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독서 목록

1. 파란 구두와 행복(알렉산더 매콜 스미스, 이나경 역. 문학수첩. 2011. 263쪽)
: 음마 라모츠웨와는 이제 안녕이다. 여전히 보츠와나에서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해 주며 살아갈 그녀. 마쿠치도 행복해 질 테고... 끝무렵이라 그런지 이야기에 힘이 빠진 느낌이었다. 견습공들도 여전히 한심한 상태에서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것도 불만이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어쩌면 저자는 여전한 보츠와나에서의 삶을 얘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도 베란다에 앉아 부시 차를 마시고 있을 것만 같은 전통적 체구의 음마 라모츠웨. 새로운 그녀의 이야기가 그리워 질 것 같다.


2. 하이킹 걸즈(김혜정. 비룡소. 2008. 285쪽)
: 미혼모의 딸로 엄마와의 사이도 그닥 좋지 않은 고등학생 은성은 학교에서 잘 사는 집 아이를 때렸다가 소년원에 갈 위기에 처한다. 다행히 청소년보호센터와 검찰이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기 위해 실크로드 대장정 프로그램을 제안했고, 역시 뭔가 잘못을 저질렀지만 소심해 보이는 보라와 함께 보호자 미주 언니를 따라 실크로드를 걷게 된다.

전에 읽은 <닌자 걸즈>에 비해 지루했다. 물론 은성의 상처와 성장은 안타깝고 대견했지만 미주 언니와 보라의 사연과 캐릭터는 좀 약했다. 그래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게 불명확하거나 어설프지는 않았던 건 좋았다. 내가 이렇게 캐릭터가 약하다는 둥 지루하다는 둥 얘기하는 것 자체가 이미 난 나이 들었다는 소리일 뿐.


3. 호텔 월드(알리 스미스, 이예원 역. 열린책들. 2011. 299쪽)


4. 신문물 검역소(강지영. 시작. 2009. 309쪽)
: 17세기 초, 청나라와 왜를 통해 우리나라에도 서양 물건들이 조금씩 들어오던 때 이러한 신문물의 쓰임을 알 수 없어 헤매자 조정에서는 제주에 신문물검역소를 세운다. 과거에 갓 급제한 함복배는 아버지의 동문수학이자 어릴 때부터 사모하던 연지낭자의 아버지인 이상도의 권유로 신문물 검역소 소장으로 부임하여 제주에 내려가는데, 네덜란드인 벨테브레가 제주 해안에 상륙하여 끌려오고...

초반에는 좀 지루했지만 후반은 흡입력이 상당했다. 특히 제주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면서부터는. 초반에 '불아자'니 '치설'이니를 검역하면서 함복배와 휘하들이 만담같은 대화를 나누는 것도 유치했고, 작가는 의도한 거겠지만 신문물의 이름을 일부러 원래 이름과 비슷하게 지은 것도 작위적이었다. 하지만 송일영과 미호의 등장부터는 역시 강지영이로구나 싶게 빠른 전개와 유머가 돋보였다. 이 한 권 안에 코미디와 미스터리와 연애가 모두 버무려져 있는 진짜 재밌었던 소설.


5. 검정새 연못의 마녀(엘리자베스 조지 스피어, 이주희 역. 시공사. 2007. 347쪽)


6. 외국어를 공부하는 시간(오현종. 문학동네. 2009. 215쪽)
: 긴 이별 이야기. 이미 외국으로 떠나버린 H와 헤어지기 위해 길고 길었던 고등학교 3년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지식한 고등학교 교사의 딸로 늘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아 중학 생활 내내 시샘의 대상이었던 은효는 외고로 진학하고, 중학교 때와는 달리 집안의 사회 경제적 배경에서는 물론 공부에서까지 밀리게 된다.

읽는 내내 나의 고교 시절을 생각나게 했다. 꿈도 다르고 환경도 달랐지만 한 가지 목표 아래 친구로 지낼 수 있었던 시절, 하지만 그 사이에도 미묘한 차이와 그로인한 틈을 느낄 수 밖에 없던 시절. 당시에는 그 시절이 인생의 암흑기라고만 생각했지만 돌아보니 가장 찬란했던 시절이었다.

작가는 꽤 솜씨있게 지루한 3년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힘든 공부와 사춘기의 떨림과 집안의 변화. 이 작가의 <너는 마녀야>를 읽고 시시하다는 생각에 그 동안 멀리했는데, 다시 보게 됐다.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겠다.


7. 파랑 치타가 달려간다(박선희. 비룡소. 2009. 242쪽)
: 문제아 주강호. 세번째 엄마가 새로 들어온 집에서 나와 알바하던 주유소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고등학교까지는 마치려고 억지로 학교에 붙어 있지만 관심은 바이크와 일렉 기타 뿐. 어느 날 초등학교 절친이었던 이도윤이 외고에서 전학온다. 도윤 엄마의 '같은/다른 부류' 운운에 6학년 때 절교하고 왕따까지 시켰던. 뚱하던 둘 사이는 학교에서 선배들과 밴드부를 만들게 되면서 변한다.

