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독서 목록

1. 열흘간의 낯선 바람(김선영. 자음과모음. 2016. 226쪽)
: 인스타 여신 이든. 사실은 뛰어난 포샵 능력 덕분이다. 첫사랑과의 오프라인 만남을 위해 나섰다가 제대로 현실을 자각하게 된 이든을 본 엄마는 억지로 몽골 사막 여행에 밀어넣고, 이든은 열흘의 여행 기간 동안 또래 남학생 허단, 대학생 우석 오빠, 한 방을 쓰는 핑크 할머니와 '낯선 사람' 프로젝트를 하게 된다.

짧은 이야기 안에 많은 생각거리가 담겨 있는 좋은 청소년 소설이다. 외모지상주의, 우정, 가상과 현실의 연결과 괴리, 과거에 대한 미련과 후회 그리고 어떤 삶이 잘 사는 삶일까 등...


2. 아낌없이 뺏는 사랑(피터 스완슨, 노진선 역. 푸른숲. 2017. 367쪽)
: 문학잡지사의 회계파트에서 일하는 조지 포스. 우연히 대학 때 연인이었던 오드리를 20여 년 만에 마주친다. 대학 때도 자신을 속였던 그녀가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며 도움을 청하는 걸 뿌리치지 못하고 딱 한 번만 도와주자 했던 조지는 엉뚱한 일에 휘말린다.

이 작가는 이야기 자체는 속도감이 빨라서 나쁘지 않은데, 결말을 너무 활짝 열어놓아서 다 읽고 나면 항상 아쉽다. 그래서 그 인간이 살았다는 거야, 죽었다는 거야? 어쩌면 작가의 꿈은 완벽한 범죄 소설가가 아니라 완벽한 범죄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3. 동물원 기행(나디아 허, 남혜선 역. 어크로스. 2016. 406쪽)
: 대만의 소설가인 저자가 전세계 14개의 동물원을 돌아다니며 쓴 에세이. 단순히 동물원을 견학한 게 아니라 동물원의 역사와 배경에 집중했다. 기대만큼 동물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 않았지만 각 동물원이 만들어진 사회적 배경이나 세계사의 부침에 따른 변화 등을 차분히 설명해 줘서 좋았다. 다만 각 챕터 사이의 짧은 소품(?) 같은 글들은 너무 생뚱맞았다.


4. 슈트케이스 속의 소년(레네 코베르뵐, 아그네테 프리스, 이원열 역. 문학수첩. 2014. 400쪽)
: 꽤 기대를 가지고 읽었던 스릴러였으나 생각보다 별로. 니나는 난민 및 불법 체류자들을 위한 봉사단체에서 일하는 간호사다. 친구의 부탁으로 기차역 물품보관함에서 묵직한 슈트케이스를 찾아서 차 트렁크에 넣기 전, 호기심에 열어보니 그 안엔 세 살 남짓한 남자아이가 곤히 잠들어 있다. 그리고 이야기는 아이와 관련된 세 사람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니나 보르 시리즈라고 하기에는 니나가 하는 일이 거의 없다. 물론 가장 중요한 일인 아이를 보호하는 여러 행동들을 했으나 그건 현실에서나 중요하지 소설 속에서는 그닥... 주인공의 배경 설명이 부족해서인지 공감도 전혀 되질 않을 뿐더러 일을 떠맡는 방식도 헤쳐나가는 방식도 답답하기만 하다. 게다가 꽤나 긴박하게 흘러가야 할 스토리의 서술이 띄엄띄엄 뜨는 느낌이라 몰입이 되지 않는다. 아직 시리즈의 처음 이야기라서 그럴 수 있긴 하겠지만 굳이 이 시리즈를 또 읽어볼 생각은 들지 않는다.


5. 느링느링 해피엔딩(볼프 퀴퍼, 배명자 역. 북라이프. 2017. 368쪽)
: 운동실조증을 앓는 딸이 원하는 '멋진 일만 일어나는 백만 분의 시간'을 주기 위해 탄탄대로였던 커리어도 팽개치고 함께 여행을 떠난 아버지가 쓴 에세이. '조바싱'내지 않고 '느링느링' 지내는 삶들. 태국, 호주, 뉴질랜드에서 사는 동안 네 식구의 행복과 성장을 지켜보는 게 흐뭇했다. 물론 부럽기도 했고.


