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진 리스



가여운 앙투와네트의 독백.

어린 앙투와네트를 읽을 땐 초조했다. 아픈 동생만 챙기는 엄마에게 자꾸만 달라 붙는 앙투아네트가 왠지 연약하고 무기력한 엄마처럼 될 것만 같아서 – 물론 앙투아네트의 운명을 모른 채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

앙투아네트의 결혼생활은 나를 화나게 했다. 너무도 천진하게 죽으라는 말만 하면 죽겠다고 얘기(135쪽)하는 그녀 때문에, 자꾸만 그녀를 이방인이라 되뇌며 그녀의 이름을 바꿔 부르는 그녀의 남편 때문에, 떠나간 크리스토핀 때문에, 그리고 멍청한 아멜리와 더러운 다니엘 때문에.

영국에서의 앙투아네트가 차라리 맘에 들었다. 몰래 칼을 사고, 열쇠를 훔쳐 초를 들고 집안을 배회하는 그녀가. 모두가 미쳤다고 하는 그녀가.

어릴 적 읽었던 <제인 에어>에서의 버사는 괴물이었다(사실 난 그녀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했다). 난 그녀가 무서웠다. 하지만 앙투아네트는, 손으로 촛불의 바람을 막으며 캄캄한 길을 걷는 앙투아네트는, 지붕 위에서 날개처럼 머리칼을 날리는 앙투아네트는 차라리 현명하다. 이런 앙투아네트를 알게 해 준 작가가 고맙다.


by 달을향한사다리 | 2012/03/30 11:11 | Yujin's Book Story | 트랙백 | 핑백(1) | 덧글(4)
Linked at 타인에게 말걸기 : 3월의 독.. at 2012/04/02 14:31

... 처럼 멸망하기 직전의 순간까지 '더 나은 정신 작업'에 몰두하는 존재로의 변화를 의미한다면 난 그냥 지금의 아둔한 상태로 머물고 싶다. 14.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진 리스, 윤정길 역. 펭귄클래식코리아. 2008. 287쪽) 15. 쇼샤(아이작 B. 싱어, 정영문 역. 다른우리. 2004. 400쪽) : 랍비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하시디즘 환경 속에서 ... more

Commented by dreamout at 2012/03/31 21:55
제목이 굉장히 스텍터클(?) 해서 왠지 손에 잡기 어렵더군요.. ㅋ
Commented by 달을향한사다리 at 2012/04/02 14:45
정말 광막~하죠ㅋㅋ 저도 사놓고 6개월은 묵혔나봐요;; 근데 막상 읽기 시작하니 정말 재미있었어요^^
Commented by 당고 at 2012/04/02 12:21
아, 저 이거 예전에 제대로 번역 안 되어 있을 때 영어로 읽다가 죽을 뻔했어요 ㅋㅋㅋ 다행히 옛날옛적에 나온 번역본을 찾아서 금세 읽을 수 있었죠. 저는 원래 <제인 에어>를 읽을 때부터 로체스터를 싫어했어서 이 얘기에 확 공감이 되더라고요. 그러고도 남을 남자야, 라고나 할까.
Commented by 달을향한사다리 at 2012/04/02 14:47
영어라니...@.@ ㅋㅋㅋ 저도 예전에 <제인 에어>읽을 때 제인이 왜 그렇게 로체스터에게 목매는지 잘 이해가 안 됐던 기억이 나요. 이 책 해설 읽고 나니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가더라구요. 이 책에서의 로체스터는 정말 밉상이에요, 그쵸?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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