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독서 목록

1. 실비와 브루노(루이스 캐럴, 이화정 역. 해리 퍼니스 그림. 페이퍼하우스. 2011. 440쪽)
: 요정의 세계와 현실 세계를 넘나드는 화자의 시선에 비친 요정 실비와 브루노, 그리고 인간 뮤리엘 백작 영애와 아서 포레스터의 이야기. 역자도 얘기했듯, 이 소설 속의 세계는 현실 세계와 요정나라(Fairyland/Outland)가 소리 - 벽장 문이 쾅 닫히는 소리나 기차 역장의 구호 등-로 연결되어 있어 화자는 요정 세계를 들여다보고, 결국 실비와 브루노가 현실 세계에도 등장하는 '자기 머리 위로 걸어가는 악어' 같은(=뫼비우스의 띠 같은) 세계이다.

아버지를 찾아가는 실비와 브루노의 천진난만한 여행과 뮤리엘을 짝사랑하는 아서 포레스터의 간절하고도 안타까운 현실의 교차가 흥미진진했다. 그리고 귀여운 브루노를 통한 단어유희와 발명가 교수님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생각나게 했다. 한가지 아쉬운 건, 이게 완결이 아니라는 것.


2. 상처받지 않을 권리(강신주. 프로네시스. 2009. 454쪽)


3. 네 남자를 믿지 말라(리저 러츠, 김이선 역. 김영사. 2009. 478쪽)
: 전작이 코믹 가족극이었다면 이번 작품에는 추리적 요소가 더 추가되었다. 여전히 가족의 사립탐정사무소에서 일하는 이지. 옆집에 이사 온 핸섬가이와 눈이 맞아 데이트를 시작하는데, 이 남자 뭔가 수상쩍다. 늘 잠겨있는 방과 불분명한 출생지, 본명이 아닌 게 분명한 이름. 이지는 이 남자의 뒤를 캔다, 아주 집중해서, 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난 이 가족의 유머가 정말정말 좋다. 이지의 맹목적인 집중력도, 레이의 협상 습관도, 올리비아의 엄마답지 않은 냉정함과 알버트의 비밀도 귀여웠다. 사실 목표물(=핸섬가이 존 브라운)의 비밀은 일찌감치 눈치챘지만, 이 책의 매력은 스릴러와 긴장감이 아니니까. 주말에 잡생각없이 쉬고 싶을 때 킥킥거리며 쓱싹 읽을 수 있는 부담없는 책이었다.


4. 기린의 눈물(알렉산더 매콜 스미스, 이나경 역. 북@북스. 2004. 262쪽)
: 십년 전 실종된 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다는 백인 여성. 음마 라모츠웨는 마테코니씨와의 결혼을 준비하며, 또 다른 소소한 사건들을 겪어가며 이 사건을 수사한다.

아, 이 책을 읽으며 난 보츠와나에서 살고 싶어졌다. 비록 건기에는 자동차가 갈색 벨벳을 뒤집어 쓴 것처럼 먼지에 뒤덮이고 나무 그늘 아래에 주차해 두지 않으면 좌석이 뜨거워져 만질 수도 없고, 닭들이 뻔뻔하게 뒤뚱거리며 사무실로 들어와도 말이다. 이 작가는 정말 어쩜 이렇게 잘 썼는지. 아프리카를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시선이 읽는 내내 날 따뜻하게 했다. 다른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는 게 먼저라는 음마 라모츠웨는 정말 지금까지 탄생한 모든 사립탐정 중 최고이다.


5. 블랙베리 와인(조안 해리스, 송은경 역. 문학동네. 2006. 462쪽)


6. 미인의 가면(알렉산더 매콜 스미스, 이나경 역. 북@북스. 2006. 277쪽)
: 음마 라모츠웨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비록 사무실 재정난은 더 심해졌고 약혼자는 우울증에 걸렸지만 말이다.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그녀는 할 일을 한다. 적절한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도움을 주고. 의뢰인이 맡긴 일을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여 사건의 해결 뿐 아니라 의뢰인의 마음을 풀어주는 일까지. 읽을 수록 보츠와나에서 바츠와나족으로 살고 싶다는 맘이 커졌다. 이런 언니와 함께 말이다.