6. 어느 평범한 사람의 일기(조지 그로스미스, 이창호 역. B612북스. 2016. 246쪽)
: 런던 중심가에서 일하는 중년의 푸터. 외곽에 집을 세얻어 들어가는 날부터 하녀 한 명과 아내와 꾸려가는 생활, 거의 매일이다시피 만나는 친구들과의 에피소드, 막 성인이 된 아들과의 세대 차이와 좀더 상류층으로 올라가고자 하는 열망 등을 소소하게 그렸다. 하루하루의 자잘한 일상들이지만 읽다보면 꽤 굵직한 줄거리가 이어지고, 주인공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좀 열받지만 한 발자국만 떨어져서 보면 우스운 에피소드들이 화자의 대책없는 정신 승리와 함께 책을 가득 채우고 있다. 기대없이 읽었는데 재밌었다.


7. 별을 먹는 사람들(로맹 가리, 이선희 역. 마음산책. 2015. 431쪽)
: 로맹 가리의 작품들 중 대중성으로는 top 1 일 듯. 젊은 호와트 목사는 '악마에게 지지 말자'는 전도쇼를 통해 매년 교회에 엄청난 돈을 벌어다 주고 있는 인기인이다. 그가 남미의 어느 나라에 초대를 받아 공항에서 전용차를 타고 가던 중, 갑자기 어느 카페에 들어간다. 그를 비롯해서 독재자의 초청을 받은 '쇼맨'들을 비롯해서 독재자의 약혼녀까지 모두 총살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는데...

읽는 동안 에밀 아자르가 문득문득 보여 좋았다. 어차피 이 생에서 승리는 가장 멋진 쇼를 보여주는 자에게 돌아가는 것. 그 쇼를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팔든 끊임없이 별을 씹어대든 결국 필요한 건 버틸 수 있게 하는 환상일 것이다. 아마도 가장 진실했던 건 올레 옌슨.


8. 너무 시끄러운 고독(보후밀 흐라발, 이창실 역. 문학동네. 2016. 142쪽)
: 책 속의 누군가가 되고 싶다거나 곁에 있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한 건 아니었지만, 이 책의 그의 곁에는 정말 잠시라도 머무르고 싶었다,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게. 지하 파쇄기 옆에서의 35년. 매일매일 찢고 압축해야 할 폐지더미 속에서 골라내는 몇 권의 책들. 그 책들과 함께하기 위해 포기해야하는 자신만의 공간.

작가의 전작에서 그려진 체코의 공산화 모습은 블랙 코미디에 가까웠다. 『영국 왕을 모셨지』의 그것은 때로는 가볍게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의 체코 사회의 모습은 많이 슬펐다. 한 시대가 저물고 새 시대가 열린다는 건 누군가는 반드시 눈물을 흘린다는 걸 전제로 하고 있는지도. 그래서 더더욱 한탸의 곁에 있어주고 싶었다.


9. 플로베르의 앵무새(줄리언 반스, 신재실 역. 열린책들. 2005. 253쪽)
: 플로베르의 『순수한 마음』에 등장하는 앵무새의 실제 모델이 박제되어 보전되고 있다. 의사 브레이스웨이트는 그 앵무새를 보기 위해 프랑스 루앙으로 여행을 간다. 그런데 앵무새는 두 군데에 있다. 화자는 플로베르의 일생을 이야기하면서, 중간중간 자신의 이야기도 잊지 않는다.

플로베르의 일생보다 브레이스웨이트의 이야기가 더 궁금했다. 사실 플로베르의 이야기는 그닥... 하지만 만약 브레이스웨이트의 이야기가 더 많았다면 그건 반스의 소설답지 않게 너무 평범했겠지. 이 작가 특유의 시니컬한 문장과 여백 사이사이에 풍부한 배경 지식이 촘촘히 박혀있는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정말 행복했다.


