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푸른 이구아나를 찾습니다(조영아. 한겨례출판. 2008. 320쪽)
: 기러기 아빠인 화자는 대기업 간부직에서 짤리고, 더이상은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생활이 망가진다. 아내는 나를 걱정해서 전화를 하는지 혹은 맡기고 간 이구아나를 걱정하는 건지 모르겠다. 미루고 미루던 치과치료를 받던 도중 건너편 공사장에서 인부가 추락하는 장면을 보고 문득 '아빠'를 팔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꽤 재미있었다. 소재도 근래에 읽었던 한국 소설들과 겹치지 않아서 좋았고, 글을 풀어가는 솜씨도 나쁘지 않았다. 푸른 이구아나와의 관계라든가 아빠를 사는 사람들의 사연 등은 전형적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읽을 때는 전형적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 작가의 다음 작품도 읽어볼 생각이다.
2. 끌림(세라 워터스, 최용준 역. 열린책들. 2012. 512쪽)
: 이 작가의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중 하나라도 이미 읽었다면 짐작 가능한 줄거리이다. 난 『핑거스미스』를 읽었기에 마거릿이 아버지의 죽음 이후 정신과 진료를 받은 적이 있다는 것과 그녀가 교도소를 방문하여 셀리나를 만나는 게 보여진 후 줄거리를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이 책은 『핑거스미스』보다 더 단순하다. 그래도 작가의 글 솜씨 덕분에 재밌게 읽었다. 흡입력도 여전하다. 『벨벳 애무하기』도 좀 쉬었다가 꼭 읽어볼 생각이다.
3. 우울한 코브 마을의 모두 괜찮은 결말(크리스토퍼 무어, 공보경 역. 푸른숲. 2010. 427쪽)
: 이런 내용일 줄은 정말 몰랐다. 역시 책을 선택할 땐 최소한의 정보만으로 느낌에 의존해서 선택하는 게 최고인 것 같다. 관광에 의존해서 사는 작디작은 코브 마을에 어느 날 자살 사건이 일어나고, 자살한 주부 베스의 주치의였던 정신과 의사 밸러리는 생각없이 남용했던 항우울제가 그녀의 자살을 불러왔을 거라는 죄책감에 자신의 환자들에게 처방하던 항우울제를 모두 위약으로 대체한다. 그런데 하필 베스가 자살한 밤 코브 마을 근처의 원자력 발전소에서는 방사능이 유출되고, 그 덕에 바다 밑바닥의 그 녀석도 깨어나는데...
정말 모두가 괜찮지는 않다. 그치만 이 정도의 해피 엔딩이면 난 만족하지. 멀쩡한 인물 하나 없는 코브 마을이지만 그 모두가 시너지 효과를 내서 꽤 괜찮은 결말을 만들어내는 이런 이야기가 난 진짜 좋다.
4.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박완서 외. 현대문학. 2010. 286쪽)
: 각 작가들의 자전적 단편들. 대부분의 작품들을 다른 데서 한 번씩 읽어보았기에 속도감있게 쭉쭉 읽어나갔다. 좋았던 작품은 이동하의 <감나무가 있는 풍경>과 김인숙 <해삼의 맛>.
5. 가면 뒤에서(루이자 메이 올콧, 서정은 역. 문학동네. 2013. 384쪽)
: 『작은 아씨들』은 재밌었지만 다들 너무 착했다. 그런데 이 책 속의 여자들은 착하기만 하지 않다.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분명히 표현한다.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향해 손을 뻗어 자신의 힘으로 움켜쥐고(「가면 뒤에서, 또는 여자의 능력」),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한다(「수수께끼」). 그래서 작은 아씨들보다 훨씬 맘에 들었다. 그녀들보다 사랑스럽지 않을 지라도. 다만 「어둠 속의 속삭임」의 주인공은 그 구원이 너무 수동적이었고, 「위험한 놀이」의 주인공은 공감이 안 되어서 별로. 「수수께끼」의 주인공이 가장 맘에 들었다. 그녀가 화자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정말이지 내가 이제까지 읽은 여주인공들의 말 중에 가장 멋졌지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내 맘 속에만 간직하는 걸로.
