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독서 목록

1. 길 위에서 1, 2(잭 케루악, 이만식 역. 민음사. 2009. 291쪽, 349쪽)
: 뭐랄까, 전혀 공감할 수 없는 히피들의 방랑기. 내가 워낙에 여행도, 돌아다니는 것도, 대책없이 헤매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서였겠지만 사실 좀 지루한 면도 없지 않았다. 다만 무기력함을 적극적으로 타파하는 용기 혹은 무모함에는 찬사를. 사실 내가 더 재미있었던 건 이 작품의 초벌 원고가 두루마리였다는 비하인드 스토리.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에 커피와 각성제에 기대어 단락도 여백도 문장 부호도 없이 써내려갔다는 그 광기와 맹목이 내게는 더 흥미로웠다.


2. 살인하는 돌(루이즈 페니, 홍지로 역. 피니스아프리카에. 2016. 499쪽)
: 결국 아버지는 딸을 두 번 죽였다. 한 번은 어린 딸의 마음을, 또 한 번은 조각상이 되어서 그녀의 존재를. 가마슈 경감 부부는 결혼기념일을 맞아 매년 여름휴가를 보내는 산장 마누아르 벨샤스에 간다. 그 곳에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조각상을 세우고 추모하기 위해 모인 피니 일가가 있는데, 큰 딸 줄리아가 동상에 깔려 죽은 채 발견된다.

가마슈는 여전히 날카로우면서도 젠틀했고, 아쉽게도 이 작품에서 스리파인즈는 산 너머에만 존재한 채 자주 볼 수 없었지만 스리파인즈의 다니엘과 클레어 부부가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건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자식들의 갈구. 어머니의 사랑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아서였겠지만 아버지와 자신은 다른 자식들 중 누구와도 다르게 특별했다고 믿고 싶어하는 자식들의 이야기는 현실에서도, 다른 소설에서도 보기 드문 이야기이기에. 사실 이 작품에서 살인범이 누구냐 하는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다른 작품들에서와 달리 이 살인범의 동기는 좀 의아할 정도. 그래도 여전히 가마슈 시리즈는 재밌다.


3. 봉지(김인숙. 문학사상사. 2006. 334쪽)
: 1970년대 시골 출신 소녀의 성장기. 현대사의 물결에 완전히 휩쓸리지도, 그렇다고 전혀 상관없지도 않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의 삶을 그저 살아낸 여인의 이야기이다. 프롤로그와 그 뒤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분위기가 휙 바뀌어서 프롤로그를 잊고 있다가 에필로그에서 문득 깨닫고 좀 이질감을 느낀 것 외에는 재미있었다. 어찌 보면 좀 올드한 분위기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저 정석대로 시간순서대로 이야기해 주는 게 난 좋았다. 다만 아쉬운 건, 이 저자만의 지순함이랄까 하는 게 이 작품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


4.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 정장진 역. 열린책들. 2016. 590쪽)
: 양로원에 사는 메르타 할머니. 겉보기에는 잘 돌봐지고 있는 듯 하지만 사실은 먹는 것도, 운동량도 감옥에 갇힌 죄수들보다 못하다는 걸 TV 다큐를 통해 알게 된 메르타는 친하게 지내는 네 명의 노인들을 모아서 함께 감옥에 갈 만한 범죄를 저지르기로 결심한다.

딱 기대한 만큼 재미있기는 했지만 세부적인 면에서 개연성이 좀 부족하긴 했다. 아무리 평생 은행원으로 살면서 스마트함이 몸에 배였다 하더라도 70대 할머니가 인터넷 쇼핑과 뱅킹을 단번에 독학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것 같고, 범죄를 저지르는 과정도 범죄 후 받게 되는 몸값(!)을 회수하는 것도 너무 어설프다. 그래도 지루하지 않게 잘 읽었다. 다만 이런 식의 북유럽 코믹 소설들은 왜 하나같이 내용이 비슷할까 하는 생각이...


5. 깡패단의 방문(제니퍼 이건, 최세희 역. 문학동네. 2012. 471쪽)
: 정말정말 재미있었다. 누군가의 현재를 알면서 과거를 본다는 것, 혹은 그 반대. 혹은 과거가 아닌 미래의 이야기들. 음반 제작자 베니와 그의 비서 사샤, 그리고 주변인들의 이야기. 13개의 챕터에서 각각의 주인공들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한다. 이 순간들은 그들의 인생의 가장 찬란했던 순간일 수도, 가장 찌질한 순간일 수도, 혹은 그저 그런 하루일 수도 있다. 그런 크고 작은 시간의 조각들이 모여서 결국 인생이 되는 것. 시간은 누구도 거스르거나 되돌릴 수 없는 깡패이지만, 돌아보면 혹은 상상하면 아름다울 수 있다.


6. 자기 개발의 정석(임성순. 민음사. 2016. 166쪽)
: 전립선염에 걸린 기러기 아빠 이부장. 전립선을 스스로 마사지하다가 난생 처음 오르가즘을 경험한다. 이후 자기 자신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사실은 오르가즘을 더 발전시키고 싶은 이부장의 고군분투기.

재미있었다. 역시 이 작가의 글빨은 나쁘지 않아서 단숨에 읽었다. 이 짧은 이야기 속에 세태에 대한 비판도 잊지 않는다. 다음 작품도 기대되는 작가.