10. 불타는 평원(후안 룰포, 정창 역. 민음사. 2014. 213쪽)
: 전에 다른 소설집에서 읽었던 「나를 죽이지 말라고 해」가 기대보다 별로였어서 이 소설집을 펼칠 때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이 작가는 단편보단 장편인가보다, 하며. 하지만 예상보다 너무 재밌었다. 척박한 땅 위에서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싸움들이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그려진다. 특히 좋았던 건 「그자」. 「나를 죽이지 말라고 해」도 전에 읽었던 것보다 훨씬 재밌었다. 역시 번역과 교정의 중요함.


11. 명탐견 마사의 사건 일지(미야베 미유키, 오근영 역. 살림. 2011. 354쪽)
: 하스미 탐정 사무소의 셰퍼드 마사. 사람의 말을 할 수 없을 뿐 잠복 근무며 추리에 있어서 사람 탐정에 뒤지지 않는다. 마사의 시각으로 본 다섯 건의 사건들. 코지 미스터리를 읽고 싶었는데 마침 도서관에서 딱 눈의 띄어서 얼른 집어왔는데, 진짜 재밌었다. 이 작가의 다른 책들은 너무 하드할 것 같아서 손 못대고 있었는데 이 책은 가볍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12. 윌 그레이슨, 윌 그레이슨(존 그린, 데이비드 리바이선, 김미나 역. 자음과모음. 2014. 523쪽)
: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윌의 사랑과 우정 이야기. 첫 번째 윌은 엄청난 덩치의 게이인 타이니만이 유일한 친구이다. 타이니의 모든 행동들이 부담스럽고 짜증나지만 다른 대안도 없이 그저 끌려다닐 뿐. 두 번째 윌은 커밍아웃 안 한 게이로, 온라인에서 아이작이라는 완벽한 남자애와 사랑에 빠졌다. 이 둘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존 그린의 소설은 정말 믿고 보는데, 이 책이야말로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타이니의 비중이 과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타이니가 주인공이었더라면 그건 너무 전형적이었을 듯. 현실의 남자 아이였다면 두 번째 윌이 더 매력적이었겠지만 아마 첫 번째 윌에게 공감하는 아이들이 더 많겠지. 어쨌든 전혀 다른 두 윌의 성향과 상황만큼이나 둘의 성장 방식과 방향이 다른 것도 맘에 들었다. 역시 이 작가는 날 실망시키지 않는다.


13. 친밀한 이방인(정한아. 문학동네. 2017. 255쪽)
: 한참 동안 소설도 쓰지 못하고 남편과의 사이도 어그러져버린 소설가 '나'. 어느 날 신문에 과거 자신이 처음 썼던, 정식 출판조차 하지 않았던 소설의 작가를 찾는 광고가 실리고 광고를 낸 사람과 만난 화자는 끊임없이 신분을 바꾸다 종국에는 성별마저 바꾸는 생활 끝에 종적을 감췄다는 이유미라는 사람의 일기를 갖게 된다.

처음에는 제목이 너무 노골적이라고 생각했다. 제목이 가리키는 건 이유미라고. 화자 입장에서, 이유미의 일기를 읽으며 다른 듯 닮음을 느꼈을 거라고. 하지만 친밀한 이방인은 누구도 될 수 있다. 남편 입장에서는 아내가, 어머니 입장에서는 딸이 그렇겠지.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고. 작가의 전작들과는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서 흥미롭게 읽었다. 작가 자신이 성숙해졌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 작가만의 따뜻한 순진함이 사라진 것 같아서 조금 슬펐다.


14. 그 여름, 트라이앵글(오채. 비룡소. 2014. 213쪽)
: 엄마가 아기 때 돌아가신 후 아빠는 도망가버리고 외할아버지와 둘이 사는 소월이와 예고 진학을 바라는 엄마 몰래 미용 학원에 다니는 예고 재수생 형태, 바이올린 전공의 예고 수석 합격자이지만 부모님의 과도한 간섭과 기대에 지친 시원. 이 세 10대의 귀여운 성장기이다. 유치하지도, 과하지도 않아서 정말 재밌고 흐뭇하게 읽었다. 다만 어떤 책에서든 대책없고 철 안 든 어른들은 정말이지... 사실 이 소설에서 딱 그거 하나 맘에 안 들었다. 애보다 더 애같은 소월 아빠가 용서받는 거. 어쨌든 오랜만에 맘에 드는 작가를 발견해서 다행이었다.


