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독서 목록

1. 캉탕(이승우. 현대문학. 2019. 239쪽)


2. 무엇이든 가능하다(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정연희 역. 문학동네. 2019. 359쪽)
: 『올리브 키터리지』와 비슷한 느낌의 연작 소설집.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의 루시 바턴이 어릴 때 살던 마을의, 루시 바턴과 연관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중간에 루시 바턴도 등장한다). 마치 루시 바턴의 이야기가 구체화되는 느낌이라서 이 책을 그 책보다 먼저 읽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이야기 각각의 화자들은 나름의 고통과 비밀과 약점을 갖고 있고 그걸 지그시 누르거나 솜씨좋게 감추며 살아간다. 이 필부필부들 어느 누구도 특별히 더 혐오스럽거나 안타깝지 않다. 그저 이게 인생이려니 할 뿐.


3. 트렁크 뮤직(마이클 코넬리, 한정아 역. 랜덤하우스코리아. 2011. 561쪽)
: 해리 보슈 시리즈 5편. 언덕에 세워져 있던 자동차 트렁크에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피해자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운영하며 조직폭력배들의 검은 돈을 세탁해주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밝혀지고, 때문에 트렁크 뮤직 - 조직에서 눈엣가시를 제거하는 것 - 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해리의 직감은 다른 곳으로 향한다.

역시나 스케일이 작진 않다. 라스베거스와 LA를 오가며 3인형사 체제의 리더로서 수사를 진행하는 해리. 전편에서 업무를 쉬었던 탓에 이번 편에서 더욱 의욕적이다. 작가의 글은 점점 TV시리즈를 의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게 느껴지지만 이 매력적인 형사는 계속 날 끌어당기고 있다.


4. 그날의 비밀(에리크 뷔야르, 이재룡 역. 열린책들. 2019. 171쪽)
: 2차 세계대전은 히틀러나 괴벨스만의 책임은 아니다. 전쟁이라는 비극을 일으킬 상황을 만들고 잘못을 외면하고 콩고물을 주워먹은 수많은 조력자와 부역자들이 있었다. 이 책은 이 인류의 비극이 시작되기 직전의 유럽을 배경으로 전쟁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었던 상황과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전쟁의 참혹함을 대놓고 말하지는 않을 뿐 아니라 건조한 문체로 마치 르포르타쥬처럼 덤덤하게 상황을 보여줄 뿐이지만 행간에서 읽히는 인간의 이기심은 소름이 돋는다. 짧지만 강렬했다.


5. 소설 보다 - 여름 2019(우다영 외. 문학과지성사. 2019. 146쪽)
: 세 편 모두 나쁘진 않았지만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이 가장 좋았다. 꿈인듯 아닌듯, 전생인듯 현생인듯. 사실 뒤의 두 편은 별로 기억에 남지 않는 평범한 한국 단편 같았다.


6. 오래전 멀리 사라져버린(루 버니, 박영인 역. 네버모어. 2019. 557쪽)
: 1986년 오클라호마시티의 작은 마을. 극장 마감시간에 무장강도들이 들이닥쳐 딱 한 명을 제외한 모든 직원을 죽인다. 그리고 얼마 뒤 열린 박람회에서 아름다운 여고생이 실종된다. 26년 후, 사립 탐정 와이엇은 지인의 의뢰로 오랫동안 발길을 끊었던 고향으로 향하고, 간호사 줄리애나는 언니 실종 사건의 용의자였던 남자가 출소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때로는, 아니 자주 진실은 아프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과거의 진실은 더. 때로는 묻어야 하는 진실. 그걸 파헤치고 싶어하는 심정은 알 것도 모를 것도 같다. 다만, 진실을 알아야 편히 잠들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 어떤 진실은 영원히 밝혀지지 못한다는 건 알고 있다. 범죄소설인 듯 하지만 훨씬 더 깊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금 이 곳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생존자이고,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과 의무 - 잘 살아야 한다 - 를 견뎌야만 하는 것이다.


