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독서 목록

1.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알렝 레몽, 김화영 역. 현대문학. 2001. 167쪽)
: 쉰 세 살의 화자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나이가 되어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가난했지만 가난함을 몰랐던, 햇빛 환한 프랑스 시골의 어린 시절과 찬란했던 시절에서부터 하루하루 멀어지는 안타까움이 행간에 흠뻑 묻어난다. 봄바람이 슬쩍 스쳐지나가는 호수의 표면처럼 잔잔한 아름다움이 마음을 깊이 건드리는 소설.

"나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 이 책을 썼다. 모르탱의 집은 허물어졌다. 르 테이욀의 집은 허물어졌다. 트랑의 집은 팔려버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누이가 죽었다. 나는 산 사람들, 그리고 죽은 사람들, 그들 모두와 평화롭게 지내고 싶다"(164쪽)


2. 술의 여행(허시명. 위즈덤하우스. 2010. 335쪽)


3. 그 여자의 자살 편지(케르스틴 기어, 전은경 역. 들녘. 2008. 504쪽)
: 연애생활 - 4년 넘게 솔로, 직업생활 - 십년 넘게 로맨스 소설을 써보내던 회사의 합병으로 이제 곧 백수가 될 예정, 기타생활 - 나와 내 직업을 인정하지 않는 가족들에게 찍소리도 못함. 서른살 게르다는 자신의 삶에 더이상 희망이 없다는 이유로 자살을 결심하고 그 동안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했던 진실 - 예, 이모에게 파란 눈 이모와 파란 눈 이모부 사이에서는 갈색 눈의 사촌 동생이 나올 수 없음 - 을 편지로 써서 부치고는 조용히 자살하기 위해 특급호텔 스위트룸으로 향한다. 그런데...

귀여운 칙릿이었다. 작가가 얘기했듯 자살을 희화화할 의도는 물론 없었겠지만 자살 직전의 게르다의 심리가 그다지 절망적으로 보이지는 않았을 뿐더러 자살에서 이렇게 구제받는 행운은 쉽게 오는 건 아니라는 건 그저 장르적 특성으로 봐줘야겠지. 영화로 잘 만들면 제대로 된 코미디 한 편이 나올 것 같긴 하다.


4. 라쎄 린드의 할로 서울(라쎄 린드, 김지숙, 이제연 역. 이슈. 2011. 273쪽)
: 스웨덴 뮤지션 라쎄 린드의 한국 이야기. 순진하고 귀엽다. 한국의 단점보다 장점을 더 크게 봐주는 게 고맙기도 하고. 물론 외국인이기에 이해하는 방향이 다르기도 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따뜻하고 긍정적인 시선이 정말 좋았다. 편안하고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에세이.


5. 판타스틱 개미지옥(서유미. 문학수첩. 2007. 239쪽)
: 욕망에 휘둘리는 인간들의 천태만상이 세일 기간 동안의 백화점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상처받지 않을 권리>의 두번째 장 속 파리의 아케이드를 소설로 압축시켜 놓은 듯한 책. 서로의 욕망을 부추기고 그 욕망에 기꺼이 빠져 허우적거리면서도 그 곳이 지옥이라는 진실조차 외면하는 개미들의 모습을 보며 난 저 정도는 아냐, 라고 자신을 위로하지만 이 자본주의의 논리를 박차고 나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시도하지 않는 한, 소설 속 그녀들과 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6. 좌절금지(이지민. 랜덤하우스중앙. 2004. 340쪽)
: 깜찍한 외모와 톡톡 튀는 성격으로 잘 나가는 어린이 모델이었지만 지금은 별볼일 없는 백수인 락희. 도무지 여성적인 데라고는 없는 외모에다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서 버림 받고 괴팍한 외할머니 밑에서 사랑 없이 자랐지만 갑자기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아 공주같은 생활을 하게 된 덕주. 이 두 전, 현직 공주가 나름대로 이 풍진 세상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는 이야기.

전반적으로 재미는 있었지만 뭔가 알맹이가 빠진 느낌. 무엇보다 덕주의 캐릭터가 좀 흐릿했다. 덕주가 재산으로 갖게 된 자신감이나 어릴 때부터 차곡차곡 쌓인 외로움이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 느낌이다. 결론도 희망을 얘기하긴 했으나 글쎄. 남에게 온 문자 메시지로 희망을 갖는 건 좀...


7. 참 쉬운 인생(케이 기본스, 이소영 역. 작가정신. 2011. 360쪽)


8. 사막(르 클레지오, 홍상희 역. 문학동네. 2008. 484쪽)


9. 10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줄리언 반스, 신재실 역. 열린책들. 2006. 446쪽)
: 모든 사건의 중심에는 사실 나무좀이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인간의 역사라고 알고 있는 이 모든 이야기들이 사실은 타자의 역사인지도 모른다.

맹목적인 종교적 신념과 오만한 착각 속에서 인간이 내린 판단은 모두 틀렸을 지도. 어쩌면 나무좀의 평가가 가장 전지구적이며 객관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은 인간의 편일 것이다. 인간에 의해 정의되었으므로.


