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시작해야 좋을까. 책 내용? 페이지마다 반짝이던 아름다운 문장들? 작가의 천재성? 아니, 책을 펼쳐 첫 30여 페이지를 읽기 시작했을 때부터 책장을 덮은 지금까지 내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은, 내가 드디어 내 이상형을 만났다는 것이다.
그 동안 읽었던 책들에서 꽤 많은 인물들을 만나왔지만, 그들은 그저 他者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 책의 화자는 내 愛人이었고 아내이자 남편이었으며 나 자신이었다.
난 그가 세상에는 수많은 인종들과 수많은 성기들이 있고, 어느 하나의 성기는 그와 꼭 맞는 다른 하나의 성기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부분(39~40쪽)에서부터 그에게 반해버렸다. 그리고 내가 찬찬히 따라다닌 그의 서른까지의 삶 곳곳에 난 수많은 도그지어를 만들 수 밖에 없었다. 그가 사물과 세상을 처음 접할 때, 그가 언어를 쏟아낼 때, 그가 사람을 품을 때마다.
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내게 중요치 않았다.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대상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난 그의 생각과 언어와 행위를 모두 사랑했다. 그래서 그가 환희를 느낄 때면 내 침침한 방 안도 환해졌고, 그가 슬픔을 겪을 때면 반짝이던 햇빛도 시들어 버렸다.
그리고 그에게 일어난 blank out. 내 주위도 하얗게 지워져 난 한동안 그 빈 공간을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세상 어느 누가 그처럼 사랑에 대해, 언어에 대해 그리고 존재에 대해 진실할 수 있을까? 만에 하나 세상에 그런 사람이 실재한다 해도 나와 만나질 수 있을까?
내 책장 한 귀퉁이에 그가 있어서 너무나 다행이다. 언제든 펼쳐볼 수 있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