7. 세계는 읽을 수 없이 아름다워(염승숙. 문학동네. 2019. 288쪽)
: 사건이 일어나고, 수습된 그 후의 이야기들...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까. 굳이 소설집을 관통하는 주제를 찾아서 적어야 한다면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건들은 대부분이 이별이다. 이별 후 (오랜) 시간이 지나면 남겨진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신파 같지만 이건 그냥 후일담이다('후일담 소설' 할 때의 그 후일담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의 뜻으로). 어찌됐든 살아가는 우리들의.

가장 좋았던 건 소설집 제목의 문장이 들어있는「추후의 세계」. 「충분히 근사해」도 좋았다.


8. 수영하는 여자들(리비 페이지, 박성혜 역. 구픽. 2018. 407쪽)
: 도서관 서가에서 계속 눈에 밟혔는데 뻔한 이야기일 거라 생각해서 외면하다가 휴식이 필요할 때 집어들었다. 런던 외곽의 브릭스턴. 작은 마을 신문사에서 일하는 케이트는 마을의 공공 야외 수영장 리도가 곧 폐쇄될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를 막기 위해 여든 여섯 살의 로즈메리가 만든 전단지를 본 후 로즈메리를 인터뷰하기로 한다.

짐작대로 뻔하긴 했지만 그래서 편안했다. 케이트 캐릭터가 좀 약하긴 했지만 로즈메리의 사랑 얘기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작가는 분위기를 다운시키지 않으면서 - 그렇다고 이 소설이 밝고 명랑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해피엔딩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 자본주의 논리에 의해 무너져 가는 공동체의 가치와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이야기한다. 결말이야 모두 짐작하는 대로 어쩌면 조금은 동화같고 비현실적일 지도 모르지만, 과도하게 작위적이거나 드라마틱하지는 않고 꽤 탄탄하다. 재밌었다.


9. 닭다리가 달린 집(소피 앤더슨, 김래경 역. B612북스. 2018. 378쪽)
: 마랑카의 집에는 닭다리가 달렸다. 한 곳에서 충분히 머물렀다 싶으면 한밤중에 벌떡 일어나 달려 다른 곳에 가 앉는다. 이 집에서 바바야가 할머니와 마랑카는 뼈 울타리의 등을 켜 죽은 자들을 집으로 들여 저승문으로 인도한다. 하지만 마랑카는 보통 인간의 삶이 그립다.

러시아 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동화적이고 이국적이다. 결말까지 그렇다. 기대했던 만큼 환상적이지는 않지만, 그리고 열 두 살 소녀의 반항심이라든가 곁에 있는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는 과정과 이를 되찾기 위한 모험 등등이 어쩌면 전형적일 수도 있지만 이국적인 분위기와 재치있는 디테일이 이를 충분히 상쇄한다. 재밌었다.


10. 키친하우스(캐슬린 그리섬, 이순영 역. 문예출판사. 2013. 479쪽)
: 18세기 미국 버지니아 주 담배농장. 백인 소녀 라비니아는 키친하우스의 흑인 노예 벨에게 맡겨진다. 부모를 잃었다는 것도 자신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라비니아는 키친하우스 노예인 벨과 마마 마에, 파파 조지 그리고 또래인 비키, 파니와 한 가족처럼 자란 라비니아. 하지만 백인이란 이유로 빅하우스(주인집) 마님의 언니네 집으로 보내져 교육을 받게 된다.

농장주의 혼혈 사생아 벨과 고아이자 계약노예인 백인 라비니아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사실 어릴 때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시작으로 미국 남부의 흑인 노예의 이야기를 꽤 읽었지만 백인 노예 이야기는 처음이다. 그 존재도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두 소녀의 삶이 엇갈리는 만큼 각자가 마주하는 진실도 달라진다. 많은 오해 속에서 최악은 피했지만 차악을 선택한 라비니아. 사실 이 책 속의 수많은 비극과 얽매인 삶 중 라비니아는 그나마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삶을 힘겹지만 끌어간다고 할 수 있다. 그래, 그게 인생이지. 결말에서 많은 것들이 정리되긴 하지만 이걸 과연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을까. 희망을 보여주긴 했지만 너무 많은 죽음이 있었다. 그래도 이 작가의 차기작을 기다린다.


