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독서 목록

1. 나의 삼촌 오스왈드(로얼드 달, 정영목 역. 강. 2009. 318쪽)
: 난봉꾼 오스왈드의 모험이랄까. 어린 나이일 때부터 장사 수완이 있던 오스왈드는 수단의 최음제 흙가뢰에 대해 알게 되자 이를 팔아서 막대한 돈을 벌고, 다시 이걸 이용해서 전세계 천재들의 정액을 수집해서 팔 계획을 세운다.

저자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가 맘에 들었다. 특히 각 분야의 천재들을 '농담거리'와 그렇지 않은 부류로 분류한 게 웃겼다. 대부분의 분류가 수긍이 가는 만큼.


2.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임영태. 뿔. 2012. 303쪽)
: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대필 작가의 일상. 큰 목소리도, 또렷하고 강한 어조도 아닌 그저 조곤조곤하게 이야기하는, 주인공의 주거 공간이자 작업실인 반지하 사무실에 잠시 비쳐드는 희미한 햇살 만큼 조용한 목소리의 이 이야기의 울림이 너무나 커서 난 이 책을 읽고 난 후 한동안은 아무 것도 읽고 싶지 않았다. 동네를 도는 주인공의 발걸음 뒤를 살며시 좇고 싶은, 막걸리를 마시는 주인공의 낡은 쇼파 옆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소설.

한참 전에 읽었던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은 전혀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난 앞으로 이 작가를 더 안 읽을 것이다. 이 책 한 권이면 족하다.


3. 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비프케 로렌츠, 서유리 역. 레드박스. 2012. 395쪽)
: 누구나 지워버리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딱 그 일만 없었더라면. 지금 이대로도 나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때 내가 그 일만 안했더라면 더 좋을 텐데. 바에서 일하는 29살 아가씨 찰리. 부모님께 말씀도 못 드린 대학 중퇴나 엉망인 생활, 술 마시고 저지르는 원나잇 스탠드 등 지금도 엉망이지만 아기 때부터 절친이었던 줄리의 남친과 잔 일이나 첫 경험을 반 전체 아이들에게 목격당한 일은 진짜 후회스럽다. 동창회에서 망신 당하고 우연히 찾아간 헤드헌텡 회사에서 과거를 지워준다는 제안을 받는데...

꽤 재미있었다. 불면의 밤에 읽기에 딱 적합한 정도의 재미와 가벼움을 지닌 소설. 지금 현재가 가장 중요하다는, 어제보다는 오늘에 집중해야 하고 지금 내 곁의 사람이 소중하다는 뻔한 이야기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가 꽤 재치있었다.


4. 서두르지 말고, 인생을 안단테(호어스트 에버스, 김수연 역. 에이미팩토리. 2012. 325쪽)
: 내가 좋아하는 호어스트 에버스의 컴백이다. 특유의 여유로움과 유머. 한 박자 쉬어갈 수 있는 시간을 내게 주었다. 딱 내가 기대했던 만큼.


5. 우아한 연인(에이모 토울스, 김승욱 역. 은행나무. 2013. 501쪽)


6. 치유(캐럴 길리건, 김이선 역. 마음산책. 2009. 379쪽)
: 고국의 정치상황으로 인해 각각 아내와 남편을 잃은 안드레아스와 키라. 굳은 마음을 겨우 열고 서로에게 빠져들지만 갑자기 안드레아스는 떠나버리고, 키라는 상처를 감당할 수 없게 된다.

뒷표지의 '사랑에 관한 매우 지적인 소설이자 영리한 이론서'라는 말은 일면 맞고 일면 틀리다. 사랑하는 관계 내에서의 일종의 권력 관계 - 떠날 수 있는 쪽이 더 강자라는 - 와 사랑의 기본 속성 - 변할 수 밖에 없는 - 을 안드레아스와 키라, 키라와 심리치료사 그레타의 관계를 통해 탐구했지만 매우 산만하고 굵은 줄기를 잡기가 쉽지 않다. 내가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잘 쓴 소설이라고 할 수도 없다. 문체는 나쁘지 않았고 초반 키라의 심리 묘사는 아름다웠지만 읽어나갈수록 그녀의 감정선도, 행동 양식도 공감은 커녕 따라가기도 쉽지 않았다.


