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독서 목록

1. 핑거스미스(세라 워터스, 최용준 역. 열린책들. 2006. 726쪽)
: 좀도둑 엄마는 사형을 당했고, 수 트린더는 석스비 부인의 집의 좀도둑들 틈에서 자란다. 어느 날 젠틀맨이라 불리는 남자가 시골의 부유한 상속녀 모드에게 구혼하기 위해 수가 필요하다 하고 수는 그의 음모를 돕기 위해 모드의 하녀로 들어간다.

수의 목소리가 정말 좋았다. 수의 말투가, 수의 얘기가 좋았다. 모드의 목소리보다 더. 그래서 수가 가여웠고 모드가 미웠다. 나중에 모드의 삼촌이 모드에게 한 짓을 알았을 때에도, 그리고 아주 나중에 진짜 반전을 읽으면서도 난 계속 수가 불쌍했다. 칙칙하다는 말로는 모자란, 암굴같은 빅토리아 시대의 런던 뒷골목에서 수 같은 아이를 자라게 한 작가에게 고마웠다.


2. 거룩한 속물들(오현종. 뿔. 2010. 267쪽)
: 가난을 들키고 싶지 않은 사회복지학과 4학년 여대생 기린의 이야기. 돈 많은 친구 명과 타고난 속물인 지은을 따라잡기 위해 쉴 틈 없이 과외를 하고 수입 생수병을 여러 번 재활용하면서 아둥바둥 살던 그녀가 꿈을 찾게 되는 이야기이다.

칙릿같은 이야기였고 그만큼 부담없이 읽었다. 재미도 있었고. 사실 건전한 결말이 약간 아쉽긴 했다. 특히 아버지는.... 결국 자신의 속물 근성 드러내고 아둥바둥 거려봐야 다 소용없다. 아닌 척하면서 현실에 만족하는 게 제일일 지도 모른다.


3. 머쉬룸 맨(소피 파웰, 김정미 역. 인북스. 2003. 252쪽)
: 어른을 위한 동화. 오랫동안 교류가 뜸했던 자매 베스와 샬로테는 언니 베스의 간곡한 요청으로 베스의 농장에서 다시 만난다. 샬로테는 딸 릴리에게 지저분한 농장에서 주의할 것을 당부하지만 천진한 릴리는 금세 사촌들과 어울리고, 요정을 위한 우산을 버섯으로 만들어 준다는 머쉬룸 맨 이야기에 흠뻑 빠진다. 릴리는 머쉬룸 맨을 만나기 위해 숲으로 들어가고, 아이가 실종되자 농장은 발칵 뒤집힌다.

동화답게 아름답고 순진하지만 이게 동화일 뿐이라는 걸 아는 어른들에게만 권해주고 싶다,고 생각한 내가 참 안타깝다. 현실도 동화 같다면...


4. 내 여자친구의 장례식(이응준. 문학동네. 2009. 324쪽)
: 리뷰는 책을 읽은 직후에 써야 한다. 월말에 한꺼번에 쓰려니 이 책에 어떤 단편들이 있었는지, 대략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 유일하게 기억나는 것은 읽으면서 이 책을 작가가 20대때 썼구나 확신했던 것. 뭐랄까, 20대 특유의 무게잡기 - 죽음, 삶의 의미, 존재의 불안 등 - 가 강하게 드러나는 단편들이었던 기억.