11. 숨(테드 창, 김상훈 역. 엘리. 2019. 518쪽)
: 작가의 전작 기저에 흘렀던 따뜻함을 기억하고 있기에 읽었다. 확실히 잘 쓰는 작가이다. 하지만 난 아직도 sf에 대한 공력이 부족한 듯. 표제작은 많이 낯설었다. 그래도 작가가 하려던 이야기는 - 내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 동의한다. 삶은,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12. 스테파니 메일러 실종사건(조엘 디케르, 임미경 역. 밝은세상. 2019. 727쪽)
: 두께에 비해 가독성이 좋다. 은퇴를 앞둔 형사 제스에게 스테파니 메일러가 찾아온다. 많은 살인범들을 잡아들여 '100퍼센트 반장'으로 불리는 제스에게 그 시발점이 된 20년 전 오르피아의 4인 살인사건의 범인이 사고사로 죽은 그 사람이 아니라는 것. 오르피아에서 기자로 일하는 스테파니 메일러는 그 뒤 실종되고, 제스는 20년 전의 파트너 데렉과 함께 재수사에 들어간다.

20년 전의 연극제와 현재의 연극제, 현재의 수사와 20년 전의 사건 이야기가 교차되며 아주 조금씩 퍼즐이 맞춰진다. 난 이런 퍼즐맞추기를 잘 못하긴 하지만 이 책은 그 과정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잘 만들어진 영화를 집중해서 보는 느낌. 사실 범인도 끝까지 모르기는 했지만 그래도 재밌었다. 작가가 좀 많이 숨기기는 했지만. 두께 때문에 망설였던 이 작가의 다른 책들도 얼른 읽어봐야겠다.


13. 레몬(권여선. 창비. 2019. 205쪽)
: 누구보다도 아름답고 또 세상에 무심했던 고등학생 언니가 살해당한 후 다언은 특유의 웃음을 잃고 언니처럼 아름다워지기 위해 성형을 하며 흘러가듯 살다, 8년이 지난 후 주요 용의자였던 한만우를 찾아간다.

작가의 전작들에 비해 여백이 많았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조금 낯설었달까. 그래도 행간에서 배어나오는, 작가 특유의 쓸쓸함 사이의 작은 따스함은 좋았다. 한만우 집에서 먹었던 계란 프라이의 노른자 같은.


14. 맨해튼 비치(제니퍼 이건, 최세희 역. 문학동네. 2019. 672쪽)
: 대공황 후 1934년 뉴욕. 열 한 살 애너는 아빠를 따라 덱스터의 저택에 간다. 아빠 에디가 덱스터에게 일자리를 부탁하려던 것. 8년 후, 애너는 엄마, 지체장애인 여동생과 함께 살며 해군공창에서 선박부품을 측정하는 일을 하며 살고, 아버지는 사라진 지 오래다. 전쟁으로 징집되는 남자들의 빈자리가 커지는 가운데에서도 중요한 작업은 절대 여자를 고용하는 않는 분위기가 만연한데, 애너는 다이버에 지원한다.

이 작가의 그간의 모든 소설들 중 가장 전통적(?)이면서도 가장 좋았다(물론 『인비저블 서커스』를 다시 읽으면 또 바뀔 수도 있다). 누구보다도 강인한 애너가 좋았다. 비록 순간의 잘못된 선택을 하긴 하지만 그 선택의 결과도 수용할 줄 아는, 씩씩한 애너가. 애너 뿐 아니라 주어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과감한 발걸음을 내딛은 덱스터와 나름의 방법으로 가족을 지키고자 했던 에디도, 읽을 땐 좋아하지 않았지만 책장을 덮고 나니 안쓰러웠다. 애너가 개척해나가는 자신의 인생 이야기가 전면에 내세워져 있지만 당시의 마피아와 그들이 벌인 합/불법적인 사업, 전시에 군함과 비슷한 정도로 위험에 노출되어있던 화물선들, 그리고 그 와중에서도 눈이 맞는 남녀의 이야기가 촘촘하게 짜여 유니크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정말 좋은 소설이었다.


