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독서 목록

1. 꿈의 심리학(지그문트 프로이트, 정명진 역. 부글북스. 2009. 258쪽)
: 프로이트가 일반인들을 위해 쓴 꿈 심리학 책. 뒤의 두어 챕터 외에는 재미있게 읽었다(맨 뒤 두 챕터는 좀 어려웠다. 집중도 안 되고). 여러 예시가 있는데, 한 때 인터넷에 꽤 돌았던 예가 여기서 나온 것인듯. 한 여자가 실제로도 조카를 하나 잃었고 슬픔을 극복한 후에 다시 조카가 생겼는데, 그 조카가 죽는 꿈을 꾸는 것이었다. 심지어 꿈 속에서는 전혀 슬프지도 않았다. 이를 프로이트는 그녀가 조카의 장례식에서 만났던 남자 때문으로 해석한다. 그 남자를 다시 만나보고 싶은 마음에 그런 꿈을 꾸는 것. 프로이트는 단지 자신의 소망을 나타내는 꿈이니 그런 꿈을 꾼다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이것이 이 책의 전반적인 주제. 심지어는 자신의 소망과 안 맞는 꿈을 꾸는 것도 프로이트가 틀리기를 바라는 소망이 발현된 꿈이라는 것.


2. 코렐리의 만돌린(루이스 드 베르니에, 임경아 역. 루비박스. 2010. 500쪽)


3. 북유럽 신화 1, 2, 3(안인희. 웅진지식하우스. 2007. 272, 275,383쪽)
: 어릴 때 읽었던 바이킹 신화가 생각나서 읽었다. 활자가 크고 행간도 넓으며 그림도 많아서 쭉쭉 읽을 수 있었다. 신들의 세계와 그 이야기, 신의 세계의 종말, 그리고 인간의 이야기가 쉽고 재미있게, 마치 옛날 이야기 들려주듯 편하게 서술되어 있다. 다만 3권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이야기는 2권과 많이 겹친다.


4. 음유 시인 비들 이야기(조앤 K. 롤링, 최인자 역. 문학수첩리틀북스. 2008. 144쪽)
: 머글들의 동화와 별반 다르지 않은 마법사들의 동화. 이웃을 도와야 하고 고통과 노고를 치러야 행운을 얻을 수 있으며, 사랑을 해야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 짧아서 기분전환삼아 재밌고 부담없이 읽었다.


5. 오늘도 안녕하세요(리타 라킨, 이경아 역. 책이좋은사람. 2008. 448쪽)
: 귀엽고 사랑스러운 75세 할머니 탐정이 주인공인 코지 미스테리. 추리 소설을 좋아하고 또래 친구들 중 유일하게 운전을 하는 글래디와 그녀의 수다스럽고 상황판단 느리고 행동 굼뜬, 그러나 각자의 강한 개성이 사랑스럽기만 한 할머니들이 플로리다 실버타운 내 연쇄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이야기이다. 미스 마플에 대한 오마주라고 하지만 미스 마플만큼 스마트하거나 활동적이지는 못하다. 그저 이 사랑스러운 글래디에이터들의 간식을 깃들인 수다와 나름의 모험이 재미있을 뿐. 생일 전날 살해된 할머니들의 범인은 처음에 "혹시...?"라고 생각했던 딱 그 사람이다.


6. 현기증(고은주. 이룸. 2003. 256쪽)
: 조금은 유치한 사랑 이야기. 서른 세 살 잡지 기자 오영미는 대학동창이자 소설가인 친구 신유진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접하고 그녀에 관한 특집 기사를 준비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의미심장한 이메일 한 통을 유족으로부터 건네받은 그녀는 신유진의 마지막 사랑을 추적해나간다.

약간은 유치하고 허세스러우면서도 간지러운 사랑의 밀어들이 신유진과 그녀의 사랑 이야기 속에 어쩔 수 없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어쩌면 작가 자신이 늘 고민하고 있었을 대중성과 그것을 위한 가장(假裝), 오독의 문제가 행간에 깊이 배어있다. 예전에 백영옥이 그녀의 소설에서 얘기했듯 통속, 세상과 통하는 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나쁜 건 부분을 읽고 전체를 아는 양 얘기하고, 그의 글이 그 자신의 전부인 양 이야기하는 우리가 아닐까.


7. 비의 왕 헨더슨(솔 벨로우, 이화연 역. 펭귄클래식코리아. 2011. 480쪽)
: 아, 이 재밌는 작가를 왜 난 이제야 읽은 걸까. 진짜진짜 페이지가 쭉쭉 넘어간다. 주인공 헨더슨은 중년의 뚱뚱하고 못생긴 백만장자이다. 결혼을 두 번이나 했고 아이가 다섯이나 되지만 좋은 남편도 좋은 아빠도 아닌 그는 머리 속을 울리는 "하고 싶다. 하고 싶다"는 소리에 쫓기다 아프리카로 간다.