재미있고 편했던 성장 소설. 특히 강호 캐릭터가 맘에 들었다. 하고 싶은 건 뭐든 하지만 자기만의 선을 넘지 않는, 폭주할 때도 헬멧을 쓰는 멋진 녀석. 물론 엄마의 마리오네뜨에서 벗어나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도윤도, 똑부러지게 옳은 걸 추구하는 이경도 예뻤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그들의 연주도 물론.


8. 고양이 소녀(부희령. 생각과느낌. 2006. 218쪽)
: 중학생 민영이는 고양이 사람이다. 길에 사는 야옹이는 민영이를 보자마자 반해서 그 애를 길들이기로 마음 먹고 그 애와 함께 간다. 하지만 민영이는 야옹이를 한이에게 입양보내 버리고, 곧 민영이가 길고양이들과 무료 고양이들을 무작위로 데려다가 고양이 카페에서 돈 받고 분양한 게 문제가 된다.

짧고 명료하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성장 소설이었다. 모든 고양이에게는 각자의 영역이 있고 스스로를 지킬 줄 알아야 하며 자유없는 삶은 가짜라는 이야기는 고양이에게만 적용되는 건 아닐 것이다.

고양이 사람이 되고 싶다. 혼자서도 씩씩하게, 그러면서 다른 존재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는.


9.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전민식. 은행나무. 2012. 293쪽)
: 한때는 잘나가는 컨설턴트였지만 산업 스파이에게 이용당하고 그 죄를 모두 뒤집어쓴 채 하루 아침에 고시원을 전전하는 신세로 전락한 임도랑. 개 산책 알바로 생활을 이어가지만 순간의 실수로 그마저도 잃는다. 역할 대행과 식당 불판닦이로 생활하던 그에게 다시 개 산책 알바 자리가 들어온다.

큰 갈등 구조보다는 소소한 듯 보이는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삼손의 모임이나 라마의 주인 사연과 라마의 탈출 등 좀 더 확장시켜 이야기를 깊게 만들 뼈대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작가는 그저 툭 건드리는 걸로 만족한다. 어쩌면 그게 이 소설의 장점일 수도 있겠지만 아쉬움을 덮을 순 없었다. 이 작가의 단편이 궁금하다.


10. 이선 프롬(이디스 워튼, 손영미 역. 문예출판사. 2004. 166쪽)
: 누구도 온전히 악하지 않고, 어느 누구도 끝까지 착하지 않은 이 소설이 정말 맘에 들었다. 욕망과 도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선도, 이기심 아래 사랑을 숨겨 두었던 지나도, 발랄함과 착함으로 이기심을 감췄던 매티도. 사실 지나의 캐릭터 변화는 잘 이해가 가질 않지만, 길지 않은 이야기 속에 인간 본성을 드러낸 잘 쓴 소설이었다.


11. 여주인공들(아일린 페이버릿, 송은주 역. 민음사. 2009. 320쪽)


12. 하우스메이트(표영희. 자음과모음. 2011. 279쪽)
: 섬처럼 혼자인 사람들. 서로에게 손을 내밀지만 절대 동시에는 아니다. 그저 번갈아 손 내밀고 번갈아 외면하는, 사실은 손잡기를 두려워하는, 따로 또 같이 사는 사람들. 피가 섞이거나 살이 섞인 사이는 아니지만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 흥미로웠지만, 외로웠다.


13. 이반 일리치의 죽음(톨스토이, 박은정 역.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248쪽)
: 죽음에 관한 톨스토이의 세 단편. 표제작에서는 죽어가는 사람의 심리 묘사가 인상적이었고, <세 죽음>에서는 가장 비중이 적었던 마지막 죽음이 인상적이었다. 가장 재미있었던 건 <습격>. 세 작품의 공통점은 죽음 외에도 풍경에 대한 시적인 묘사를 들 수 있는데 특히 <습격> 마지막 장의 노을과 테너의 목소리는 어느 장면보다도 날 뭉클하게 했다.


14. 사립학교 아이들(커티스 시튼펠드, 이진 역. 김영사. 2006. 587쪽)


15. 퀴르발 남작의 성(최제훈. 문학과지성사. 2010. 304쪽)
: 기괴하면서도 발랄한 이야기들. 제목에서 받는 딱 그만큼의 느낌이었다. 한 번쯤은 어디에선가 읽거나 들어봤음직한, 하지만 또 듣고 읽어도 재미있는 이야기들. 그러니까, 작가 자신이 순수하게 창조했다기보다는 많이 읽고 많이 들어서 자기도 모르게 머리속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들 같은 느낌. 가장 진부했던 건 <그림자 박제>. 가장 좋았던 건 <마녀의 스테레오 타입에 대한 고찰>.


16. 희고 둥근 달(정찬. 현대문학. 2006. 323쪽)
: 묵직한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선택했고, 원하는 걸 얻었다. 저음의 굵직한 음성이 내내 영혼과 영원, 시간과 죽음, 기억과 미망을 얘기했다. 다만 이해할 수 없었던 건 근친상간의 코드. 새엄마든 오래전에 집 나간 아비든 근친과 간하여 얻는 영원이 과연 구원일까.