15. 디디의 우산(황정은. 창비. 2019. 346쪽)
: 「d」와 「아무 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두 편의 중편이 실려있는데, 기대가 컸던 탓인지 아니면 내 마음 상태 때문인지... 「d」는 예전에 「웃는 남자」를 읽었어서, 「아무 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는 화자의 설명이 너무 장황해서 지루했다. 소설이 지닌 메시지에는 공감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작가는 대놓고 얘기하기보다는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소설은 좀 시끄러웠다. 화자의 목소리가 크지도 않았고 몸짓이 부산스럽거나 단어가 세지도 않았지만. 물론 말할 필요도 없는 걸 굳이 말해야만 하는 현실을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건 알지만...


16. 와일딩 홀(엘리자베스 핸드, 이경아 역. 열린책들. 2019. 310쪽)
: 고딕공포소설이라길래 읽었는데, 공포는 쥐뿔... 게다가 책 앞쪽의 인물소개와 뒷날개에 스포일러가 있어서 초반부터 김이 빠진 채 읽기 시작했다. 1970년대 영국 시골 저택 와일딩 홀에 포크밴드의 다섯 멤버가 여름을 나며 앨범 작업을 하기 위해 온다.

20여 년이 지난 후 멤버들과 주변 인물들의 회상 인터뷰 형식의 소설은 이야기의 퍼즐을 맞춰가는 재미가 있긴 했다. 하지만 말했든 공포스럽지는 않았고, 나름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구현하려고 노력은 했으나 글 솜씨의 한계가 보였다. 다만 영상을 잘 만들면 그럴 듯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기존 고딕영화들보다 뛰어나거나 새롭지는 않을 듯. 줄리언과 페넬로페 -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 가 요정의 언덕 위에 올라간 장면은 아름다웠다.


17. 앤젤스 플라이트(마이클 코넬리, 한정아 역. 랜덤하우스코리아. 2011. 543쪽)
: 해리 보슈 시리즈 6권. LA 시내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짧은 철도 앤젤스 플라이트에서 시체 두 구가 발견된다. 남자 희생자는 경찰저격수인 유명 인권변호사. 경찰의 보복살인이라는 의심 속에서 정치적으로나 인종적으로 미묘한 이 사건을 관할이 아님에도 맡을 수 밖에 없게 된 해리. 견원지간인 감찰계 형사들과 함께 수사를 시작한다.

비슷비슷한 살인사건이라도 먼젓번 이야기처럼 조폭이니 어쩌니 하며 규모를 키우는 이야기보다는 사건 자체에 주목할 수 있는 이야기가 좋다. 물론 이 사건도 경찰 비리와 인종 폭동과 사내 정치 등의 이야기가 복잡미묘하게 얽혀 있긴 했지만 난 범인이 누군지에 잡중하며 읽었고, 처음부터 의심하던 인간이 범인인데다가 그에 합당한 결말을 맞이해서 흡족했다.


18. 맨해튼의 반딧불이(손보미. 마음산책. 2019. 239쪽)
: 소품집. 난 이 작가의 이런 발랄한 상상력이 좋다. 전작 『밤의 고양이들』속 작품에 영향을 준 듯한 스케치(?)도 몇 보였고, 그게 아니래도 친숙한 듯 이국적인 느낌의 이야기들이 좋았다. 나름의 생각할 거리를 주어 여운도 짧지 않았고. 가장 맘에 들었던 건, 전작에서도 읽었던 「죽은 사람」.


19. 곰(윌리엄 포크너, 민은영 역. 문학동네. 2013. 219쪽)
: 소년은 열 여섯 살이 되었고 드디어 사냥에 합류할 수 있게 됐다. 이 숲에는 전설적인 곰 올드벤이 있고, 올드벤은 소년이 이 날만을 기다리며 사냥 무리에 어떻게든 끼어들었을 때부터 소년을 인지하고 있다. 원주민과 흑인 혼혈 노예 샘 파더스와 백인 사냥꾼 분 호갠벡, 그리고 샘이 우연히 포획한 사냥개 라이언까지, 모두가 올해에도 올드벤을 잡기 위해 모였다. 그리고 소년은 드디어 올드벤과 맞닥뜨린다.