7. 잃어버린 것들의 책(존 코널리, 이진 역. 폴라북스. 2008. 606쪽)
: 진짜 진짜 재미있었던 판타지 성장 소설. 2차 대전 발발 직전 런던. 데이빗은 엄마를 병으로 잃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새 엄마와 이복 동생을 받아들여야 하게 된다. 전쟁의 위협 때문에 런던 외곽 새엄마 소유의 낡은 저택으로 이사한 데이빗네 가족. 데이빗에게는 책들이 소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꼬부라진 남자가 데이빗의 방을 몰래 다녀간다. 독일 폭격기가 마을을 강타한 밤, 데이빗은 정원 구석의 나무 구멍을 통해 다른 세계로 들어가게 되고, 그 곳에서 사람처럼 되고 싶어하는 늑대들에게 쫓기게 된다.

데이빗이 넘어간 세계는 늙은 왕의 약해진 지배력 때문에 엉망이고 이는 전쟁으로 부서진 현실 세계만큼이나 사람들을 피폐하게 한다. 여기에 왠지 데이빗에게 낯설지 않은 괴물들의 공격, 전에 읽었던 동화책 내용과는 다른 백설공주와 잠자는 숲 속의 공주는 동화속 세계도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걸 얘기해준다. 하지만 아무리 망가진 세계에서도 지켜야 할 건 존재한다. 그건 가족이기도 하고, 내 집과 내 마을이기도 하고, 연인과의 약속이기도 하다. 눈 앞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지켜야 할 것을 지켜낸 자에게 주어지는 진짜 포상. 이거야말로 동화세계에서도 현실에서도 힘없는 보통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단 한가지가 아닐까.

쓸쓸했지만 아름다웠던 결말이 정말 좋았던 책. 내게도 그런 나무구멍이 있다면, 데이빗처럼 늘 마음 속에 품고 있을 수 있는 그 곳이 있다면...


8. 로지 프로젝트(그레임 심시언, 송경아 역. 까멜레옹. 2013. 410쪽)
: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 딱 이런 얘기가 필요했다. 유전학 교수 돈. 분 단위로 스케쥴 짜서 그 시스템 대로만 행동하고,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해석하거나 어울리는 행동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39세인 그에게는 '아내 문제'가 발생했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자신에게 맞을만한 사람을 거르는 설문지를 작성하여 배포한다. 그런데 주요문항에 오답만을 체크할 게 뻔한 여자 로지가 갑자기 그의 연구실에 나타나는데...

가볍게 읽었고 재미있었다. 결말에 대한 부담도 없었고. 돈은 별로 끌리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로지는 친해지고 싶은 타입이어서 즐겁게 읽었다.


9.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천명관. 창비. 2014. 221쪽)
: 전에도 얘기했듯 이 작가의 작품들은 모두 데뷔작에 미치지 못하기에 큰 기대없이 집어들었다. <봄, 사자의 서>, <왕들의 무덤>, <우이동의 봄>은 나쁘지 않았지만 표제작은 왜 이걸 표제작으로 했나 싶었다. 딱히 임팩트 있거나 감동적이지도 않았고 결말도 평이했다. 가장 좋았던 건 <핑크>. <동백꽃>은 어릴 때 읽었던 근대 소설 중 하나를 생각나게 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데 어느 섬에 그 섬의 경제를 독점한 부자 노인이 있고 결국에는 섬의 모든 처녀들이 그 부자 영감의 첩실이 되는 게 결말이었던, 섬 이름이 제목이었던 장편(이 책 아시는 분?). 저자가 그 작품을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백년 전에 나온 소설의 틀에서 벗어나지도 못했을 뿐더러 그만큼도 못한 작품이라니. 앞으로는 이 작가가 서가에서 눈에 띄어도 우선적으로 집어들 것 같지 않다.