6. 쾅! 지구에서 7만 광년(마크 해던, 김지현 역. 비채. 2010. 328쪽)
: 유쾌하고 귀여운 이야기. 말썽꾸러기 짐보는 절친 찰리와 함께 무선으로 교무실을 도청하다 선생님들의 외계어 대화를 엿듣게 된다. 워커홀릭 엄마와 무기력한 전업주부 아빠, 헤비메탈 광팬이면서 루저와 사귀는 누나 사이에서 집이 지루하기만 했던 짐보는 선생님들을 본격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한다.
가볍지만 마냥 깊이가 없지는 않다. 그래도 편하게 읽힌다. 진짜 재미있었다. 머리 식히고 싶을 때 종종 다시 빌려볼 생각이다.
7. 제국의 뒷길을 걷다(김인숙. 문학동네. 2009. 278쪽)
: 김인숙이 북경을 거닐며 곳곳에 얽혀있는 명,청 황제들의 이야기를 해준다. 연대기적이지도 않고 장소도 맥락 없다. 하지만 작가의 차분한 말투가 이야기에 집중하게 한다. 그냥 소소한 이야기를 편하게 읽었다.
8. 실버라이닝 플레이북(매튜 퀵, 정윤희, 유향란 역. 지식의숲. 2013. 405쪽)
: 영화는 별로라는 얘길 들은 적이 있는데 책은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대출했다. 진짜 괜찮았다. 정신병동에 있다가 부모님 집으로 퇴원한 팻.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잊었지만 아내가 자신이 좋은 사람이 아니어서 떠났다는 건 알고 있다. 아내를 돌아오게 하기 위해 중독될 정도로 운동을 열심히 하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늘 노력한다. 역시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는 티파니를 소개받았는데 그녀는 좀 이상하다.
전체적인 전개는 정말 좋았고 팻의 분노조차 이해되었지만 결말은 좀... 해피엔딩이긴 한데, 팻이 니키의 현재를 인정하는 부분이 공감이 영 안 되었고(니키 이 x년), 티파니와의 이야기도 급히 해피한 방향으로 튼 느낌. 그래도 미식축구 이야기와 팻의 치유는 정말 좋았다.
9. 천국보다 낯선(이장욱. 민음사. 2013. 276쪽)
10. 포트노이의 불평(필립 로스, 정영목 역. 문학동네. 2014. 408쪽)
: 필립 로스를 이 책으로 시작한 건 좀 무리가 아니었나 싶다. 책이 재미가 없지는 않았지만 지루한 면도 역시나 없지 않았다. 뒷표지에 이 책을 읽고 웃지 않으면 유머 감각이 없는 거라고 쓰여 있던데, 난 나도 모르게 유머 감각을 잃었나봐.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위치에 오른 30대 중반 유대인 변호사가 털어놓는 불행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 화자는 유대인의 선민사상에 젖어 이방인과 섞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부모님, 특히 강박적일 정도로 아들을 체크해대는 엄마 덕분에 성도착증세까지 보이게 된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적나라한 자위 행위 묘사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고 하는데 글쎄... 사춘기 소년이라면 저런 생각 쯤은 다들 하지 않을까. 물론 포트노이처럼 저렇게 지속적으로, 항상은 아니겠지. 어쨌든 크게 나쁘지는 않았지만 필립 로스의 다른 작품들도 이런 식이라면 그의 작품을 집어드는데 조금 주춤할 듯. 묘사가 아니라 서사 때문에.
11. 가족의 영광(다비드 사피어, 이미옥 역. 예담. 2014. 420쪽)
: 각자 자기 입장만 내세우는 빈쉬만 가족. 커리어를 포기하고 장사 안 되는 서점을 운영하는 엄마 엠마는 어느 날 예전 직장 동료의 파티 초대를 받아 온 가족을 동원해서 가는데, 가장 무도회라는 말과는 달리 몬스터 분장을 한 건 그들 가족 뿐이다. 돌아오는 길에도 역시 다툼이 끊이지 않는 그들 가족 앞에 수상한 할머니가 나타나고, 빈쉬만 가족은 입고 있던 의상 그대로의 몬스터로 변한다.