7. 영원을 위한 7일(마르크 레비, 박철화 역. 문학세계사. 2007. 304쪽)
: 신과 악마가 22세기 세상의 지배권을 놓고 7일간 한판 승부를 벌인다. 이 승부를 위해 각자 최정예 요원인 천사 조피아와 악마 루카스를 투입하는데, 이 둘이 그만 사랑에 빠져 버렸다. 둘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도, 정반대되는 서로의 성향 때문에 하는 갈등도 그다지 잘 서술되어 있지 않지만 - 뭔가 설렁설렁 넘어가는 느낌이다 - 재미있게 읽었다. 그냥 아주 착한 여자와 아주 나쁜 남자의 사랑 이야기. 루카스도 조피아도 그닥 매력적이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도 너무 평범해서 좀 시시했지만 렌과 쥘의 이야기는 아름다웠다. 이 작가의 책은 이렇게 기분전환용으로 읽으면 딱 좋을 듯.


8. 현금 수송차를 털어라(이안 레비전, 이경식 역. 휴먼&북스. 2009. 388쪽)
: 개발 가능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지방 소도시에서 그럭저럭 벌어먹고 사는 세 명의 루저 이야기. 미치는 이 조그만 옛 탄광도시 월튼의 유일한 대형마트 자동차 부품코너에서 일하지만 상사를 조롱하다 잘리고, 우유부단한 약물중독자 더그는 작은 식당에서 냉동식품을 데우는 '요리'를 하면서 헬리콥터 조종사, 아동문학가 등등 될 수 없는 모든 직업을 꿈꾸지만 식당마저 예고 없이 문을 닫아버렸다. 셋 중 유일하게 집과 아내, 딸이 있는 케빈은 지하실에서 마리화나를 기르다 체포되어 전과자가 되고, 개 산책시키는 일로 근근히 먹고 산다. 이 세 절친들이 42인치 TV, 페라리를 거쳐 현금수송차 절도에까지 도전하는 블랙 코미디. 부자가 되길 바라는 것도 아닌, 그저 먹고살 돈 조금만 있으면 되는 이 세 루저의 지질함이 유머러스하면서도 능청스럽게 그려져 있다. 재미있었다.


9.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장은진. 문학동네. 2009. 294쪽)
: 단숨에 읽었다. 읽으면서 내내 난 와조와 함께 길에 있었다. 편지는 오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내가 쓸 수 있었으니까. 마지막에는 펑펑 울었다. 역시 와조 때문에, 그리고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편지 때문에.

책 뒷부분 작가 인터뷰에서 작가는 '책을 사서 읽으니 그 내용도 내 것 같'다고 했다. 난 이 작가 책 몽땅 다 살 거다. 사서 읽을 거다.


10. 사랑의 미래(이광호. 문학과지성사. 2011. 352쪽)
: 사실은 연말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이런저런 심란한 일이 생기니 머릿속에 하나도 안 들어와서 덮었다가 다시 읽은 책이다. 제목은 <사랑의 미래>지만 미래가 아닌 과거를 더듬는다. 그와 그녀의, 각각의 시선으로. 그와 그녀는 한 명의 남성과 한 명의 여성일 수도 있고, 여러 명의 남성과 여러 명의 여성일 수도 있으며 그와 그녀가 단 한 명일 수도 있다. 가끔은 나이기도 했고, 또 어떤 글에서는 내 과거의 연인이거나 그냥 모르는 누군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도 여전히 사랑은, 사랑의 미래는 모르겠다. 하긴 안다고 말하면 그건 그냥 자만이겠지.


11. 프로이트의 의자(정도언. 웅진지식하우스. 2009. 284쪽)
: 정신분석학 입문서. 전반부에는 프로이트 이론의 기초가 요약되어 있고 후반부에는 각종 심리적인 문제들을 풀어갈 수 있는 팁이 서술되어 있다. 하지만 일단 입문서 수준이라 깊이 있는 이론 소개는 아닐 뿐더러 뒷부분은 자기계발서 같은 분위기도 살짝 풍긴다. 조각조각 알고 있던 것을 모아서 정리해 주었다는 점에서 내게는 꽤 도움되었던 책이다. 하지만 가장 좋았던 건 각종 심리학 서적들을 소개해 준 맨 뒤의 부록.