10. 벼룩, 루시카(마리아순 란다, 유혜경 역. 책씨. 2005. 127쪽) - 전자책
: 아기 벼룩 루시카. 태어나자마나 안정적인 삶의 터전(떠돌이 개 카루소)을 엄마 아빠가 정해줬지만 발레리나가 되고 싶은 꿈을 버릴 수는 없다. 모기에게서 러시아의 벼룩들은 모두 발레리나라는 말을 들은 후 러시아로 떠나는데...

짧은 인생일지라도, 아니 짧기 때문에 더더욱 낭비할 시간은 없으니 꿈을 향해 나아가라는 교훈을 얘기하는 우화이다. 일하는 틈틈이 기분전환용으로 읽었다. 하지만 교훈을 실천한 맘은 그다지.


11. 그녀와 그녀의 뚱보(이상화. 퇴근길. 2011. 156쪽) - 전자책
: 뭔가 있겠지 하는 맘으로 읽다 보니 끝나버린 책.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심지어는 별다른 내용도 없다. 가난한 고시생이 뚱뚱하지만 성격 좋고 공포소설가로서 능력도 뛰어난 여자친구 집에 얹혀 살게 된 이야기.


12. 티타티타(김서령. 현대문학. 2010. 310쪽)
: 악보는 커녕 계이름도 모르는 여섯 살 짜리 소녀 둘이 한달 안에 피아노 학원 발표회 무대에 서기 위해 연습한 젓가락 행진곡. 나란히 피아노 앞에 앉아 나란히 틀린 음을 짚던 이 두 소녀는 아기 때부터 뭐든지 나란히 했다. 키도 다르고 성격도 달랐지만 늘 같은 머리 모양을 하고 같은 책을 읽고, 늘 함께였던 이 두 친구가 서로에게서 독립을 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이 작가의 전작 단편집이 꽤 무거웠던 걸로 기억해서 살짝 긴장한 채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 외로 발랄했다. 마치 피아노 소품처럼. 피아노 연탄곡들이 다 그렇긴 하지만 젓가락 행진곡은 음 하나를 잘못 짚으면 연속으로 듣기 싫은 불협화음이 난다. 멜로디가 단순해서 잘못치면 더더욱 신경을 거슬리는 이 곡을 난 어릴 때에도 그닥 재미있어하지 않았다. 프리모를 맡으면 지루했고 세컨다는 손 끝이 아팠다. 하지만 나와는 달리 이 곡과 피아노를 재미있어하고 떨어져 있을 때에도 피아노 연주로 소통하던 소연과 미유의 이야기는 잘 치는 연탄곡 같았다. 다만 불협화음이 뻔히 예상가능했던 건 옥에 티.


13. 너 어디 있니?(마르크 레비, 김운비 역. 북하우스. 2005. 343쪽)


14. 댄스(파올라 잔논네르, 김효정 역. 대교출판. 2007. 266쪽) - 전자책
: 열네 살 로빈. 먼 나라에서 구호 활동 중인 엄마와는 엄마 쪽에서의 일방적인 이메일로 연락할 뿐, 소통은 없다. 아빠와 할아버지와 함께 살지만 아빠에게서 뭔가를 기대하는 건 무리고, 그나마 할아버지가 남자애처럼 짧은 머리에 힙합 패션을 하고 공터에서 춤추는 걸 좋아하는 로빈을 이해해 줄 뿐. 할아버지에 의해 댄스 학원에 등록한 로빈은 거기서 발레를 배우는 귀도라는 소년을 만나게 된다.

진도가 쉽게 나가지는 않았지만 나쁘지는 않았던 성장 소설이었다. 로빈의 변화와 성장은 전형적이긴 했지만 그 전형성 때문에 기대를 하고 계속 읽을 수 있었다. 다만 미숙한 어른들 - 아빠와 엄마 - 은 좀 아쉬웠다. 아빠는 제자리 걸음이었고, 엄마의 변화는 그저 변덕 같았다.


15. 마이 코리안 델리(벤 라이더 하우, 이수영 역. 정은문고. 2011. 431쪽)
: 맨해튼 토박이 청교도 집안에서 자란 백인 사위와 산전수전 다 겪은 이민 1세대 장모가 함께 델리(편의점)를 운영하며 진짜 가족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에세이. 정말 재밌게 읽었다. 단순히 문화충격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뼛속부터 다른 두 사람이 부딪칠 거야 예상했던 대로 였고 백인 사위가 추진력 강하고 뭐든 직접해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 장모와 아내에게 휘둘릴 것도, 또 우리 방식의 정에 길들여질 것도 알고 있었지만 이 책에는 그들 외에도 매력적인 사람들이 가득하다. 늘 파티를 즐기면서 일하는 것처럼 보이려 하는 보헤미안 조지, 공격성 있는 아우라로 델리 안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터줏대감 직원 드웨인, 그리고 밤이면 델리 안의 TV 앞으로 모여드는 단골들. 결말이야 조금 쓸쓸하긴 하지만 델리보다 훨씬 더 풍요로운 혹은 파괴적(?)인 일을 시작했으니, 다시 또 시작인 것이다.