별달리 정이 가진 않지만 눈길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이 돌아이는 어이없는 사건사고에 휘말리며 뒤늦게 철이 드는데, 그 모습이 익숙하면서도 짠하다. 그나마 머리 속에서 "하고 싶다"는 목소리라도 들리는 헨더슨은 그래도 행운아가 아닐까. 그게 무엇인지 찾아 나설 무모함과 경제력이 있는 것 또한. 난 그 중 무엇도 없으니.


8. 좌충우돌 펭귄의 북 디자인 이야기(폴 버클리 엮음, 박중서 역. 미메시스. 2012. 376쪽)
: 펭귄 북스 창립 75주년 기념으로 펭귄에서 발간된 책들의 표지에 관해 디자이너와 편집자, 저자의 이야기들을 담은 책. 엮은이 폴 버클리의 서문과 달리 대놓고 자신의 책 표지 디자인이 맘에 안 든다고 이야기한 작가도 있었고 그 때문에 맘에 상처받았다고 얘기한 여린 디자이너도 있었다. 전반적으로 펭귄 디자인을 구경하는 맛이 아주 쏠쏠했다. 국내에 출판된 책들의 표지 디자인과 비교해 보는 재미 또한.


9. 앤(전아리. 은행나무. 2012. 257쪽)
: 작가의 말대로 이건 '관계'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혹은 거짓과 통제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고등학생 때의 불의의 사고로 인한 앤의 죽음과 연관되는 바람에 서로 뗄래야 뗄 수 없이 엮이게 된 여섯 명의 친구들.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서로에게 집착하고 또 지겨워하면서 서로를 망치게 되고 마는 이야기.

이 작가는 별 기대 없이 읽었다면 재미있었을 텐데 자꾸만 여기저기서 '차세대 한국 문단의 기대주'라느니 '본격 문학 선언'이니 하는 소리들이 들려서 오히려 책에는 악영향인 듯. 필력은 꽤 좋은데 소재가 늘 아쉽다. 좀 더 신선할 수는 없을까.


10. 파타고니아(브루스 채트윈, 김혜강 역. 2004. 달과소. 327쪽)
: 기존에 읽었던 남미 여행기와는 판이하게 다른, 하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아름다운 글은 당분간을 읽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여행기이다. 저자는 춥고 황량한 그 곳을 덤덤하게 이야기한다.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 유니콘과 요실(꼬리없는 원인), 혁명가 소토와 레닌, 브루제리아(남자 마법사).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가시처럼 박혀있는 '목장 주인은 늘 영국인'이며 '인디오는 양을 죽이고, 영국인은 인디오를 죽'인다는 이야기, 다윈과 애드거 앨런 포의 인종차별, '아스테카 족이나 잉카 족과는 다른 미천한' 인디오의 대학살.

덤덤하고 무뚝뚝하기까지 한 말투로 결국엔 아름다운 한 편의 시를 독자에게 선물한 건 파타고니아의 자연일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


11. 플로리다 귀부인 살인사건(리타 라킨, 이경아 역. 2010. 460쪽)
: 위의 글래디에이터들의 또다른 살인사건 수사. 사실 수사는 글래디가 거의 혼자 다 하는 듯. 그래도 글래디에이터들이 없으면 재미는 반감될 것이다. 이번에는 플로리다의 갑부 여성들이 일주일 간격으로 살해된다. 글래디 골드 여사는 이 여인들의 죽음에 의문을 가지지만 전직 형사인 남친도 현직 형사인 남친 아들도 다들 무시한다. 이 와중에 글래디에이터들에게 크루즈 여행 당첨권이 생기고...

범인은 좀 식상했지만 사실 난 짐작하지 못했다. 설마 그렇게까지 식상할 줄은 몰랐지. 그래도 흡입력이 세서 순식간에 읽었다. 할머니들의 액션은 덤. 이 시리즈를 아껴 읽고 싶기도 하고 호로록 폭풍흡입해 버리고 싶기도 하다.


12. 천재토끼 차상문(김남일. 문학동네. 2010. 368쪽)
: 가벼운 맘으로 집어들었는데 생각보다 무거웠다.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어미가 양잿물을 들이킨 덕에 있을 건 다 있지만 있을 필요도 없는 커다란 귀와 길이가 다른 앞뒷발까지 달고 나온 토끼 영장류 차상문의 일생이 파란만장한 한국 근대사와 맞물려 펼쳐지는데, 재미도 있고 은근한 풍자가 기껍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시대에 휩쓸린 이 천재가 안타까웠다. 다만 왜 하필이면 토끼였는지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다.