10. 사막에서 연어 낚시(폴 토데이, 김소정 역. 마시멜로. 2012. 414쪽)
: 영국 국립해양원의 존스 박사는 어느날 뜬금없이 예멘에 연여 낚시장을 만들 수 있을 지 문의하는 이메일을 받는다. 높은 수온과 부족한 먹이, 연어가 나아갈 바다와는 먼 지리적 위치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답변을 보냈으나 낚시라는 스포츠를 꼭 예멘에 소개하고 싶다는 갑부 모하메드 족장의 열망과 중동 지역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다른 방향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정부의 노림수가 시너지 효과를 내어 프로젝트는 강력히 추진된다.

기대했던 것만큼 빵 터지지는 않았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사실 제목만 보고는 성장 소설인 줄 알고 집어든 거라서 첫 부분은 좀 지루하다고도 느꼈지만 읽을수록 재미있었고 특히 순수하고도 우아하게 열정을 구현하는 족장님에게 반했다. 믿음은 희망을 앞서고 사랑보다도 앞선다는 그의 말, 믿음은 모든 문제를 치유한다는 말(184쪽)은 내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11.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제레미 머서, 조동섭 역. 시공사. 2008. 318쪽)
: 파리의 그 유명한 서점 셰익스피어&컴퍼니. 저자는 캐나다에서 사회부 기자로 일하며 각종 범죄 뉴스에 찌들어 살던 중 범죄자인 취재원의 실명을 책에서 노출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그에게서 협박을 받자 허둥지둥 파리로 도망친다. 방탕했던 생활 탓에 돈조차 없던 그는 셰익스피어&컴퍼니에서 작가들을 무료로 재워준다는 얘길 듣고 그 곳으로 들어가 살게 된다.

셰익스피어&컴퍼니의 명성은 알고 있었지만 그에 관한 지식은 전무했던 내게 이 책은 마치 소설처럼 읽혔다. 정말 무료로 잠자리를 제공한단 말야? 정말 그 안에 무료 도서관이 있다고? 조지가 만든 이 작은 세계는 물론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 곳에 머무는 사람들에게 휴식과 치유를 준다. 이건 책이 내게 해주는 것과 같다. 결국 서점도 책도 사람을 위해서, 사람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12. 금지된 정열(크리스티나 페리 로시, 정승희 역. 문학동네. 2011. 240쪽)
: 서정성과 사회 비판성을 지닌 소설들. 표제작을 비롯해서 일부는 정말 뭐라 말할 수 없이 아름답지만 대부분은 상당히 붉고 검다. 그런데 내 취향은 아무래도 서정성 쪽. 좋았던 작품들은 <거울 만드는 사람>과 <사막에서 노래하다>.


13. 이방인을 보았다(구경미. 북멘토. 2014. 208쪽)
: 열 일곱 살 한음이와 인호, 달이, 만하는 여름 방학을 앞두고 동네 꼭대기에 있는 '장노인'의 집에 몰래 들어간다. 부실 건축된 인호네 집의 수리 비용을 정식으로 얻어낼 수 없게 되자 분양업자인 장노인의 집을 털어서 비용을 충당하기로 한 것. 한음은 빈 집인 줄 알았던 집의 방문 틈새로 빛나는 무언가를 보게 되고, 얼마 후 장노인이 집에서 고독사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뻔하지만 재밌었던 성장 소설. 청소년 소설답게 권선징악인 결말에 맘이 편해졌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기에.


14. 피버 드림(조지 R.R. 마틴, 이수현 역. 은행나무. 2014. 521쪽)


15. 당신의 파라다이스(임재희. 나무옆의자. 2013. 355쪽)
: 하와이 이민 1세대 이야기. 사진 신부 강희와 나영의 이야기를 주축으로 처음 하와이에 도착한 각자의 사연들이 이야기된다. 한 집에서 함께 자란 강희와 나영은 다니던 교회의 주선으로 각자 맘에 드는 사진 속 남자를 고르지만 막상 하와이에 도착해서 만난 남편감인 상학을 나영은 거부한다. 조선으로 돌아가겠다는 나영의 고집에 강희는 처음부터 짝이 바뀌었다고 생각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고, 강희의 도착을 손꼽아 기다리던 창석은 맘을 표현도 못한 채 나영을 받아들인다.