꽤 재미있었다. 스토리는 조금 허술했지만, 깊은 생각 안 하고 가볍게 읽을 만 했다. 역시 키워드는 사랑. 진짜 맘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이 없으면 각자는 다 몬스터일뿐.
12. 유령의 속삭임(보리스 시륄릭, 권기돈 역. 새물결. 2008. 291쪽)
: 이제까지 읽은 심리학 책 중 한 권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포기해야 한다면 난 주저없이 이 책을 고를 것이다. 나 자신에게 가장 도움이 된 책이다. 읽으면서 내내 나의 경험에 비추어 해석할 수 있었고 적용해 볼 수 있었다. 물론 내가 이 책의 예시들처럼 극단적인 경험을 한 건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상처는 있는 거니까.
저자는 트라우마에서의 회복을 위해 사회적 배경과 문화에 집중한다. 상대적으로 상처받은 각 개인의 성향 혹은 노력에 대한 강조는 덜 드러나지만 난 개인의 성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꽤나 괜찮다.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발췌독 할 예정이다.
13. 좌절하지 않고 타임머신을 만드는 방법(아닐리르 세르칸, 유인경 역. 윌북. 2009. 175쪽)
: 저자의 자전적인 이야기. 스위스의 과학 영재 기숙 학교에서 사고를 치고 쫓겨난 13명의 소년들이 한 집에 모여 타임머신을 만들며 우정을 다지는 이야기이다. 길지 않은 이야기였고 재미있었다. 길게 길게 얘기해 줬더라면 더 좋았을 걸. 중간에 생뚱맞게 튀어나왔던 그리스 할머니 이야기 같은 거, 그렇게 엉뚱하게 집어넣지 말고 13명의 사연들과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더 해줬더라면 더 재미있었을 텐데. 물론 이 정도도 꽤 괜찮긴 했다.
14. 이브의 정원(K.L. 고잉, 정희성 역. 비룡소. 2012. 344쪽)
: 엄마를 잃은 열 한 살 이브. 살던 곳을 떠나 아버지와 함께 황량한 뉴욕 주 사과 농장으로 온다. 이사 오던 날 집 옆의 공동묘지에서는 장례가 진행중이고, 이브는 창백한 얼굴의 검은 코트 소년을 보게 되는데 그 아이는 자신이 유령이고 이브에게만 보인다고 말한다.
아름답고도 쓸쓸한 소설이었다. 알렉스의 비밀은 아주아주 나중에야 알아차렸고, 사실 이브도 안쓰러웠지만 알렉스가 더 맘을 아프게 했다. 청소년 소설다운 해피엔딩.
15. 행운흥신소 사건일지(박치형. 푸른여름. 2012. 208쪽)
: 불륜 증거 잡기가 주 수입원인 행운흥신소장은 어느 날 실종된 남편을 찾아달라는 전화를 받고 고객을 찾아가는데,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녀가 안쓰러워 내키지 않음에도 덜컥 사건을 맡고 만다.
근래 읽었던 한국 소설들 중 꽤 참신한 소재여서 맘에 들었다. 문장에 군더더기가 좀 있긴 했지만 스토리도 나쁘지 않았다. 이 시리즈가 계속 나와도 좋을 것 같다.
16. 모든 행복한 가족들(카를로스 푸엔테스, 김경주, 김정하 역. 뿔. 2010. 437쪽)
: 생각보다 더디게 읽혔던 연작 소설. 모든 불행한 가족들 이야기이다. 해체 직전의, 불안하고 가식적인 가족들.
돌아보면 내용들은 다 맘에 들었는데 왜 이렇게 가독성이 떨어졌는지 생각해보니 번역과 교정 때문이었다. 머릿속에서 고치다 고치다 포기해버린 문장들이 수두룩하다. 문장은 기본적으로 주어+술어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걸 독자인 내가 얘기해줘야 하나? 나의 푸엔테스를 이렇게 출판하다니... 그래도 나중에, 아주아주 나중에 좋았던 작품들만 발췌독 해 보고 싶다. 「매력 없는 사촌」이나 「마리아치의 어머니」, 「영원한 아버지」 등.