사실 곰은 중요한 게 아니다. 이 이야기는 소년이 자라는 이야기이고 한 가문이 허물어지는 이야기이다. 3장까지는 포크너의 소설 치고는 너무나 수월하게 읽혀서 웬일인가 싶었는데 4장에서 포크너 특유의 의식의 흐름에 따른 사건 배열과 소년의 생각이 섞인다 - 내심 반가웠다. 그리고 어느 결말보다도 아름다웠던 5장의 마지막 장면. 사실 이 장면만으로도 충분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 중편이 포함되어 있다는 『Go down, Moses』를 꼭 읽어보고 싶다.


20. 크리스마스 캐럴(하성란. 현대문학. 2019. 174쪽)
: 액자 소설. 작가는 두 여동생과 크리스마스를 맞아 모여 저녁 식사를 한다. 제부와 이혼하고 지방 한정식집에서 일하는 막내가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이혼하기 전 제부가 한창 사업을 벌인다며 자본을 끌어모으고 있던 때 어느 리조트에 10일간 묵었던 이야기이다.

디킨스의 동명 소설을 염두에 두고 붙인 제목이겠지만 '크리스마스 유령'이 더 어울릴 듯. 사실 난 디킨스의 소설 제목도 늘 헷갈린다. '캐럴'인지 '유령'인지. 막내가 머무는 리조트의 황량함과 그 곳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사람들. 아무도 막내에게 주목하지 않으며 아무에게도 말을 걸 수 없는 상황. 그리고 막내의 이야기 밖, 저작권료 때문에 캐럴을 들을 수 없는 마트에서 산타 모자를 쓴 채 일해야 하는 을 조차도 못 된 병, 정의 위치에 선 사람들. 유령은 밤에만, 잠들었을 때 꿈 속에만 찾아오는 건 아니다.


21. 잊기 좋은 이름(김애란. 열림원. 2019. 303쪽)
: 작가의 첫 산문집이란다. 전반적으로 따스했다. 사실 기대보다는 평이하긴 했지만. 첫번째 챕터가 제일 흥미로웠다. 아무래도, 작가의 개인사를 작가 자신의 입으로 듣는 건 꽤나 재밌는 일이니까. 여러 작가에 대한 조금은 오글거리는 글들도 흥미로웠고 그단스크와 오시비엥침을 알게 해 준 글들도 좋았다. 하지만 중간중간 지루한 글들도 있었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길 잘한 듯.


22. 벚꽃의 우주(김인숙. 현대문학. 2019. 277쪽)
: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났던 1994년, 열 일곱 미라는 엄마를 잃는다. 단 둘 뿐이던 가족이 엄마 애인인 천문대 아저씨로 확장되려던 참에, 아저씨 직장인 천문대로 처음 올라가던 길에 사고로. 이후 혼자인 미라는 철저히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한 인생을 살았고 이런 미라에게 민혁이라는 애인이 생긴다. 그런데 프로포즈가 예상되던 불꽃놀이의 밤, 민혁은 미라에게 뜻밖의 고백을 한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를 원래도 좋아하긴 했지만 이 작품 때문에 더 좋아하게 됐다. 아니, 이 작가가 더 좋아졌다고 해야하나. 두껍지 않은 작품 속에 많은 이야기를 꾹꾹 눌러담았다. 미라의 어두움, 민혁의 어두움의 근원과 미라를 지탱하는 힘 - 미라에게 주어지는 부성애와 미라가 발산하는 모성애, 그리고 미라가 행하는 씩씩함. 미라는 근래에 읽은 소설 속 인물들 중 가장 맘에 들었다.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니고 있고 자신에게 덤비는 어두움을 온 힘을 다해 밀쳐내는. 반면 민혁은 이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 되었으면서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그저 존재만 할 뿐이다. 물론 이 이야기가 미라의 이야기여서이기는 하지만. 결말은 조금 아쉽긴 했지만 충분히 아름다웠다.

by 달을향한사다리 | 2019/12/03 16:42 | Yujin's Book Story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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