강희와 창석의 안타까운 사연 외에도 갑자기 남편과 사별하고 떠돌던 순례, 딸들을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게 하고 싶었던 심영의 이야기들이 맘을 아프게 한다. 뻔하다면 뻔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창석과 강희, 나영과 창석, 상학과 강희의 엇갈리는 사랑이야기를 큰 줄기로 삼아서 이야기를 풀어나간 것이 좋았다. 신경림의 싯구처럼 가난해도, 나라를 잃었어도, 고향을 떠나왔어도 사랑을 모르는 건 아니기에. 서사에서 미숙함이 약간 느껴지기는 했지만 이 작가의 다음 작품도 기대된다.


16. 기억을 삼킨 소녀(캣 패트릭, 허윤 역. 문학수첩. 2014. 359쪽)
: 열 여섯 소녀 런던은 어릴 때의 교통 사고 이후 새벽 4시 33분이 되면 모든 기억이 리셋된다. 친한 친구나 학교 생활에 대해서는 전날까지 열심히 해 둔 메모로 간신히 이어가고 있는 그녀에게는 대신 꿈을 통해 미래가 언뜻언뜻 보인다. 그런데 미래에서도 보이지 않던 잘생긴 소년이 그녀에게 말을 걸고 호감을 보이는데...

흥미로운 소재인데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도 탁월해서 상당히 흡입력이 있었다. 기대만큼 '뭔가'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충분히 재미있었다.


17. 난 두렵지 않아(니콜로 암마니티, 윤병언 역. 시공사. 2014. 335쪽)
: 1978년 이탈리아의 작은 시골 마을. 다섯 가구밖에 없는 이 작은 마을의 아이들에게 여름방학은 너무나 지루하다. 미켈레는 마을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고 무더운 여름 산을 돌아다니던 중 우연히 골짜기 폐가에 숨겨진 아이를 발견하고, 같이 놀던 아이들에게조차 이를 숨긴 채 몰래 그 아이를 찾아간다.

성장 소설이라 해야할까. 분명 이 소년이 성장하는 것 같긴 한데, 그 성장이 너무나 씁쓸하다. 갇혀있는 소년의 비밀은 내가 원치 않던 바로 그것이었고 미켈레의 깨달음 또한 그러했다. 소년이 그냥 소년인 채로, 부모님에 대한 순진한 존경과 세상에 대한 해맑음을 간직한 채로 머물 수 있는 세상은 없는 걸까. 후크 선장과 악어가 없는 네버랜드를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일까.

by 달을향한사다리 | 2015/05/04 16:36 | Yujin's Book Story | 트랙백 | 덧글(4)
Commented by 이요 at 2015/05/04 19:15
13번 소설은 줄거리가 <모나코>와 비슷한데요? @.@
Commented by 달을향한사다리 at 2015/05/07 17:46
말씀하신 거 보고 급 검색해봤는데, 소재는 비슷해도 분위기나 주제는 다른 것 같아요^^ <모나코>도 읽어보고 다시 말씀드릴께요~
Commented by 취한배 at 2015/05/04 23:21
<치유>는 저도 읽다가 포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근데 ‘사랑하는 관계 내에서의 일종의 권력 관계’라니, 다시 도전해보고 싶어지네요.ㅎ <잃어버린 것들의 책>과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은 저도 재미있게 봤던 책이고요. 4월에도 번역소설과 한국소설이 조화를 이루어 푸짐하네요! 17권;; 흡-
Commented by 달을향한사다리 at 2015/05/07 17:50
<치유>는 초반에는 좋았거든요, 심리랑 경치 묘사가 진짜 아름다웠어요. 근데 읽어나갈수록...ㅠ

사실 책 내용으로만 보면 번역 소설을 훨씬 많이 읽어야 위시리스트가 좀 줄어드는데, 번역문 계속 읽으면 너무 피곤해서 한국 소설을 꼭 끼워넣을 수 밖에 없네요ㅋㅋㅋ 원어로 읽을 수 있는 실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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