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은 새 집에서 시작했다

2016년 12월 말, 난 드디어 이사를 했다.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나만의 집으로.

사실 새해를 새 집에서 맞이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어느 정도 접고 있었다. 이사올 집은 애저녁에 결정했지만 살던 집이 빠지지 않아서. 집 보러 오는 사람들도 많았고 보러 와서는 다들 맘에 들어하는데 계약 직전에 파토가 나곤 하다보니 맘을 비우게 되더라. 그래서 부동산에 집 내놓고는 달걀도 10개씩만 사서 먹고 쌀도 엄마한테서 조금씩만 갖다 먹고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그냥 달걀 한 판 사고 쌀도 10kg 사고 나니 갑자기 집이 나갔다. 그것도 2주 안에 집을 비워달라고. 다행히 들어올 집이 비어 있어서 부랴부랴 이삿짐 센터 예약하고 이런저런 것들 정리해서 집을 뺄 수 있었다. 사실 내 입장에서도 빨리 이사하고 싶었던 터라 빠듯한 준비도 즐거웠다.

이사도 수월하지만은 않았다. 짐은 별로 없었지만 큰 책장 2개와 꽤 많은 책들이 좀 걸렸는데 책들이야 어차피 상자에 담겨 움직이는 거였지만 책장이... 사다리차에 올려서 베란다 창문으로 들어오려는데, 크기 때문에 걸려서 들어오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오래된 아파트라 엘리베이터는 너무 작아서 책장을 싣기 힘들 것 같았고. 난 급기야는 책장을 포기해야 하는 걸까, 바깥에 세워둔 채 중고가구점에 전화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까지 했는데 글쎄, 70살은 되어 보이는 몸이 작고 단단한 이삿짐 센터 아저씨가 허공에 뜬 사다리차 위에 올라가셔서 책장을 비틀어 들어서 베란다 창문으로 밀어 넣으셨다! 함께 일하시는 부인도 작게 비명을 지르셨고 나와 부모님은 가슴이 두근두근... 게다가 책장은 2개라서 그 과정이 2번. 다행히 별 탈 없이 이사를 마쳤지만 왠지 아저씨가 이렇게까지 위험을 무릅쓰신게 다 내 탓인 것 같아서 너무 죄송했다. 지금도 그 생각하면 아찔하다. 짐이 적어 오후가 되기 전에 이사는 마쳤고 점심값 명목으로 현금을 조금 더 드리기는 했지만 추가비용을 좀 더 드렸어야 했나 싶은 생각이 아직도 종종 든다.

어쨌든 지금 이 집은 정말 맘에 든다. 무엇보다 하루종일 깊숙히 들어오는 햇빛이. 정남향이라서, 앞에 공원과 산이 있어서, 조금 아래쪽에는 문화센터와 재래 시장이 있고 10분만 걸으면 지하철역이 있어서도 좋지만 난 먼젓집에서는 충분히 누리지 못했던 햇빛이 가장 좋다. 어제같은 혹한에서도 아침 햇살에 잠에서 깨서 - 아직 침실에 커튼을 안 달았다 - 속옷 위에 목욕 가운만 걸친 채로 맨다리에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며 거실 쇼파에 누워 있자니 눈물나게 행복했다. 1월에 내가 맨다리로, 맨발로 돌아다닐 수 있다니...

소음 문제도 아직은 괜찮다. 이사 전날 새 가구 미리 들일 때 집에 와계셨던 부모님에 따르면 왼쪽 집에는 우리 부모님 또래의 노부부가 사신다고 하는데 주말에 가끔 자식들이 오는 것 외에는 조용하다. 그리고 오른쪽 집은... 아마도 아기가 있는 젊은 부부가 사는 것 같은데 - "엄마~"하며 우는 아기 소리를 들었다 - 사실 이 부부를 좀 예의주시하게 되는게, 이사하고 3일 정도 지났을 때 퇴근하고 들어왔더니 부부싸움을 가열차게 하고 있었다. 무려 4시간 가까이 이어진 부부싸움은 다행히도 밤 12시가 넘어가면서 잠잠해졌다. 그 뒤로도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가 있는 것 같은데 개념이 있는 건지 아니면 자기네도 출근을 해야해서 그런 건지 밤이 깊어지면 조용해진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 때도 12시 넘어서 대화하는 소리가 들릴 때도 있는데 다행히도 멀리 들린다. 그래, 먼젓집이 벽이 얇았던 거였어. 먼젓집이었으면 대화만 해도 내용까지 다 들렸을 텐데 그래도 이 집은 벽 두께가 어느 정도는 되나보다. 어쨌든 난 밤에만 조용하면 되니까.

비록 아직도 살 것들이 많고 결정장애가 있는 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등장하는 필요 물품들을 고르는 데 지쳤지만 그래도 집에 있는 게 정말 좋다. 그런데 다들 이사 축하 선물을 왜 현금이랑 상품권으로 주는 거야? 그냥 현물로 주세요. 안 어울리는 거 없어. 다 맘에 들어. 나 쇼핑이 너무 힘들어요...

ps. 사진은 베란다에서 보이는 풍경. 흐린 날이고 폰카라 화질은 별로지만... 눈 내리면 다시 찍어서 올릴께요.

by 달을향한사다리 | 2017/01/16 17:39 | 힘내서 살아가기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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