: 기러기 아빠인 화자는 대기업 간부직에서 짤리고, 더이상은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생활이 망가진다. 아내는 나를 걱정해서 전화를 하는지 혹은 맡기고 간 이구아나를 걱정하는 건지 모르겠다. 미루고 미루던 치과치료를 받던 도중 건너편 공사장에서 인부가 추락하는 장면을 보고 문득 '아빠'를 팔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꽤 재미있었다. 소재도 근래에 읽었던 한국 소설들과 겹치지 않아서 좋았고, 글을 풀어가는 솜씨도 나쁘지 않았다. 푸른 이구아나와의 관계라든가 아빠를 사는 사람들의 사연 등은 전형적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읽을 때는 전형적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 작가의 다음 작품도 읽어볼 생각이다.
2. 끌림(세라 워터스, 최용준 역. 열린책들. 2012. 512쪽)
: 이 작가의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중 하나라도 이미 읽었다면 짐작 가능한 줄거리이다. 난 『핑거스미스』를 읽었기에 마거릿이 아버지의 죽음 이후 정신과 진료를 받은 적이 있다는 것과 그녀가 교도소를 방문하여 셀리나를 만나는 게 보여진 후 줄거리를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이 책은 『핑거스미스』보다 더 단순하다. 그래도 작가의 글 솜씨 덕분에 재밌게 읽었다. 흡입력도 여전하다. 『벨벳 애무하기』도 좀 쉬었다가 꼭 읽어볼 생각이다.
3. 우울한 코브 마을의 모두 괜찮은 결말(크리스토퍼 무어, 공보경 역. 푸른숲. 2010. 427쪽)
: 이런 내용일 줄은 정말 몰랐다. 역시 책을 선택할 땐 최소한의 정보만으로 느낌에 의존해서 선택하는 게 최고인 것 같다. 관광에 의존해서 사는 작디작은 코브 마을에 어느 날 자살 사건이 일어나고, 자살한 주부 베스의 주치의였던 정신과 의사 밸러리는 생각없이 남용했던 항우울제가 그녀의 자살을 불러왔을 거라는 죄책감에 자신의 환자들에게 처방하던 항우울제를 모두 위약으로 대체한다. 그런데 하필 베스가 자살한 밤 코브 마을 근처의 원자력 발전소에서는 방사능이 유출되고, 그 덕에 바다 밑바닥의 그 녀석도 깨어나는데...
정말 모두가 괜찮지는 않다. 그치만 이 정도의 해피 엔딩이면 난 만족하지. 멀쩡한 인물 하나 없는 코브 마을이지만 그 모두가 시너지 효과를 내서 꽤 괜찮은 결말을 만들어내는 이런 이야기가 난 진짜 좋다.
4.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박완서 외. 현대문학. 2010. 286쪽)
: 각 작가들의 자전적 단편들. 대부분의 작품들을 다른 데서 한 번씩 읽어보았기에 속도감있게 쭉쭉 읽어나갔다. 좋았던 작품은 이동하의 <감나무가 있는 풍경>과 김인숙 <해삼의 맛>.
5. 가면 뒤에서(루이자 메이 올콧, 서정은 역. 문학동네. 2013. 384쪽)
: 『작은 아씨들』은 재밌었지만 다들 너무 착했다. 그런데 이 책 속의 여자들은 착하기만 하지 않다.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분명히 표현한다.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향해 손을 뻗어 자신의 힘으로 움켜쥐고(「가면 뒤에서, 또는 여자의 능력」),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한다(「수수께끼」). 그래서 작은 아씨들보다 훨씬 맘에 들었다. 그녀들보다 사랑스럽지 않을 지라도. 다만 「어둠 속의 속삭임」의 주인공은 그 구원이 너무 수동적이었고, 「위험한 놀이」의 주인공은 공감이 안 되어서 별로. 「수수께끼」의 주인공이 가장 맘에 들었다. 그녀가 화자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정말이지 내가 이제까지 읽은 여주인공들의 말 중에 가장 멋졌지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내 맘 속에만 간직하는 걸로.