5. 캐주얼 베이컨시 1, 2(J.K. 롤링, 김선형 역. 문학수첩. 2012. 360쪽, 340쪽)
: 영국의 가상도시 패그포드 지방의회 의원 배리 페어브라더스가 주차장에서 심장마비로 급사한다. 결혼기념일 외식마저 미루면서 배리가 죽기 직전까지 신경쓰고 있었던 건 패그포드의 할렘인 필즈를 패그포드에서 제외시키자는 중산층 보수주의자들에 대한 반박. 배리의 죽음으로 생긴 임시 공석을 둘러싸고 지방 의회 내에서 같은 편이었던 의사 파민더, 반대편이었던 하워드와 배리의 공석을 차지하려는 하워드의 아들 마일스, 또 뇌물 받아먹을 생각으로 그 공석을 노리는 폭군 사이먼 프라이스와 그의 고등학생 아들 앤드루, 그 친구 팻츠, 그리고 누구보다 배리의 그늘이 필요했던 필즈의 가여운 소녀 크리스털 위든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초반에는 등장 인물들 각자의 배경 이야기가 소개되느라 산만하고 정신없지만 곧 이들이 유기적으로 얽히면서 각자가 가진 욕심과 그걸 실현시키기 위해 개인주의로 위장한 이기심, 외면하고 있는 계층 갈등과 세대간의 갈등, 10대들의 성과 약물 문제, 아동 학대 등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재미있게, 정신없이 읽었다. 두 권에 담기에는 빠듯할 정도로 이야기들이 꽉 차 있어서 눈 돌릴 틈이 없었다. 저자가 처음 쓴 성인 소설이라는 홍보 문구가 눈에 띄지만 난 <<해리 포터>> 시리즈도 아동, 청소년만 대상이라기에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갈등구조가 상당히 현실적이고 나름 복잡다단했다고 느꼈기에 이 책이 첫번째 성인 소설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다. 다만 해리 포터에서는 선악이 분명히 갈렸으나 여기서는 각자의 입장과 이해관계가 있을 뿐 어느 쪽이 선이고 악이라 할 수 없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이 책으로 저자는 판타지 외적인 면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입증했다는 생각이 든다.


6. 라비린토스 1, 2(케이트 모스, 이창식 역. 해냄. 2006. 453쪽, 424쪽)
: 13세기 프랑스 남부 지역의 신흥 기독교 세력을 제압하고자 거행된 십자군 원정과 카타르파(신흥 기독교 세력)가 목숨을 내던지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성배의 이야기. 21세기, 강자가 쓴 역사 속 이야기가 아닌 진실을 증언하고자 살아남은 사람과 800년 전 성배 수호자의 운명을 다시 사는 사람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들었고 바로 빠져들었다.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어렴풋한 십자군 전쟁의 진짜 목적과 그 안에 담긴 진실을 이야기로 살려낸 작가의 글발이 정말 맘에 들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 난 정말 전적으로 소박할 수 있었다.


7. 붉은 리본(전경린. 웅진지식하우스. 2006. 264쪽)
: 에세이를 읽으며 울어 본 건 정말 오랜만이다. 한번 더 읽고 싶은 에세이를 읽은 건 처음인 것 같다. 내가 왜 전경린의 소설들을 좋아하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었다. 그 문장들, 그 감성들...


8. 책벌레 이야기(스티븐 영, 우스이 유우지 엮음, 장윤선 역. 퍼플카우. 2012. 157쪽)
: 다들 알고 있겠지만, 나 또한 책벌레에 단단히 감염되었다. 대략 성실읽기벌레, 소설읽기벌레, 전집구입벌레, 도서관벌레, 중고책구입벌레, 작가애호벌레 등에 감염되었을 것이다. 치료는 불가능하다. 뭐, 딱히 치료되길 원하지도 않는다.


9. 교군의 맛(명지현. 현대문학. 2012. 383쪽)
: 맵디 매운 이야기. 강하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한, 자극적이라는 형용사도 유치한 독한 이야기. 줄거리만 얘기하자면 어디선가 들어본 흔한 스토리일 지도 모른다. 권력자의 성노리개였던 어린 가수와 그녀의 아비 모를 딸 김이, 그리고 '교군'이라는 음식점의 안주인이자 그녀의 계모 덕은. 내부고발을 하고 회사를 그만둔 김이가 이덕은 여사의 명령으로 교군의 역사를 정리하게 되면서 모녀 3대의 신산한 이야기와 교군의 맛의 비밀이 펼쳐진다.

날 가장 맘 아프게 했던 건 사실 모녀 3대의 아픈 삶보다도 손 씨였다. 웃을 줄만 아는 손 씨. '지붕에서 떨어져도 웃었고, 딸이 월급봉투째 소매치기를 당해도 웃었고, 매워도 웃었...'(241쪽)던 '환한 햇볕 같고 따스한 아랫목 같'던 손 씨. 평생 한 여자만 사랑하고 그녀의 딸을 봉지밥 봉지국으로 키워낸 손 씨. 힘든 세상을 이덕은 여사처럼 입에 독을 물고 버텨내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손 씨처럼 그저 납작 엎드려 바보처럼 웃으며 꾸역꾸역 살아내지 않나. 손 씨의 이야기는 길지도 깊지도 않았지만 난 손 씨가 웃을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김이가, 손 씨가 웃을 수 있게 해줬으면...


