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년

벌써 1년이다. 집에서 독립한 지. 계약은 11일에 했고, 오늘이 이사한 지 1년째 되는 날.

솔직히 만감이 교차하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사실 만감이 교차했던 건 지난 가을이었다. 독립을 결심하게 된 게 작년 초가을이어서, 찬바람이 불고 가을 슬립온을 꺼내 신자 심란했었다. 이 스커트를 입은 채 조용한 카페 2층에 앉아서 심각하게 갖고 있는 돈과 예금 만기일을 계산했었지.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이 슬립온을 신고 찬바람 불기 시작하는 길거리를 헤맸었지. 부동산이 그렇게 많다는 것도 그 때 처음 알았다. 처음 부동산에 들어갈 땐 진짜 쭈뼛거렸는데. 집을 보러 다니면서도 진짜 내가 이걸 원하는 걸까, 진짜 내가 집에서 나가게되는 걸까,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걸까 머릿속이 복잡했는데.

계약을 한 후에는 오히려 시원했었고, 이사한 후에는 많이 울었다. 내가 집에서 독립하겠다고 했을 때 엄마가 맘 아파하셨던 게 새삼 가슴을 찔렀다. 낮 동안 엄마가 이것저것 갖다 놓으신 걸 봐도 눈물이 났고 엄마랑 통화한 후에도 눈물이 났다. 하지만 걸어서 겨우 30분 거리인 본가에 자주 가지는 않았다.

독립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어쩌면 당연하게도, 가족과의 갈등이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있으니 그 전에도 혼자 살고 싶다, 이제는 나와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 계속 했었지만 소심해서 그리고 부모님께 얹혀 있는 게 경제적으로 이득이라는 걸 너무 잘 알아서 그냥저냥 견디고 있었는데, 아주아주 오래 묵었던, 그리고 내가 가장 못 참는 한 가지가 건드려졌고, 내 지랄 같은 성질이 폭발했고, 그래서 난 조금도 참으려 하지 않고 내 밑바닥을 드러냈다.

통장을 체크했고, 한 달여 동안 집을 보러 다녔고, 우여곡절 끝에 이사를 했다. 이사 후에 아침저녁으로 눈물바람을 하면서도 본가에 자주 가지 않았던 건 내가 속으로는 여전히 화가 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족들에게도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가족들에게서 떨어져서 혼자 있는 게 오만하게도 내가 나 자신에게 그리고 가족들에게 행하는 벌이었다. 요즘도 집에 밥이 없거나 내가 만든 음식이 먹기 싫을 때 한 번쯤은 갈 만도 한데 날 못 가게 막는 건 바로 그 생각이다. 1년이나 지났는데도 난 여전히 내 안의 아이에게 휘둘리고 있나보다.

어쨌든 가족과의 관계는 좋아졌다. 가끔은 본가에 갔을 때 엄마가 날 손님 취급하는 것 같아서 서운하기도 하고, 1년 전의 그 문제는 여전히 밑바닥에 무겁게 가라앉아 있지만. 그리고 난 혼자 사는 게 좋다. 비록 집이 맘에 안 들고, 그래서 1년 후를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긴 하지만, 그리고 내가 만든 음식에 슬슬 질려가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부디 앞으로도 이만큼만 잘 꾸려나갈 수 있기를. 부디 1년 후에는 전세가가 안정이 되서 합리적인 돈으로 집을 얻을 수 있기를. 부디 새로 이사갈 집은 벽이 두껍기를. 부디 새로 이사갈 집의 이웃들은 개념이 충만하기를. 부디 앞으로의 모든 것이 무난하기를...

by 달을향한사다리 | 2015/12/14 17:20 | 힘내서 살아가기 | 트랙백 | 덧글(8)
Commented by 당고 at 2015/12/14 22:57
옹-
독립 1년 축하드립니다!
아마도 전세는 안정이 되지 않고 월세로 다 바뀔 듯하지만 ㅋㅋ큐ㅠㅠㅠㅠㅠㅠㅠ
앞으로도 모든 것이 무난하기를 기원합니다- :)
Commented by 달을향한사다리 at 2015/12/16 16:09
축하 감사합니다^^ 맞아요,전세 안정은 커녕 전세 자체가 없겠지만... 알면서도 걸어보는 한낱 실날같은 희망이죠...ㅠ 정말 무난했음 좋겠어요^^
Commented by better at 2015/12/15 07:11
달사다리님 블로그 가끔 들어와서 보는데 처음으로 글 남기네요.
모르는 사람이지만 ^^;;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Commented by 달을향한사다리 at 2015/12/16 16:15
진심어린 응원 감사합니다^^ 가끔 들어와 주신다니 그것도 감사^^ 저두 better 님 블로그 종종 들린답니당~
Commented by 알토란 귤 at 2015/12/15 13:45
"난 여전히 내 안의 아이에게 휘둘리고 있나보다" 젊은 나이에 이걸 인식 하고 있는 것만 해도 대단하네요. 본인의 단점까지 솔직하게 들여다 보고 있다면 , 분명 좋게 좋게 변하실거예요. 진심으로 새집은 벽이 엄청 두껍길, 이웃들도 무난한 사람들을 만나길 저도 바랍니다. ^^
Commented by 달을향한사다리 at 2015/12/16 16:15
근데 제가 젊지는 않다는 게 함정...이랄까요ㅎㅎㅎ 정말 좋게좋게 변했음 좋겠어요^^ 1년 후엔 정말 맘에 드는 새 집이 나타났음 좋겠구요ㅋㅋㅋ진심어린 기도 감사합니당~
Commented at 2015/12/26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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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15/12/30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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