6. 쾅! 지구에서 7만 광년(마크 해던, 김지현 역. 비채. 2010. 328쪽)
: 유쾌하고 귀여운 이야기. 말썽꾸러기 짐보는 절친 찰리와 함께 무선으로 교무실을 도청하다 선생님들의 외계어 대화를 엿듣게 된다. 워커홀릭 엄마와 무기력한 전업주부 아빠, 헤비메탈 광팬이면서 루저와 사귀는 누나 사이에서 집이 지루하기만 했던 짐보는 선생님들을 본격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한다.
가볍지만 마냥 깊이가 없지는 않다. 그래도 편하게 읽힌다. 진짜 재미있었다. 머리 식히고 싶을 때 종종 다시 빌려볼 생각이다.
7. 제국의 뒷길을 걷다(김인숙. 문학동네. 2009. 278쪽)
: 김인숙이 북경을 거닐며 곳곳에 얽혀있는 명,청 황제들의 이야기를 해준다. 연대기적이지도 않고 장소도 맥락 없다. 하지만 작가의 차분한 말투가 이야기에 집중하게 한다. 그냥 소소한 이야기를 편하게 읽었다.
8. 실버라이닝 플레이북(매튜 퀵, 정윤희, 유향란 역. 지식의숲. 2013. 405쪽)
: 영화는 별로라는 얘길 들은 적이 있는데 책은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대출했다. 진짜 괜찮았다. 정신병동에 있다가 부모님 집으로 퇴원한 팻.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잊었지만 아내가 자신이 좋은 사람이 아니어서 떠났다는 건 알고 있다. 아내를 돌아오게 하기 위해 중독될 정도로 운동을 열심히 하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늘 노력한다. 역시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는 티파니를 소개받았는데 그녀는 좀 이상하다.
전체적인 전개는 정말 좋았고 팻의 분노조차 이해되었지만 결말은 좀... 해피엔딩이긴 한데, 팻이 니키의 현재를 인정하는 부분이 공감이 영 안 되었고(니키 이 x년), 티파니와의 이야기도 급히 해피한 방향으로 튼 느낌. 그래도 미식축구 이야기와 팻의 치유는 정말 좋았다.
9. 천국보다 낯선(이장욱. 민음사. 2013. 276쪽)
10. 포트노이의 불평(필립 로스, 정영목 역. 문학동네. 2014. 408쪽)
: 필립 로스를 이 책으로 시작한 건 좀 무리가 아니었나 싶다. 책이 재미가 없지는 않았지만 지루한 면도 역시나 없지 않았다. 뒷표지에 이 책을 읽고 웃지 않으면 유머 감각이 없는 거라고 쓰여 있던데, 난 나도 모르게 유머 감각을 잃었나봐.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위치에 오른 30대 중반 유대인 변호사가 털어놓는 불행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 화자는 유대인의 선민사상에 젖어 이방인과 섞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부모님, 특히 강박적일 정도로 아들을 체크해대는 엄마 덕분에 성도착증세까지 보이게 된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적나라한 자위 행위 묘사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고 하는데 글쎄... 사춘기 소년이라면 저런 생각 쯤은 다들 하지 않을까. 물론 포트노이처럼 저렇게 지속적으로, 항상은 아니겠지. 어쨌든 크게 나쁘지는 않았지만 필립 로스의 다른 작품들도 이런 식이라면 그의 작품을 집어드는데 조금 주춤할 듯. 묘사가 아니라 서사 때문에.
11. 가족의 영광(다비드 사피어, 이미옥 역. 예담. 2014. 420쪽)
: 각자 자기 입장만 내세우는 빈쉬만 가족. 커리어를 포기하고 장사 안 되는 서점을 운영하는 엄마 엠마는 어느 날 예전 직장 동료의 파티 초대를 받아 온 가족을 동원해서 가는데, 가장 무도회라는 말과는 달리 몬스터 분장을 한 건 그들 가족 뿐이다. 돌아오는 길에도 역시 다툼이 끊이지 않는 그들 가족 앞에 수상한 할머니가 나타나고, 빈쉬만 가족은 입고 있던 의상 그대로의 몬스터로 변한다.