10. 당신 없는 일주일(조너선 트로퍼, 오세원 역. 은행나무. 2012. 451쪽)
: 아내가 직장 상사와 바람이 나서 이혼한 저드.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러 엄마 집에 왔다. 양육에 관한 베스트셀러 작가인 엄마와 아이 셋을 낳고 일벌레 남편과 그럭저럭 사는 누나, 어릴 때 저드 때문에 사고를 당해 야구선수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가업을 물려받은 형, 집안의 망나니 동생 등이 모두 모여 유대교 전통 장례인 시바를 일주일 동안 치르면서 겪는 갈등과 화해의 이야기.

블로그 이웃님의 추천으로 읽었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애정이든 증오든 한쪽으로만 치우칠 수는 없는, 삶에서 가장 큰 애증의 가장 큰 대상인 가족의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이야기를 짜임새있게 잘 풀어냈다. 이 작가의 다른 장편들을 찾아 읽고 싶다.


11. 위대한 개츠비(스콧 피츠제럴드, 이만식 역.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320쪽)
: 아, 이 남자, 진짜 위대했다! 난 예전에 어디에선가 개츠비를 위대하다 하는 건 반어법이라는 리뷰를 읽은 적이 있어서 얼마나 찌질한지 보자 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읽으면서 정말 이 남자한테 흠뻑 빠졌다. 이렇게 순정적이라니. 만 건너편의 초록 불빛을 바라보던 개츠비, 데이지가 오기를 기다리며 계단 위에서 파티를 내려다보던 개츠비, 불켜진 데이지의 창을 덤불 속에서 바라보던 개츠비... 아, 이런 남자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면!


12. 클레오(헬렌 브라운, 이아린 역. 작은책방. 2013. 408쪽)
: 저자 인생에서 가장 절망적인 시기에, 고양이라고는 키워본 적도 없는 '강아지파'인 저자에게 와 저자의 삶을 자신의 방식대로 보듬어주고 이끌어 준 고양이 클레오와 함께한 삶의 이야기이다. 제목은 <<클레오>>지만 사실 대부분의 에세이가 그렇듯 저자 자신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남의 삶을 들여다보는 재미와 해피 엔딩에 대한 기대로 수월하게 읽었다. 하지만 클레오가 - 실제로는 안 그랬겠지만 - 들러리에 불과한 점은 서운했다. 또 모든 대화체를 쌍따옴표가 아닌 홑따옴표로 처리한 편집자는 어이없었다. 처음엔 이 사람들이 다 텔레파시로 대화하는 줄 알았어.


13. 당신의 몬스터(서유미. 자음과모음. 2011. 304쪽)
: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의 욕망이 바로 눈 앞에서, 직접적으로 분병하게 실현된다면 우리는 얼마만큼의 대가를 치를 수 있을까? 매일 만원씩 주던 신사의 뒤를 쫓아 지갑을 뺏으려다 머리를 내리친 노숙자, 전성기의 미모를 돌려 받았지만 하루하루 대가를 치르는 한물 간 여배우, 통장에 찍히는 숫자만으로 희열을 느끼면서 가난한 부하 직원이 가진 단 하나를 뺏으려는 기업 부장... 이들의 욕망이 실현되려는 순간에는 늘 지상의 것이 아닌 듯한 달콤한 냄새가 있다.

읽는 내내 내 바로 옆에서 그 향기가 난다면, 그리고 그가 내게 손 내민다면 지금의 내가 그걸 외면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이 책을 읽을 즈음의 내가 얼마나 회사에 지쳐 있었는지, 내가 버는 돈과 벌어야 할 돈과 벌기 싫은 돈에 대해 얼마나 지겨워했는지를 생각하면 난 아마도 그 손을 덥석 잡았으리라. 그리고 금세 파멸했겠지, 그들처럼.