17. 페리고르의 중매쟁이(줄리아 스튜어트, 안진이 역. 현대문학. 2010. 454쪽)
: 중매쟁이로 전업한 이발사, 26년 만에 쓴 답장, 그리고 두 번의 미니 토네이도.

인구가 33명 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일지라도,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안다고 할 지라도 사랑은 노력 없이는 안 되는 것이다. 중매쟁이 기욤 라두세트의 첫 고객 치과의사 이브 레베크,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자기 외모를 비하하기만 하는 산파 리제트 로베르, 중매쟁이와 낚시 갈 때마다 점심 도시락으로 요리 대결을 벌이지만 사랑에 빠지자 의욕을 잃는 빵집 주인 스테판 졸리스, 남편과의 갈등을 삭이기 위해 가구가 닳도록 청소를 해대다 이혼 후에는 먼지투성이 성을 산 에밀리에 프레세 그리고 미적 감각 때문에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에밀리에에게 거절당한 우편배달부 길베르 드뷔송 등 모든 사람들의 사랑은 각자 아름답고 특별했다. 진짜 나쁜 사람은 한 명도 나오지 않는, 모든 사랑이 곱게 마무리되는 착한 이야기.


18. 그의 집은 둥글다(이태수. 문학과지성사. 1995. 123쪽)
: 그리움을 얘기하는 쉬운 시어들. 정적이고 청초한 단어들이 읽을 때는 몰랐으나 다시 들춰보니 내게 꽤 위로가 되었구나 싶다.


19. 미사고의 숲(로버트 홀드스톡, 김상훈 역. 열린책들. 2009. 412쪽)
: 집단 무의식 속 숨어있던 환상의 원형이 발현되는 숲. 2차대전 종전 후 프랑스에 머물던 스티븐은 늘 이상한 연구를 하며 며칠씩 집 앞 숲으로 실종되곤 하던 아버지가 죽음에 임박했고 형 크리스찬과 갈등을 일으킨다는 편지를 받는다. 아버지의 죽음 후 집에 돌아온 스티븐은 아버지의 연구를 답습하는 형의 기묘한 변화를 알아차리게 되고 형은 곧 숲으로 사라진다. 집 주위에는 점점 원시부족으로 보이는 존재나 멸종된 걸로 알려진 늑대, 멧돼지 등의 출몰이 잦아지고...

읽는 내내 욕심에 대해 생각했다. 부자가, 형제가 같은 환상을 만들어내고 같은 환상을 좇게 하는 건 결국 같은 욕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 부자들의 환상은 결국 모든 남자들의 환상인걸까? 우르스쿠머그가 스티븐에게는 관대했던 이유는 뭘까? 만약 우리나라였다면 어떤 환영을 만들어냈을 것인가?


20. 도서관 책 도난사건(이언 샌섬, 이윤혜 역. 뜨인돌. 2012. 387쪽)
: 책에만 푹 빠직 책덕후 이스라엘 암스트롱. 런던에서는 단기 계약직 사서, 서점 종업원 등으로 일하다 북아일랜드에 드디어 원하던 정규직 사서자리를 얻어 힘든 여행끝에 도착했으나 도서관은 폐쇄되어 있고 그에게 남은 건 밴으로 하는 이동도서관 사서자리 뿐이다. 런던과는 너무 다른 환경과 사람들에게 적응하는 것도 힘겨운데 설상가상으로 1만 5천권에 달하는 장서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에게는 이 책들을 찾을 임무까지 주어지는데...

영국식 유머와 북아일랜드의 찬바람, 그리고 36.5도의 온기가 가득한 책이다. 재치있는 목차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었던 책. 어리바리 이스라엘은 답답했지만 무뚝뚝하고 차갑지만 속정많은 테드와 이 책에서 유일하게 정상으로 보이는 브라우니는 정말 맘에 들었다.

by 달을향한사다리 | 2012/07/02 12:12 | Yujin's Book Story | 트랙백 | 덧글(4)
Commented at 2012/07/03 02:2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달을향한사다리 at 2012/07/03 15:35
권해 주신 책, 진짜 재밌을 거 같아요. 위시 리스트에 넣었어요^^

전 예전에는 구입해서 읽었는데, 요즘 운동 겸 도서관에 자주 다니거든요. 그래서 6월에 읽은 책들도 거의 도서관 책이에요. 근데 도서관 책을 읽다보니 사놓은 책은 안 읽게 되서 이번 달엔 사놓은 책 많이 읽으려구요^^

비공개님도 늘 건강하세요~
Commented by anita at 2012/07/03 21:47
오랜만에 들렸습니다. 여전히 책세상을 누리고 계셨네요 ^^
건강하셨지요?

밀린 얘기들도 봐야 하는데 [도서관 책 도난사건]이 눈에 띄네요.
당장 봐야겠어요 ^^
Commented by 달을향한사다리 at 2012/07/04 14:34
anita님 정말 오랜만이에요, 반가워요~ ^^

<도서관 책 도난사건>도 재미있지만 살짝 싱거운(?) 느낌도 들고 그래요ㅋㅋㅋㅋ
<검정새 연못의 마녀> 추천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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