16.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박완서 외. 현대문학. 2010. 286쪽)
: 9명의 작가가 얘기하는 '소설쓰기'. 박완서, 이동하, 윤후명, 김채원, 양귀자, 최수철, 김인숙, 박성원, 조경란. 김인숙 외의 작가들은 작가 자신의 것으로 읽히는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건 김인숙의 <해삼의 맛>.


17. 런던탑, 동물원 그리고 거북이(줄리아 스튜어트, 안진이 역. 현대문학. 2010. 412쪽)


18. 설계자들(김언수. 문학동네. 2010. 422쪽)


19. 눈 오는 아프리카(권리. 씨네21북스. 2009. 469쪽)
: 유명 화가인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 유품 중 아버지의 유일한 자화상이 가장 주목을 받지만 곧 아버지의 불륜 상대에 의해 위작 논란에 휩싸인다. 이에 재수생인 유석은 우연히 만난 일본인 쇼타와 함께 쇼타는 형을 찾으러, 유석은 아버지의 자화상을 찾으러 전세계를 떠도는 이야기.

아버지가 죽기전 작업을 위해 캔버스 위에 실버 화이트 색을 발라 놓은 걸 본 유석은 그것에 '눈 오는 아프리카'라는 제목을 붙이고 내내 들고 다니며 그 위에 그림을 그리고, 젯소로 덮어 지운 뒤 다시 그림을 그린다. 끊임없이 그려지는 그림과 끊임없이 변하는 유석. 계속 바뀌는 목적지와 진품과 위작의 모호한 경계. 예술에 대한 수다와 두 청년의 계속되는 다툼과 이별과 재회. 정신없었지만 재미있었고, 많이 자란 유석은 기특했다.

비록 아버지의 서재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떠나야했던 거리만큼 자라지는 못했을 지언정, 그리고 돌아온 현실이 반짝거리지는 않을 지언정 앞으로 가야하고 또 갈 수 있는 길이 충분히 단단하리라는 마지막 장면이 아름다웠던 책.


20. 토끼와 함께한 그 해(아르토 파실린나, 박광자 역. 솔출판사. 2007. 214쪽) - 전자책
: 40대 기자의 일탈기라고나 할까. 기자 바타넨은 출장을 다녀오던 길에 동료에 의해 상처입은 어린 토끼를 안고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동료는 계속 그를 부르지만 멍하니 숲 속 호숫가에 앉아 있던 바타넨은 동료가 차를 몰고 가버린 후에도 헬싱키로 돌아가지 않고 토끼를 안은 채 핀란드 전역을 돌아다닌다.

가벼운 맘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의외의 풍자가 녹아 있는 블랙 코미디였다. 읽으면서 내용이 긴밀하게 짜여있지 않고 성긴 느낌이라 의아했는데, 책 끝부분에서야 화자인 작가 자신이 등장하여 바타넨 본인으로부터 들은 '사실'임을 밝혔고 그제서야 이런 엉성한(?) 문체가 이해되었다. 마치 전에 들었던 놀라운 얘기를 지인과의 수다 중에 풀어놓은 듯한 느낌. 번역과 교정은 아쉬웠다.

by 달을향한사다리 | 2012/06/01 15:18 | Yujin's Book Story | 트랙백 | 덧글(8)
Commented by 춤추는 나무 at 2012/06/01 15:44
저 <마이 코리안 델리> 넘재밌게 읽었었어요. 하하하 웃으면서. 유쾌하기도 하고 좀 씁쓸하기도 하고. 리뷰써야지 써야지 하다 안썼는데 사다리 님 글에서 보니 반갑네요~!^^
Commented by 달을향한사다리 at 2012/06/04 13:31
<마이 코리안 델리> 진짜 재밌죠? ㅋㅋㅋㅋ 저두 계속 킥킥대며 읽었어요^^ 근데 장인어른은 좀 많이 짠하더라구요....
Commented by 당고 at 2012/06/01 16:44
라쎄 린드, 신촌 살았잖아요 ㅎㅎㅎㅎㅎㅎㅎㅎ
가끔 눈에 띄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Commented by 달을향한사다리 at 2012/06/04 13:32
아~ 이사하시기 전 옆동네 주민이었군요! ㅋㅋㅋㅋㅋ
Commented by bawbee at 2012/06/07 13:46
저도 마이 코리안 델리에 한 표!!!
Commented by 달을향한사다리 at 2012/06/07 14:19
재밌죠? ㅋㅋㅋㅋㅋ 소재도 신선했고, 좋았어요^^
Commented at 2012/06/12 04:1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달을향한사다리 at 2012/06/12 12:07
오~ 지금 알라딘에서 검색해 봤는데, 진짜 기대되요! 추천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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