7. 여명(시도니-가브리엘 콜레트, 송기정 역. 문학동네. 2010. 206쪽)
: 자전적인 느낌이 강하게 나는, 나이든 여성의 사랑 이야기. 나쁘지는 않았지만 마냥 좋지만도 않았다. 그저 황혼기의 일상을 이야기한 거라면 아름다웠다 할 수 있겠으나 그 와중에 끼어든 젊은 남자와의 사랑은... 왜 읽는 내가 그를 불청객처럼 느꼈는지 모르겠다. 미친듯 열정적이지 않아서인지 혹은 작가 자신이 심드렁했던 건지... 다만 어머니와의 이야기는 나를 울렸다. 내가 '나쁘지 않았다'고 얘기할 수 있는 이유는 어머니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여성으로서의 어머니를 이야기한 방식 때문.


8. 그의 세컨드라이프(윤효. 자음과모음. 2016. 256쪽)


9. 에이미와 이저벨(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정연희 역. 문학동네. 2016. 546쪽)
: 작은 마을 셜리풀스. 이제 막 유례없는 더위가 시작되고, 엄마 이저벨은 열 여섯 살 난 딸 에이미를 방학 동안 자신이 비서로 일하는 구두 공장에서 일하게 한다.

엄마 이저벨의 사춘기에 접어든 딸과의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지난 학기 동안 에이미에게 일어난 일들, 완벽한 남편감으로서의 구두공장 사장에 대한 흠모, 마을의 상류층인 회중 교회 교인들 무리에 끼고 싶은 마음 등에 대한 섬세하고도 공감가는 묘사가 아름답기까지 하다. 현실적인 결말도.

모든 건 변하는 듯 변하지 않는다. 이제 막 여성이 된 딸과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어떻게든 잘 꾸려나가고 싶은, 어쩌면 딸보다 더 큰 정신적 위기를 겪고 있는 엄마는 앞으로도 여성으로서의 서로를 사랑하면서 또 미워하면서 함께 살아갈 것이다. 이제껏 그래왔듯.


10. 반쪼가리 자작(이탈로 칼비노, 이현경 역. 민음사. 2014. 135쪽)
: 전쟁에 참전했다가 몸이 두동강 난 메다르도 자작. 의사들은 남은 반쪽을 봉합해서 살려냈고, 고향으로 돌아온 자작은 눈에 띄는 사물들을 반동강 내기 시작한다.

동화같은 사랑 이야기로 흐르는 듯 싶었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결말이 좋았다. 사실 이 소설의 사회적 함의는 읽는 동안에는 명확히 드러나진 않았지만 읽으면서 인간의 선과 악, 사회적 행동 뒤에 숨은 이기심과 개인의 욕망 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11. 어느 어릿광대의 견해(하인리히 뵐,신동도 역. 문학동네. 2010. 339쪽)
: 부유한 집안 출신의 어릿광대 한스는 첫사랑인 연인을 잃고 실의에 빠져 공연도 망친다. 무일푼으로 집에 돌아와 천주교도인 그녀와의 추억과 가식적이고도 메마른 집안 이야기, 연인을 빼앗아 간 천주교인과 천주교 등에 대해 회상하고 부딪친다.

예상외로 정말 재미있었다. 한스의 끊임없는 회상은 당연히 시간순이 아니므로 독자를 이리저리 휘두르지만 충분히 따라갈 만 하다. 그리고 한스가 이야기하는 나치 부역자들에 대한 비판은 상당히 통쾌하다. 다만 한스의 앞길이 어떠할 지 걱정스러울 뿐.


12. 이브의 발칙한 해외봉사 분투기(이브 브라운 웨이트, 나선숙 역. 랜덤하우스코리아. 2012. 435쪽)
: 뉴욕에 사는 이브는 해외봉사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평화봉사단 면접을 보는데, 면접관 존에게 반한다. 그저 그를 사로잡아서 결혼할 목적으로 에콰도르에서의 봉사단 생활을 견디지만 쉽지 않은데...

제목만큼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다. 광고처럼 진정한 봉사단원으로 거듭나는 이야기도 아니고. 에콰도르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무의식 깊은 곳에 묻어둔 정신적 트라우마를 끄집어내게 된 건 충분히 드라마틱한 이야기이고 여성의 입장에서 마음 아프기는 하지만 이 책 전반은 그저 '외국 생활 분투기'이지 저자의 해외봉사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재미는 있었다. 특히 우간다에서의 생활 이야기가. 하지만 '봉사'를 하러 간 사람들이 마치 식민지 시대 지배계층처럼 사는 이야기는 글쎄...


13. 주말, 출근, 산책 : 어두움과 비(김엄지. 민음사. 2015. 142쪽)
: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를 좋아해서 도서관에서 신나게 빌렸는데 너무 재미없었다. 성실하게 출퇴근하는 생활인 E가 결국 땡땡이 치게 되는 이야기랄까. 근데 이야기 자체가 너무 무료하다. 차라리 '주말에 출근하는 이야기'가 나을 뻔 했어. 그런 얘기도 무지 싫어하지만.

by 달을향한사다리 | 2017/02/02 17:51 | Yujin's Book Story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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