꽤 재미있었다. 스토리는 조금 허술했지만, 깊은 생각 안 하고 가볍게 읽을 만 했다. 역시 키워드는 사랑. 진짜 맘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이 없으면 각자는 다 몬스터일뿐.
12. 유령의 속삭임(보리스 시륄릭, 권기돈 역. 새물결. 2008. 291쪽)
: 이제까지 읽은 심리학 책 중 한 권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포기해야 한다면 난 주저없이 이 책을 고를 것이다. 나 자신에게 가장 도움이 된 책이다. 읽으면서 내내 나의 경험에 비추어 해석할 수 있었고 적용해 볼 수 있었다. 물론 내가 이 책의 예시들처럼 극단적인 경험을 한 건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상처는 있는 거니까.
저자는 트라우마에서의 회복을 위해 사회적 배경과 문화에 집중한다. 상대적으로 상처받은 각 개인의 성향 혹은 노력에 대한 강조는 덜 드러나지만 난 개인의 성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꽤나 괜찮다.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발췌독 할 예정이다.
13. 좌절하지 않고 타임머신을 만드는 방법(아닐리르 세르칸, 유인경 역. 윌북. 2009. 175쪽)
: 저자의 자전적인 이야기. 스위스의 과학 영재 기숙 학교에서 사고를 치고 쫓겨난 13명의 소년들이 한 집에 모여 타임머신을 만들며 우정을 다지는 이야기이다. 길지 않은 이야기였고 재미있었다. 길게 길게 얘기해 줬더라면 더 좋았을 걸. 중간에 생뚱맞게 튀어나왔던 그리스 할머니 이야기 같은 거, 그렇게 엉뚱하게 집어넣지 말고 13명의 사연들과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더 해줬더라면 더 재미있었을 텐데. 물론 이 정도도 꽤 괜찮긴 했다.
14. 이브의 정원(K.L. 고잉, 정희성 역. 비룡소. 2012. 344쪽)
: 엄마를 잃은 열 한 살 이브. 살던 곳을 떠나 아버지와 함께 황량한 뉴욕 주 사과 농장으로 온다. 이사 오던 날 집 옆의 공동묘지에서는 장례가 진행중이고, 이브는 창백한 얼굴의 검은 코트 소년을 보게 되는데 그 아이는 자신이 유령이고 이브에게만 보인다고 말한다.
아름답고도 쓸쓸한 소설이었다. 알렉스의 비밀은 아주아주 나중에야 알아차렸고, 사실 이브도 안쓰러웠지만 알렉스가 더 맘을 아프게 했다. 청소년 소설다운 해피엔딩.
15. 행운흥신소 사건일지(박치형. 푸른여름. 2012. 208쪽)
: 불륜 증거 잡기가 주 수입원인 행운흥신소장은 어느 날 실종된 남편을 찾아달라는 전화를 받고 고객을 찾아가는데,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녀가 안쓰러워 내키지 않음에도 덜컥 사건을 맡고 만다.
근래 읽었던 한국 소설들 중 꽤 참신한 소재여서 맘에 들었다. 문장에 군더더기가 좀 있긴 했지만 스토리도 나쁘지 않았다. 이 시리즈가 계속 나와도 좋을 것 같다.
16. 모든 행복한 가족들(카를로스 푸엔테스, 김경주, 김정하 역. 뿔. 2010. 437쪽)
: 생각보다 더디게 읽혔던 연작 소설. 모든 불행한 가족들 이야기이다. 해체 직전의, 불안하고 가식적인 가족들.
돌아보면 내용들은 다 맘에 들었는데 왜 이렇게 가독성이 떨어졌는지 생각해보니 번역과 교정 때문이었다. 머릿속에서 고치다 고치다 포기해버린 문장들이 수두룩하다. 문장은 기본적으로 주어+술어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걸 독자인 내가 얘기해줘야 하나? 나의 푸엔테스를 이렇게 출판하다니... 그래도 나중에, 아주아주 나중에 좋았던 작품들만 발췌독 해 보고 싶다. 「매력 없는 사촌」이나 「마리아치의 어머니」, 「영원한 아버지」 등.
덧글
읽고 싶은 책들이 덕분에 잔뜩 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