전형적이고 식상할 수 있는 캐릭터와 이야기 구조, 줄거리였지만 이 망할 놈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꺼풀만 벗기면 바로 보이는 욕망을 제대로 보여주어 재미있게 읽었다.


14. 진실 게임(사라 데센, 조종상 역. 개암나무. 2012. 608쪽)
: 1년 전 갑자기 아버지를 잃은 메이시. 엄마는 일 속으로 빠져들어 아버지에 대해서도, 슬픔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으려 하고 완벽주의자 남자친구 제이슨은 위로가 되어주기는 커녕 자기가 브레인 캠프에 있는 동안 메이시가 대신 해줄 도서관 안내 데스크 일에만 관심있다. 늘 아버지와 달리기를 하던 메이시는 달리는 법도 잊고 자신을 동정어린 시선으로만 보는 사람들 틈에서도 달아나고 싶다. 우연히 엄마의 파티 케이터링 업체 사장 델리아와 그녀의 조카 웨슬리, 직원 크리스티와 알게 되면서 메이시의 생활은 바뀌기 시작한다.

웨슬리와의 진실 게임 속에서 드러나는 메이시의 상처 극복과 성장이 정말 기특했던 성장 소설. 영원은 결국 지금, 여기라는 메이시의 이야기도 좋았지만 사실 가장 좋았던 말은 델리아가 진입로의 구덩이를 메우지 않는 이유. 삶에서 무너지게 되어 있는 것은 결국 무너진다는 것. 운명론자의 체념적 사고 같지만,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삶의 커다란 구덩이를 억지로 힘써서 바로 메우려고만 하지 말고 때로는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것들을 그저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by 달을향한사다리 | 2013/05/02 16:05 | Yujin's Book Story | 트랙백 | 덧글(8)
Commented by 메롱씨 at 2013/05/02 16:34
이번달도 참잘했어요 도장 찍어드리고 싶은 독서목록이네요ㅎ 저는 개츠비같은 남자가 좋아해주는거 싫은데 사다리님은 순정남 취향이시군요ㅎ 10번은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Commented by 달을향한사다리 at 2013/05/03 18:13
메롱씨님이 참잘했어요 도장 찍어주시면 진짜진짜 자랑스러울 거 같아요^^ 개츠비 같은 남자가 사랑해주는 것도 자랑스러울 듯 해요ㅋㅋㅋㅋㅋ 단순 순정남이 아니라, 순정을 오래오래, 평생 간직해주는 남자요^^
Commented by 국진-_- at 2013/05/02 23:07
앗- 오랜만이에요!
요새 책은 손도 안 대고 있는 저.ㅠ
눈에 들어오는게 없네요..ㅠㅠ
Commented by 달을향한사다리 at 2013/05/03 18:13
아, 진짜 오랜만이에요, 국진님~!! 반가워요^^ 책은 늘 그자리에 있으니, 눈에 들어올 때 여유있게 읽으시면 되겠죠, 뭐^^
Commented by 당고 at 2013/05/03 00:16
기회 되시면 <핑거 스미스> 드라마도 보세요! 재밌어요 ㅎㅎ
Commented by 달을향한사다리 at 2013/05/03 18:14
아, 드라마도 있군요! 당고님이 추천하셨으니 한 번 찾아봐야겠어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ㅋㅋㅋ
Commented by 이요 at 2013/05/03 08:52
<캐주얼 베이컨시> 읽으셨군요. 리뷰를 봐도 바로 그점(앞부분이 산만) 때문에 망설여지는데...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읽어지겠죠.^^ 9번이 끌리는 반면, 13번은 설정만 봐도 자극적으로 보이네요.
Commented by 달을향한사다리 at 2013/05/03 18:18
제 동생도 <캐주얼 베이컨시> 좀 읽다가 말았어요, 바로 그 점 때문에요 ㅋㅋㅋ <교군의 맛> 재밌어요. 아무 생각없이 도서관에서 집어들었다가 스스로 기특해했죠ㅋㅋㅋ<당신의 몬스터>의 서유미 작가는 개인의 욕망에 관심이 많은가봐요. 전작 <판타스틱 개미지옥>도 그랬는데... 저는 아마 서유미 작가의 다음 책도 읽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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