 캠핑을 하며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에 어우러져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되는 이야기가 꽤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재밌었다. 야생 동물들의 습성에 관한 이야기는 기대만큼 많지 않았지만 자연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저자의 마음이 행간에 깊이 배어나와 크게 공감됐다. 그리고 밀렵꾼들에게 한 복수(?)는 정말 이제껏 읽었던 어떤 소설들보다 시원했다.


12. 페러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랜섬 릭스, 이진 역. 폴라북스. 2011. 431쪽)
: 부잣집 아들인 열 여섯 살 제이콥은 어릴 때부터 친할아버지의 모험 이야기를 듣고 자란다. 할아버지는 2차 대전 때 폴란드에서 혼자서 도망쳐 영국의 한 섬의 고아원에서 자랐는데, 괴물과 싸우기 위해 미국으로 왔다고 했다. 커가면서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과장이고 거짓이라고 생각하게 된 제이콥은 어느 날 할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할아버지에게 갔다가 쓰러진 할아버지 곁에서 입에서 촉수가 나오는 괴물을 목격한다.

기대만큼 재밌지는 않았다.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여서인지 이야기가 아직 덜 무르익은 느낌. 그런데 두 번째 이야기를 굳이 찾아 읽고 싶지는 않다. 그럴 듯한 사진들도 처음 몇 장은 이야기와 잘 맞아떨어지지만 뒤로 갈수록 끼워 맞춘듯한 느낌. 어쨌든 기대만큼 환상적이지는 않았다.


13. 선셋 파크(폴 오스터, 송은주 역. 열린책들. 2013. 333쪽)
: 잘 쓴 소설이 읽고 싶어서 집어들었다. 뉴욕 외곽 선셋 파크의 버려진 집. 이 곳에 가난해서 살 곳이 없는 청춘 네 명이 무단으로 들어와 살게 된다. 의붓 형의 죽음에 죄책감을 가지고 부유한 집에서 도망 나온 마일스, 밴드를 하고 싶지만 생계를 유지해야만 하는 빙, 자신감 없고 우울한 엘런, 큰 덩치에 컴플렉스가 있는 앨리스.

버려진 집의 뒷정리를 하는 용역 업체에서 일하며 동료들과는 달리 남은 물건들의 사진을 찍던 마일스. 망가진 물건들을 수선하는 '병원'을 운영하는 빙. 젊지만 오래된 것들을 외면하지 않는 이들의 쓸쓸함이 맘 깊은 곳을 건드렸다. 결코 희망적이지만은 않은 결말도. 그래도 선셋 파크를 떠난 이들에게 언젠가는 더 나은 생활이 기다리고 있기를.

by 달을향한사다리 | 2016/03/01 22:41 | Yujin's Book Story | 트랙백 | 덧글(4)
Commented by 우람이 at 2016/03/01 23:20
조해진 작가를 찾아 읽어 보겠어요. 고맙습니다 :D
Commented by 달을향한사다리 at 2016/03/08 14:24
저한테 고마우실 것 까지야...^^;; 조해진 정말 좋아요~ㅋㅋㅋ
Commented by 취한배 at 2016/03/03 00:31
1번에서 일단멈춤했습니다. <뻬드로 빠라모>의 후안 룰포이군요! 내친김에 (<뻬드로 빠라모>에 제가 뭐라고 백자평을 남겼는지 보려다가) 사다리 님의 2008년 <뻬드로 빠라모> 리뷰까지 보게 되었네요. 아, 7년 전에도 사다리 님은 '우아'(덧글 중)하셨어;;ㅎㅎ
Commented by 달을향한사다리 at 2016/03/08 14:28
'우아'라니, 그 때도 진짜 부끄러웠는데! ㅋㅋㅋㅋㅋ아마 제 무의식 속에 우아해지고 싶은 욕망이 강한가봐요. 현실의 저는 수면 아래 백조 발 같은데 말이죠...

후안 룰포.. 왠지 단편들은 다 저 작품 같을 듯 해요... 단편집 읽는 거 계속 미뤄야겠어요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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