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녀가 그 애를……? -『비밀의 정원』, 케이트 모튼



1913년 영국을 떠나 호주 메리보로우항으로 향하는 여객선. 4살 소녀는 ‘작가 부인’과 게임을 한다. 숨어 있던 곳에서 움직여서도 안 되고 누구에게도 이름을 말해서도 안 되는 게임. 여객선이 도착한 후 아이는 항구에 혼자 남겨지고, 자기 이름조차 잊어버린 아이에게는 동화책이 들어 있는 작은 여행가방뿐이다. 17년 뒤, 아버지 휴는 딸 넬의 21세 생일을 맞아 진실을 이야기해 주기로 마음 먹고, 그 이후로 넬의 세상은 무너진다. 다시 시간이 흐르고 손녀 카산드라만이 지키고 있는 넬의 임종 침상. 넬은 작가 부인을 떠올린다.

처음 100 여 페이지를 읽었을 땐 이 책도 뻔하다고 생각했다. 6하 원칙 중 5개 –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 를 알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동안 소설 좀 읽은 게 이렇게 티가 확 나는구나, 내심 뿌듯한 생각까지 들었다. 고딕 소설 다 그렇지 뭐, 별거 아니네. 그런데 50여 페이지를 더 읽어 나가면서 난 급격히 부끄러워졌다. 나 진짜 잘난 척 쩌는구나. 이 이야기는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가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왜’가 중요한 이야기였다. 나머지는 ‘왜’를 이야기하기 위한 거였다. 왜 아이는 숨바꼭질을 했는지, 왜 혼자 남았는지…….

이야기는 1900년대 초반과 1975년, 그리고 현재를 오고 간다. 1900년대 엘리자와 로즈의 애증, 1975년대 넬의 뿌리 찾기, 현재의 카산드라의 할머니의 수수께끼 풀기. 이 모든게 서서히 톱니가 맞물리듯, 퍼즐 조각이 군데군데 제자리를 찾아가듯 맞춰지는 것을 보는 건 정말 즐겁고도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특히 ‘왜’ 그랬는지 깨닫게 되는 순간과 내가 깨달은 ‘왜’를 등장 인물의 입을 통해 명료하게 확인하는 순간에는 아, 내가 이래서 소설을 좋아하지,라는 생각을 새삼스레 하게 했다.

작가는 꽤 영리하게 플롯을 짜서 나로 하여금 이 이야기에서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작가가 만든 세계는 동화 속 성처럼 아름답고 또 견고했으며, 슬펐다. 마치 벽에 둘러싸인, 나무 딸기 덤불에 뒤덮인 비밀 정원처럼.

인생은 ‘왜’를 찾는 과정인걸까? 소설 속 넬과 카산드라는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를 찾아 헤맨 것처럼 보였지만 그건 모두 ‘왜’에 답하기 위해서였다. 왜 작가 부인이 넬을……? ‘왜’를 확인한 후에도 인생이 쉬워지거나 갑자기 화사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좀 더 가벼워졌을 뿐. 이 소설에서 가장 좋았던 게 바로 이거였다. ‘왜’를 알고 나니 조금은 가벼워지는 인생. 슬픔이 줄지는 않았지만, 짊어질 만해진 삶 덕분에 버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by 달을향한사다리 | 2013/03/29 16:17 | Yujin's Book Story | 트랙백 | 핑백(1) | 덧글(2)
Linked at 타인에게 말걸기 : 2월의 독.. at 2013/04/03 14:11

... 아 역. 민음사. 2012. 190쪽) 10. 돈 한푼 안 쓰고 1년 살기(마크 보일, 정명진 역. 부글북스. 2010. 328쪽) 11. 비밀의 정원 1, 2(케이트 모튼, 정윤희 역. 지니북스. 2012. 496쪽, 496쪽) 12. 이별하는 골짜기(임철우. 문학과지성사. 2010. 315쪽) : 강원도 정선의 기차역. 이별하는 골짜기[別於谷]라는 이름의 ... more

Commented by 춤추는 나무 at 2013/04/03 04:51
아, 책 표지도 좋고 사다리님 리뷰도 좋네요. 저도, 인생은 '왜'를 찾는 과정,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도 읽어봐야지~! ^^
Commented by 달을향한사다리 at 2013/04/03 14:10
네, 진짜 재밌게 읽었어요^^ 모든 이야기가 결국은 '왜'를 찾는 과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 순간 뭔가 깨달은 기분도 들었구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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