13. 블랙베리파이 살인사건(조앤 플루크, 박영인 역. 해문출판사. 2014. 384쪽)
: 한동안 조용했던 한나네 가족들. 비아냥 거리는 기사에 발끈한 것도 잠시, 이번엔 한나 자신이 사고를 내고 유치장에까지 갇힌다.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한나는 신원미상의 피해자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도서관에 들어오자마자 부랴부랴 예약해서 후다닥 읽었다. 갈수록 디저트는 의미가 없어지고 한나의 연애사도 지지부진하지만 이번 편에서는 한나가 사건 당사자라 흥미진진했다. 다만 성질이 급한 사람이라면 이번 편은 다음 편이 나온 다음에 한꺼번에 읽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결혼식 준비에 사사건건 변덕 부리는 한나 엄마도 한 몫하기도 하고. 이번 이야기에서 빵 터진 문장은, "그 사람들은 노숙자가 된 것만으로도 이미 불행한데, 안드레아의 샌드위치까지 먹게 해서 더 불행하게 할 필욘 없잖니?"라는 한나 엄마의 말.


14. 숨그네(헤르타 뮐러, 박경희 역. 문학동네. 2010. 352쪽)
: 2차 대전이 끝난 후 루마니아의 독일인들은 러시아의 수용소에 수용된다. 열 일곱의 게이 레오폴드가 이야기하는 수용소에서의 5년. 추위나 더러움, 강제노동보다 더 그들을 괴롭히는 건 배고픔이다. 목젖에 사는 배고픈 천사는 멀건 양배추 스프의 숟가락질 횟수를 세게 하고 저녁마다 남들과 빵을 바꾸게 한다. 性도 삭제되어 버린, 인간성조차 흔들리는 수용소 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건 어느 날 마을로 구걸 갔다가 말도 통하지 않는 러시아인 노파가 준 하얀 손수건.

시적이고 아름다운 문장이 이야기해주는 비극. 전쟁이 만든 비극은 늘 凡人들에게 닥치는 것. 읽을 때는 오히려 덤덤했는데, 뒤의 해설을 읽고는 울컥했다. 시인 오스카 파스티오르는 자기 이야기를 모두 하고 갔을까.


15. 책 사냥꾼의 죽음(존 더닝, 이원열 역. 곰. 2013. 448쪽)
: 원래는 이 시리즈의 두 번째 권인 『책 사냥꾼의 흔적』을 먼저 빌렸다가 첫 번째 권이 따로 있는 걸 알고 부랴부랴 빌려와서 읽었다. 그런데 수고가 아깝도록 재미없었다. 북스카우트 바비가 살해된 채 발견되고, 책을 사랑하는 형사 제인웨이는 고가의 희귀도서와 관련있을 거라 직감하고 덴버의 북 로를 중심으로 수사를 하기 시작한다.

책은 희귀본이건 북클럽용 저가본이건 그 내용으로 가치를 증명한다. 물론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 사람들이 소위 희귀본 시장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거겠지. 우리나라는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저자와 역자가 서문과 후기에서 말한 가격들은 내겐 별로 의미가 없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이 책이 재미없었던 이유가. 게다가 내가 갑자기 죽기라도 하면 내 책들이 어떤 취급을 당할 지 생각하니...


16. 도서관 노마드(은승완. 문학사상사. 2013. 268쪽)


17. 망원동 브라더스(김호연. 나무옆의자. 2013. 344쪽)
: 근근히 삶을 이어가는 35세 무명 만화가의 망원동 옥탑방에 느닷없이 예전에 알고 지냈던 출판사 '김부장'이 밀고 들어온다. 오갈데 없는 기러기 아빠인 그에 이어 '나'가 만화를 시작하던 무렵 멘토 역할을 해주던 '싸부'마저 황혼 이혼으로 짐싸서 들어오고, 대학 후배 '삼척동자', 집주인 할아버지의 고등학생 손자까지 드나든다.

이야기꾼이라 자칭하는 작가의 글답게 재미있다. 일도 연애도 결혼도 제대로 안 풀리는 30대, 40대, 50대 + 20대의 이야기가 짠하면서도 웃기고 때론 한심하기도 하지만 콩나물 해장국처럼 시원한 결말이 맘에 들었던 이야기.

by 달을향한사다리 | 2014/09/01 17:05 | Yujin's Book Story | 트랙백 | 덧글(2)
Commented by 이요 at 2014/09/01 17:31
"그 사람들은 노숙자가 된 것만으로도 불쌍한데..." 이 부분 읽으면서 왜 일케 뜨끔할까요? 어쩐지 안드레아와 저의 음식 솜씨가 비슷할 듯. ㅠ.ㅠ 망원동 브라더스는 읽을까 말까 하던 책인데 함 읽어봐야겠네영.^^
Commented by 달을향한사다리 at 2014/09/03 14:26
ㅎㅎㅎ 이요님이 안드레아 보다는 나으실 거에요^^ 안드레아는 샌드위치 안에다 페퍼민트 젤리 넣는 여자...ㅋㅋㅋㅋ <<망원동 브라더스>> 꽤 재밌어요^^
※ 이 포스트는 더 이상 덧글을 남길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