15. 짧은 이야기 긴 사연(로제 그르니에, 김화영 역. 문학동네. 2013. 206쪽)
: 다른 단편들보다 더 함축적이고 밀집된 이야기들의 모음. 하나하나가 다 좋았다. 쓸쓸하지만 안타깝지는 않다. 그냥 그들의 사연에 귀기울일 뿐. 감히 말하지만, 다른 어떤 단편들보다 더 단편다운 이야기들 모두가 완벽해서 읽는 내내 충만한 기분이었다.


16. 그 녀석의 몽타주(차영민. 새움. 2012. 339쪽)
: 출근길에는 꼭 책을 2권 들고 나가자!


17. 게리 쿠퍼여 안녕(로맹 가리, 김병욱 역. 마음산책. 2016. 320쪽)
: 이전의 어떤 작품들보다 젊은 로맹 가리를 느낄 수 있었던 책. 단지 주인공이 젊기 때문은 아니다. 1963년의 젊은이 자신이었던 것만 같은 저자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자신이 베트남전 징병을 피해 스위스로 도망쳐 겨울만을 기다리며 친구의 별장에 빌붙어 지내는 '스키 깡패'인 것만 같은, 혹은 알콜 중독인 외교관 아버지를 둔, 엉뚱한 녀석과 사랑에 빠져버린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을 넘어다니는 미국인 여대생인 것만 같은.

결국은 사랑 이야기였지만 사랑으로 결론 맺지 않은 것도 정말 좋았다. 그리고 왠지 로맹 가리 소설 속 여성들 중 저자의 애정이 가장 많이 담겨있을 듯한 - 사실은 내게 가장 인상적인 - 제스가 가장 맘에 들었다.


18. 고고심령학자(배명훈. 북하우스. 2017. 325쪽)
: 이 작가의 책 중에서는 『은닉』을 제일 좋아하지만 재미로는 이 책이 최고. 책 뒤의 해설에서 이 책으로 '과학 소설(Science Fiction)'의 과학이 사회과학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고고심령학이란 출몰하는 오래전에 죽은 영혼들의 복식이나 그들과의 대화를 통한 고고학을 의미하는 것으로, 책 속의 세계 속에서도 그닥 단단히 자리 잡힌 학문은 아니다. 재야의 권위자였던 스승 사후 스승의 서재를 정리하던 조은수는 서울에 갑자기 보이지 않는 거대한 성벽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곧 '요새빙의' 현상임을 알아차린다. 스승의 서재가 있고 현재 조은수가 머무는 천문대에 나타나는 안정적인 고대 영혼과 이 성벽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작가의 전작들보다 뭐랄까, 더 선명해서 좋았다. 사실 내 느낌으로는 작가의 전작들에선 이야기의 결말 부분이나 혹은 前事가 얼버무려지는 듯 했던 적이 많았는데, 읽으면서 그런 점을 조금 걱정하긴 했지만 다행히도 꽤 맘에 드는 결말이었다. 그리고 주인공 또한. 이번 은수가 제일 맘에 들었다.


19. 인 더 풀(오쿠다 히데오, 양억관 역. 은행나무. 2005. 314쪽)
: 내게는 어색하기만 한 일본의 정서나 작가의 왜곡된 여성 인식, 비호감인 캐릭터는 차치하고 번역과 교정이 너무 무성의하다. 보니까 최소 19쇄는 찍었던데 하다못해 '바꼈다' 정도는 고쳐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리고 '드라마의 샤워 요원' 대신 '드라마 샤워신 대역', '스키 하니?' 대신 '스키 타니?' 정도 고쳐주는 게 그렇게 힘든가? 정말 시간이 아까웠다. 출근길에는 꼭 책을 2권 들고 나가자!

by 달을향한사다리 | 2018/06/02 23:11 | Yujin's Book Story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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