12. 뭐라도 되겠지(김중혁. 마음산책. 2011. 352쪽)
: 소설가 김중혁의 솔직, 귀여운 에세이. 재미있다. 소리에 엄청나게 예민한데도 불구하고 기억력이 좋지 않아 성격 좋은 채 살아갈 수 있는 이 유쾌한 남자가 해주는 이야기는 설렁설렁한 제목에도 불구하고 실없지는 않다. 시간을 아껴쓰기 위해, 재능을 발견해내고 연마하기 위해, 뭔가를 이루기 위해 아둥바둥 살 필요 없다. "버티다 보면, 뭐라도 되"(73쪽)는 거니까. 이런 초긍정의 자세야말로 이 멋진 세상에 대한 보답이자 복수일 것이다. 그래, 계속 읽으면서 버티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안 되면 말고.


13. 황금용 왕국(이사벨 아옌데, 권미선 역. 비룡소. 2005. 452쪽)
: 미래를 예언해 주는 황금용이 있다는 히말라야 산맥의 한 왕국. 탐험작가인 케이트는 이번에도 알렉스와 나디아를 데리고 이 왕국으로 취재를 간다. 한편, 세계 두 번째 부자인 수집가는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기 위해 이 황금용을 손에 넣으려는 계획을 진행하기 시작했는데...

전반적으로 전편과 동일한 서사구조이지만 아옌데의 상상력과 이야기 솜씨는 한층 더해진 듯 하다. 전편에서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외지인과 협력해야만 하는 안개족 처럼,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금지된 왕국 또한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청소년 소설이지만 단순히 이야기의 재미를 넘어 전통의 유지와 변화의 방법 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멋진 책이다.


14. 루소의 개(데이비드 에즈먼드, 존 에이디노, 임현경 역. 난장. 2011. 413쪽)


15. 그레이브야드 북(닐 게이먼, 나중길 역. 노블마인. 2009. 356쪽)

by 달을향한사다리 | 2012/02/01 14:04 | Yujin's Book Story | 트랙백 | 덧글(4)
Commented by 춤추는 나무 at 2012/02/01 14:18
우와 이렇게 많은 책을 읽으셨다니!
저도 음마 라모츠웨 시리즈 읽으면서 왠지 모를 보츠와나에 대한 동경 같은 게 느껴졌었죠. 근데 나중에 다른 책을 읽다가 보츠와나의 아내 폭력과 성폭력이 굉장히 심각한 사회문제라는 걸 읽고 약간 충격을 받았더라는... -_-;;
Commented by 달을향한사다리 at 2012/02/02 14:10
하긴 음마 라모츠웨 전남편도 나쁜놈이었죠... 음마 라모츠웨를 보면서 감정이입을 너무 했나봐요. 보츠와나에 가면 라모츠웨처럼 살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을 했나봐요ㅋ

설날 연휴가 있어서 많이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Commented by 당고 at 2012/02/01 15:36
<뭐라도 되겠지> 땡겨요. 좀 희망적인 게 읽고 싶다는.

장은진 책은 전 좀 밋밋하게 읽었는데 확 꽂히셨군요. 독서는 역시 읽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 많이 좌우되는 것 같아요.
Commented by 달을향한사다리 at 2012/02/02 14:16
<뭐라도 되겠지> 재밌어요^^ 은근 생각할 거리도 좀 던져주고요...

장은진 책 어찌보면 나름의 반전이나 메시지가 약하다고 할 법도 한데 제가 그 때 맘이 좀 약해져 있긴 했나봐요. 아마 다음 번에 이 책을 다시 읽거나 이 작가의 다른 책을 읽을 때 그만큼 감동받긴 힘들 수 있지만 그래도 이 작가는 어지간하면 계속 좋아할 것 같아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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